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참 어려운 문제라서 저는 이문제를 곰곰히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문제를 한번 집고 넘어가야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현재 많은 교회들이 이런 표어를 주보에 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오시옵소서"
교회들은 이런 표어 성령님에 관련된 표어들을 요즘들어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표어들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것이 제 의견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교회는 성령님이 함께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다른곳에 계시다가 교회에서 부르면 오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알파코스/g12/빈야드성 프로그램들은 성령님이 다른 곳에 있다가 목사가 안수하면 성령님이 들어오셔서 성도님들을 넘어뜨리는 식의 어떤 일들을 하는것으로 성령님의 터치라든지 성령님의 은사라든지 하는 집회들을 하는것을 쉽게 볼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서 성령님의 내주하심이라든지 이런 문제가 요즘들어서 성도님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자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성경적으로 이 표현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저도 솔직히 정확히 알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곳에 쓰는것에 대해서 이의가 있으면 뎃글을 달아주시고 뎃글을 통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위격중 한분으로서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의 위치가 성자하나님 아래 있다고 해서 성령님의 위치가 낮다?라고 생각하는 분은 없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중요한것은 성령님이 지금 이 땅에 역사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어느곳에서든지 동등한 입장에서 나타나셨고 일하셨습니다. 성부/성자/성령하나님이 구약시대에서는 어떤 구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분이 생기게된것은 인간과 새로운 언약을 체결하면서 부터입니다. 신약시대로 오면서 이 구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땅에 육신을 입고 탄생하셨습니다. 그가 자기 자리를 비워서 인간이 되셨고 그렇게 인간을 위해 피흘리고 죽으심으로 멸망받을 인간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다시 영광의 자리로 가셨습니다. 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이땅에 심판주로 재림하실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땅에 오신것처럼 성령님은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아 오순절날 이땅에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부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기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령하나님을 보내주실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오순절날 성령하나님이 이땅에 임하셨습니다. 성령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시고 임의대로 활동하실수 있는 분이시지만 지금은 보내신 분의 명령을 따르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을 보내신 분은 성자하나님이시고 성자하나님이 그 백성들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사실을 알리는 역활을 성령하나님께 맡기신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의 역사는 성자하나님의 명령안에서 활동하시는 것입니다. 그 명령은 바로 복음이고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그것이 성경입니다. 성령하나님은 성경이 있는 곳 곧 말씀이 있는 곳에서 활동하시지 말씀이 없는곳에서는 활동하지 않으십니다.
성령하나님은 이땅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땅에서 활동하시는 성령하나님은 말씀에서 벗어나서 활동하시는 경우가 결코 없습니다. 말씀을 전파하시고 적용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거듭나게된것은 바로 이 성령하나님의 활동으로 가능한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안에 말씀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성령하나님은 역사할수 없었을 것이며 우리가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성령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그 말씀을 깨닫게 하셨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시키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도록 성령하나님이 도우시는 역활을 감당하게된것입니다.
성령님의 내주하심이 무엇인지? 정말 고민됩니다. 이글을 쓰면서 구체적으로 정립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성령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셩령님은 성부하나님/성자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것을 따릅니다. 그렇게 태초부터 예정된 하나님의 뜻을 이땅에 적용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셨습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영원히 죽어야할 저주받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서서 구원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택이고 선물입니다. 우리가 받고 싶어서 받고 받기 싫어서 안받을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역사를 통해서 어쩔수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수 없었던것처럼 우리가 성령님을 통해 거듭남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할수 없게된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생명의 법아래로 신분이 변화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늘 날마다 생각합니다. 그러다 그 사랑이 식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가끔씩 생각합니다. 그러다 사랑이 더 식으면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살게됩니다. 결혼하기전에는 뜨거운 사랑이 결혼후에는 점차 식어져서 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결혼관계가 깨지는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결혼을 통해서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서로의 몸을 구속하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육신은 따로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의 마음은 하나가 �지만 몸은 다르고 생각도 다릅니다. 내가 신부의 마음에들어가 신부를 조종할수 없으며 신부가 내 마음에 들어와 나를 조종할수 없습니다. 성령하나님의 내주하심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랑의 마음속에는 신부가 가득들어 있고 신부의 마음속에는 신랑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서로를 생각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안에 거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랑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부이고 예수님과 하나되었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신부를 위해 목숨을 바쳐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예수님의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사랑받음에 기뻐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한복음 15장 9절)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와같이 성령님의 내주하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성령님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셨습니다.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령하나님은 한분이시고 온 우주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도 하나입니다. 성령안에서 하나인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곳이 교회이고 바로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서로 모였으니 서로 하나이며 그 하나안에 바로 성령하나님이 계시니 우리가 하나인것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 4장 3~4절)
성령님이 내주하신다는 의미를 조금 이해할수 있는것 같습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다는 의미는 성령님이 이땅에 충만하시고 우리가 그 안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조금더 이해하기 쉬울것같습니다. 이세상은 마귀의 지배아래 있고 고통과 신음속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저주에서 풀려나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구별되어 불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거듭나게 되었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되었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얻게되어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듭난 백성은 성령님의 법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분별할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죽만 먹을것이 아니라 단단한것을 먹을수 있어야 한다는것은 우리가 스스로 자라 하나님의 뜻을 알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성령하나님이 내주하셔서 늘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것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스스로 일어나서 걷기를 원하십니다.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를 원하십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 2장 15절)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백성은 스스로 모든것을 판단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판단을 하더라도 그 판단은 성령님의 법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영적인 문제를 성령의 가르치심에 따라서 판단할수 있어야 하는데 이 판단에 대해서 우리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간구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구하지 않아도 성령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데 거해야합니다.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가르침들은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배우고 공부해야합니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고 알아야합니다.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성령님이 내안에 거하고 계신것이라는 의미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성령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내안에 거한다? 그럼 성령님은 3억인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령님이 3억명이나 계신다는 의미가 될수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한분이신데? 어떻게 그렇게 될수 있나요? 그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부분에서 우리의 착각은 시작됩니다. 이런 착각은 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우리가 사랑함으로서 하나되었다는 의미는 바로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남편과 하나되었다는 의미는 육체적인 의미도 있지만 정신적으로도 서로에게 구속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님과 하나되었다. 성령님이 내주한다는 의미는 바로 우리가 성령의 법아래 구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것이라고 봅니다.
성령의 법은 하나입니다. 두개도 아니고 세개도 아닙니다. 성경책이 하나이고 말씀이 하나이고 주도 하나이고 하나님도 한분이시니...우리도 하나이고 믿는자들은 주안에서 하나되었습니다. 곧 성령님이 내안에만 계시는것이 아니라 믿는 모든자들안에 계신다고 보아야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고민을 하게됩니까? 꼭 내안에 성령님이 안계신것처럼 느껴질때가 있어서 그런거 아닙니까? 마음의 두개의 법이 싸우는데 늘 육신의 법이 성령의 법을 이기니 그런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령님이 내안에 있나? 없나? 이런 고민하는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집니다.
왜? 이런 느낌이 들게 될까요? 그것은 우리가 이제 자랐기 때문입니다. 엄마젖을 빨던 시기를 벗어나서 이제 단단한것을 먹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젖먹이를 떼어놓을때 젖먹이는 많이 웁니다. 아이를 유치원 보낼때 보면 아이가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많이 우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단단한것을 먹게되면 그것이 맛있다는걸 알게됩니다. 유치원에 가게되면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것을 또한 알게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품안에 있을때는 세상을 보는 눈이 없이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품을 떠나 세상속에서 거하다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게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떠나는것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부모님의 가르침을 벗어나서 행동하지 않고 부모님의 가르침아래서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명령 곧 성령의 법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법을 실천하고 행하게됩니다.
왜냐하면 신분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럴때 막막하기는 하지만 두렵기는 하지만 이제 스스로 판단하고 분별해야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법을 스스로 알고 분별하여 행동해야합니다.
그런데 그럴때 성령하나님이 내 안에 안계신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들마다 성령님 오시옵소서...이러는데 성령님은 늘 함께 계시는데 왜 성령님보고 오시라고 합니까? 교회들이 이러니 성도님들이 성령님이 내주하시다가 떠나시다가 다시 들어오시고 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주의 백성들을 하나로 엮으셨고 그 하나됨을 이루시는 분이 바로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하는 그 순간 성령하나님은 우리들을 그 안에서 하나로 묶어 주십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내주하심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한분 성령님으로 계십니다. 각자의 마음속에 성령님이 따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법아래 모든 사람이 하나되어 모인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인자들은 하나님의 법 곧 성령의 법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다보니 헷갈리는 것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다시 설명하면 성령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각자의 속에 따로 계신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그 사랑안에 거하면 우리는 하나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성령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그 법을 지키니 우리는 하나입니다.
세상의 영/마귀의 영아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아래 있다고 본다면 성령의 영/하나님의 영아래 있는 백성들은 또한 모두 그 아래 있다고 생각하시면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이 내주하시게 하는 방법에 대해서 궁금하시면 그 법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것이 바로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내주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을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럴때가 있다고 하더라도 성령님은 늘 함께 우리와 계시며 결코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고 계심을 이해하신다면....우리가 성령안에거하고 성령님이 우리안에 거한다는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부족한 내용이 있다면 뎃글로.....한번 대화를 나눠보면 좀더 유익한 시간이 될거라고 생각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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