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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은혜 로운 말씀

오래참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 예수의 권위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 불의한 농부 비유

 33.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거기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실과(實果) 때가 가까우매 그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저희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41.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저희가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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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블로그 독자이신 성도님들 오늘은 제가 잠시동안 받은 은혜를 간단히 나누고싶어서 이렇게 성경을 가지고 해석하는 글을 한번 써보려고 합니다. 제가 신학자도 아니고  권세가 있는 능력있는 목사도 아니라서 많이 부담스럽지만  저와 동감하는 은혜를 받고 그것이 성경을 볼때 또한 많이 도움되기를 정말 바라는 마음입니다.

 

위 본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에  나귀를 타귀 입성하시어  거기 모인 많은 군중들을 향해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을때 이를 본 대제사장들과 그당시 지도자들이라고 불리는 서기관 장로들이 나와서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서 온것인지 질문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의 죄를 끄집어내어 어떻게든 십자가에서 처형시키려고 하는 목적이 또한 담겨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며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고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선포하시며 불의한자들을 책망하는 모습으로  승리의 입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왕좌에 앉을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리가 불안해진 기득권인 대제사장을 비롯한 장로들은 황급히 예수님앞으로 나아와 무슨 권세로 이일을 하느냐고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 상황을 잘 머리속에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질것입니다.  많은 군중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질문은 정말  예수님의 약점을 잡아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게 할수 있는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할수 있는 아주 핵심적인 질문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세라고 말하면 그는 신성모독죄를 범하는것이되고  그것이 아니면 예수님은 정신병자에 불과하며 하나의 인간에 불과한 존재로 추락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이일을 감당하는걸 알고 있지만 그당시 사람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문제였던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을 다른 질문을 통해서 그들을 곤궁에 빠뜨립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세례요한의 권세는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그 질문에 그들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본문에 잘 적혀 있습니다.  그들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다시 던짐으로서 상황을 반전시키고 역전시켜버립니다.  그래서 그들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고 말해버립니다. 예수님 또한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심으로서 그 상황이 종료되어버립니다.    

 

이 성경구절을 읽어볼때 우리는 대제사장들의 교만함과 그 흉포함을 느낄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느끼시면 안된다는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그 교만함과 흉포함을 예수님이 심판하지 않고 참으시고 용서하시는 모습을 말입니다.

 

그들은 그 상황에서 백성들에게 돌맞아 죽을 수 있는 아주 위급한 상황이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수천명의 군중들이 모여있고 그들앞에서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한마디면 그들은 돌에 맞아 죽을수 있었고 그들이 실수 했다면 또한 돌에 맞아 죽을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짐으로서 그들의 입을 막고  그들이 빠져나갈수 있도록 예수님또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충분히 대답할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대제사장들을 용서하고 참으시는 예수님의 오래참으시는 사랑때문인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두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아들 비유와  불의한 농부들에 대한 비유입니다.  여기에는 불의한 농부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기까지 우리를 사랑한다는 말씀이며  하나님의 종들을 죽였는데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님들은  이 구절을 읽으며  불의한 농부의 심판받는것에 대해서 쾌감을 느끼며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의 한마디에 쩔쩔매는것에 환호성을 지를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그런것을 말하고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합니다. 바로 내가 대제사장이며 서기관이며 장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로운 자들이 아닙니다.  원래 죄인들이고 불의한 농무이며 불의한 종이기 때문이며  대제사장들이고 장로들입니다.  우리는 죄를 즐거워하며 죄를 짓는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저주받은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 성경구절은  우리를  오랫동안 사랑으로 기다리고 참으시며  아들을 통해서 구원받기 원하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말해주고 있는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의 교만한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이런 장면이 성경에 여러군데 나오는데 제가 생각나는 구절중에 하나가 바로  간음한 여인입니다.  "죄없는자가 돌로치라" 아무도 돌로 그 여인을 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님의 큰 사랑을 엿볼수 있는 그런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인 많은 사람들이 다 돌에 맞아 죽어야할 죄인들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죄인을 심판할 권세가 없음을 알게 하셨고  오직 심판의권세는 하나님께 있음을 인식시키셨습니다. 

 

요즘 우리의 삶속에서  이웃을 정죄하거나  남의 책을 잡기위해서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는지  그런 성도님들이 있다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것입니다. 

 

예수님의 오래 참으시는 그 사랑을 기억하고  나를 피박하는 사람들의 그 악한죄에 대해서도 참으시고 용서하시며 인내하시고 그렇게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게되면  마지막날 주님은 우리의 삶을 기억하여  큰 축복으로 영원히 함께 하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