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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렙/수 필 집

제대로 배워야 제대로 가르칠수 있는데....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 제대로 배울수 없고 그것이 악순환되어서 결국 배우지 못한 자들로 이 세상은 채워지게될것입니다.  지식이 쌓여가지만 참된 지식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헛된지식만으로 자기 자신을 채우는 모습을 보는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논하고 무엇인가를 토론할때 가장 중요한것은 누가 그것을 알아듣는가? 못알아듣는가? 입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책과 말을 인용하고 그들의 사상과 철학을 인용해서 아무리 말해도 그것은 허공에 맴도는 공허한 목소리에 불과합니다.

 

차라리 어려운 말을 할바에  우리는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않으며"라고 한마디 할수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책을 쓰실때 정말 어렵게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 안에 깊은 내용이 있는건 맞지만 우리가 성경책을 읽을때 이해할수 없는 그런 책이 아님을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성도님들은 성경이 어렵고 난해하고 골치아프고 그 뜻을 이해하기 힘든것처럼 보일까요?  그것이  요즘 말하는 신학의 폐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이기도하지만  신학이 기독교를 망친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은사주의임을 깨달을때 오히려 전 눈을 감아버릴수 밖에 없습니다.

 

신학은 성경보다 쉬어야합니다.  그런데 신학이 성경보다 더 어렵습니다.  왜? 자꾸 어렵게 복잡하게 성도님들의 머리를 어지럽혀야할까요?  제가  이런 현상을 빗대어 한마디 한적 있었습니다. "잘난척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 같아" 칼빈의 교리가 어렵습니까?  신학입니까? 복잡합니까?  이해하기 힘듭니까?  전 카이퍼의 책은 정말 난해하고 어려워서 읽기가 싫더군요.

 

기독교 강요만큼 정말 쉽고 일기 쉬운 책이 없습니다. 그것만큼 성경을 쉽게 설명해 놓은 책이 별루 없더군요.  차라리  프리메이슨 목사라고 욕먹는  후안까를로스오르띠즈 목사의 책이 성도님들에게 좀더 편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릅니다.  좋은 책 문제가 없는 책은 정말 난해하기 이를데 없이 복잡해서 성도님들이 손이 가지 않고 

 

문제가 많고  읽으면 안되는 책들  오르띠즈 목사의 책이나  목적이 이루는 삶  긍정의 힘  잘되는 나  내려놓음 이런 책들은 참 쉽게 다가오고 읽기도 편하고  어느면에서는 오히려 신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건 나만의 고민일까요?

 

정말 저 읽기 쉬운책은 절대로 읽으면 안되는 책들입니다.  지금 서점에 있는 책들은 다 읽기 쉬운책들이고  결국 영혼을 좀먹는 책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긍정서적들  목적서적들  그리고 성공에 관련된 책들이 넘쳐나고  기독교인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세계관을 어지럽히고  희생과 봉사의 기독교 정신이 사라지고  성공과 축복이 기독교의 정신인양 포장되고 있는것이 눈에 너무나 뻔히 보이는것이 안타깝습니다.

 

너무 난해한 신학적 토론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건  신앙인으로서의 삶이 어떤 삶인가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더 고민하는것이 지금가장 중요할때가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기독교인들의 고민을 목사님들이 해결해줄 생각은 안하고  성도님들의 고민을 눈에 보이는것으로 해결할려고 하니  성령충만을 경험해야하고 방언을 해야하고  입신을 해야하고  넘어져야하고  진동해야하고  뜨거워야하고...이런식으로 경험적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게 만드니  요즘 교회들마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우선먼저 고민하고  그일로 인해서 고민하는 성도님들의  그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는것이  지금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신학도 중요하고 체험도 중요하지만  정작 우리가  가장 중요시 여겨야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은 어디로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요? 

 

점점 하나님과의 관계는 멀어지고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아닌 이상한 존재가 되어가고  현재는 성령님만이 활동하는 시대가 되어버리고  성령만 쫓는 이상한 기독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성령의 시대는 맞습니다. 사도시대에는 성령님이 역사하고  성령님이 떠나는 그날이 지구의 종말이니 성령의 시대가 맞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일하시는것은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이루어지는것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인데 왜  성령님이 하시는일이  기적을 베풀고  이적을 베풀고  넘어뜨리고 방언을 하고  체험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로가고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그리스도  곧  성령하나님을 보내신 분인 예수님은  어디로 사라져가고 있는지?  이런 고민이 지금 더 필요한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신학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성령운동을 주도하고 있고  신학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은  참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땅에 실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보입니다. 

 

그러니 성도님들이  이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바를 찾지 못해  헤메고 있는것이 아닙니까?   장로교는  신학을 쉽게 만들어야하고  오순절은  성령운동의 참된 뜻을 찾아서  현재의 성령운동을 버려야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점점더 기독교는 쇠퇴해지고 말것입니다.

 

제가 위에서도 말했듯이 성경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성경을 어렵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복잡하고 난해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그런걸 좋아할까요?  개혁신학자들이 어떤 말을 하던지 그들도 인간이니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복잡하고 난해한 설명들은 가지쳐 버려야할것입니다.

 

성도님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이 꼭 알아야 할부분들은 이미 소요리 문답과 대요리 문답에 다 설명되어 있으니 초신자들에게는 소요리/대요리 문답을 통해서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깨닫고 숙지하게 하고 그것으로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깨닫게 하는것이 중요하고  나중에 그것을 전문적으로 공부해야할 사람들에게 신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평신도로서 이땅에 살아가는 동안 가장 필요한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고 그 뜻대로 행할수 있도록 바르게 가르쳐달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것이 더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세상은 멸망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창조의 발전사상이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어떻게 정립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결국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도하는 길로 가게될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때의 모습입니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처녀들이 잠자고 있을때  신랑이 왔고  미리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처녀는 혼인예식에 참여했고  미리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처녀는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믿는자들은 신랑이 오기전에 이미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그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되지만  비록 잠들어 있었을지라도.......믿지 않는자들은 신랑이 올때 이미 성령님의 역사가 끝나고 구원의 역사가 끝났으니 세상을 향해 기름을 사러 나가도 구하지 못하고 결국 혼인예식에 참여할수 없게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멸망하기전 노아의 때와 같다고 했으니  열처녀의 비유에서 잠잔다는 의미는 영혼이 잠을 자는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하고  하나님의자녀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이 하는데로 따라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점점더 늘어나게 될것입니다.

 

그렇게 믿는자들까지 세상사람들처럼  흥청망청 살다가도  나팔소리가 크게 들리는날  믿는자들은 잠에서 깨어나  주님을 바라보게 될것이고 그렇게 마지막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이 낫을 들어 추수할것입니다. 

 

세상은 발전하는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점점더 악해져가고 있으며 파괴되어져가고 있고  후퇴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발전한다고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오히려 가증한 바벨론화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높은 탑을 쌓아 힘을 자랑하지만 하나님앞에서는 먼지에 불과합니다.

 

이 바벨론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온전히 서지 못할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무너질것이고 노아의 때처럼 뒤집어질것입니다.  그리고 불과 유황으로 모든것이 다 불살라 질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증한것들은 하나님에 의해 다 태워질것이고 새하늘과 새땅이 하나님의 뜻에의해 만들어지게 될것입니다.

 

이땅의 문화와 발전은  오히려 배도의 길로 가고 있는 것으로 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앞에 가증한 것들이며  바벨론입니다. 하나님없이 살수 있다고 떠드는 인간들의 교만의 상징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것들을 남겨둘 이유가 없습니다.

 

에덴동산이 2명이 살곳이었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수천수백수억명이 살곳이니  모양이 조금 다르겠지요  에덴동산과  하나님의 나라의 차이는  겨자씨일것입니다.  씨로 있을땐  정말 작지만  싹이나고 자라면  새가 찾아올만큼 큰 나무가 되기 때문이고 성경에도 천국은 겨자씨와 같다고 했으니....이것이 창조의 발전이 아닐까요?

 

복잡한 말로 어려운 토론 백번 하는것보다  유익한 말로  여기 찾아오는 평신도님들에게 이해하기 쉬운말로 표현해보는것은 어떨까요?

 

배운자들은 가르칠때  쉽게 가르쳐야하고 주장할때도  남들이 알아듣기 쉽게 주장해야합니다.   그것이 배운자들의 임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