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일때문에 바쁜 관계로 글을 많이 쓰고 싶어도 그럴수 없음이 조금 미안합니다. 큰믿음 교회에 대해서도 제가 아는바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사실 비판하는것이 조금 어렵습니다. 제가 듣는 것과 느끼는것과 그리고 신앙안에서 과연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만 분별할 뿐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릴적부터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측/통합측 교회를 왔다갔다 하면서 신앙생활했었는데 어릴적에는 통합측에 있었다가 고등학교때 합동측으로 옮긴이후로 쭈욱 합동측에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교회의 문제점은 통합이나 합동이나 여전히 설교시간에 이렇게 말씀하는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것이고 잘못하면 잘못된 길로 빠져서 지옥에 갈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설교시간에 목사님들이 온전히 성경말씀을 전하는것이 아니라 성도님들을 상대로 협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신앙생활을 하며서 정말 싫었던것이 무슨 단체에 가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때도 그랬고 신학생으로 있을때도 그랬습니다. 그냥 무슨 단체에서 활동하는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예전/경찬/CCC/등등....이런 선교단체에서 일하는것을 저는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해본적이 없었습니다. 어릴적이라서 신앙도 미숙해서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그런것에 거부반응을 느꼈습니다.
전도사님들과 단둘이서 성경공부할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작은 시골교회여서 어린학생들이 많지 않아서 정말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성경공부를 참 많이 했습니다. 부흥회도 성경공부를 하는 모임으로 많이 가졌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은 정말 남다르지 않게 조금 많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을때도 남들보다 조금더 해석을 잘했습니다. 제가 여호와증인과 성경으로 토론을 할때가 국민학교 6학년때였습니다. 여호와증인과 정말 엄청난 토론을 했었죠. 부모님들이 먹고 살기위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시는 바람에 몇시간을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그들을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쪼끄만게..했을 것입니다.
중학교때는 통일교 다니던 친구와 문선명을 가지고 대판 싸우기도 했습니다. 이단들과 많은 다툼을 하면서 이단들의 특성을 알게됬고 그들이 얼마나 답답한 인간들인지 알게됬습니다. 설득이라는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것이죠.
신학교에 다니면서 정말 기뻤던것은 조직신학 교수님께서 많은 교파들의 중심 사상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지않고 신앙이라는것이 바로 이런것이다. 그러나 저렇다고해서 틀렸다고 말할수는 없다고 각 종파들(감리/침례/성결)의 특성들을 가르치고 자기는 칼빈주의가 가장 성경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조직신학 강의를 마칠때 전 많이 감동했습니다.
초교파 신학대학에서 성경적으로 가르친다고 하면서 가장 성경적이라고 가르친 것은 바로 개혁주의 신학인것이었습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기초로한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가장 이세상에 나와있는 책들중에서 가장 성경적으로 잘 기록한 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신앙의 기초는 바로 여기에 서있습니다.
학교를 남들보다 조금 일찍들어간 관계로 학교생활을 잘 적응하지 못하다가 대학가서야 비로서 공부다운 공부를 했던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너무나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만약 제나이에 학교에 들어갔다면? 지금의 제 위치가 아니라 조금더 세상에서 이름있는 위치에 올라있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일찍 학교에 들어가는 바람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금 외톨이로 살아왔는데 그때문에 하나님과의 많은 만남을 가졌던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라고 할까요?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것보다 집에서 성경책을 읽으면서 찬양부르는것이 낙이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인쇄소를 운영하고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교사 추천을 받아서 현재교회에서 교사로 봉사하면서 또 운전도 배워서 차량봉사로 봉사하고 20년을 교사로 봉사하면서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나서는것을 별루 좋아하지 않아서 남들 비판하고 하는걸 싫어했습니다.
이단에 대해서도 별루 관심도 없고 그저 아이들과 노는것이 행복했던 시간이었죠. 저희 교회에서는 솔직히 제가 신학생인지도 관심도 없습니다. 장로님들도 제가 신학생이라는걸 잘 모르죠!! 아이들과 뛰어노니 철없는 선생님이었습니다. 늦깍이로 장가를 갔는데 그것도 참 교회에서 교사직/서리집사직을 박탈당하고 나서 결혼했으니 이또한 하나님의 섭리이겠죠.
제가 방언을 사모한적이 있었습니다. 뭔가 특별한것을 받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병고치는 은사도 받고 싶었죠. 그래서 이름좀 날리고 싶었습니다. 몇달을 기도했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는겁니다. 방언도 안하고 병고치는 은사도 못받고...하나님이 나 사랑하지 않나? 의문도 들어서 이번엔 사단에게 구해보기도 했습니다. 사단아 너가 그렇게 능력이 많으면 나에게 그런 능력좀 줘봐!! 그런데 웃기죠^^ 제가 그랬으니....그런데 사단도 아무것도 주지 않더라구요. 당연한거죠...
저는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하나님께 삐지기는 했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족하다고 말씀했습니다. 제가 너무 은혜가 족했습니다. 고1때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많이 슬펐습니다. 그리고 새어머니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집안이 조금 망했습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전 부자로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집안이 망해서 겨우 밥먹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밥먹고 사는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면 신앙생활하는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가끔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 족하다는 말씀이 너무나 내 마음에 가득차있어서 날마다 족하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정말 정말 어려운적이 있었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때가 있었습니다. 매달 몇십만원씩 돈을 내야하는데? 정말 답답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 그 힘든것을 막아주시고 더 넉넉히 채워주셨습니다.
고3때 작은 교회에 잠깐 외출한적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싸움이 벌어져서 다시 지금의 교회로 옮기게 되었지만 작은교회에서 많은 형제 자매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편지를 쓰고 좋은 관계를 맺었는데 교회 분열로 지금은 잘 못만나고 있지만 그 교회안에서 어떤 자매에게 미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좀 못생겼습니다.
그 자매를 좋아한것도 아닌데 그저 교회안에서 한 형제이기 때문에 많은 형제와 자매들에게 관심을 가진것 뿐인데...그 자매만 만나면 시베리아 한복판에 서있는것처럼 정말 춥고 황량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다짐을 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무엇때문에 저러는지 모르겟지만 제가 어떻게 해야합니까? 한참을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보여주셨습니다. 일흔번에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성경구절이 제 눈에 확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어떤 모습을 보여도 용서하리라는 마음을 대하니 그 자매가 사랑스러워졌습니다. 아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사랑의 마음이구나라는걸 깨달았습니다. 사랑이라는것이 다른것이 아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것 그것이야 말로 사랑이고 그리고 나를 용서한 예수님의 그 사랑을 실천하는것이야 말로 진정 사랑이라는걸 알게됬습니다. 용서할 자격이 없는데 어떻게 용서하고 살라는가? 하고 말하는 분도 계실겁니다.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것같이 우리의 죄도 용서해주옵시고...라고 기도하는것을 기억하십시요!!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해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은 죄를 하나님께서 다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래를 위해 근심하고 걱정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그때 공장에서 일하면서 한달 15만원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암담한 미래를 보니 정말 많이 슬펐는데 길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교사의 일을 할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몇주후에 저희교회에서 교사가 필요하다고 부모님께 말해서 제가 교사로 가게됬습니다.
1학년 아이들을 맡아서 가르치면서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거구나...하면서 아이들을 열심히 보살폈습니다. 처음엔 아이들이 한명도 안나올때가 있어서 정말 힘든적이 있었는데 어느날 아이들이 전부 출석한 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과 한해를 마칠때까지 출석율이 거의 100%에 이를만큼 행복한 주일학교 선생님의 첫출발을 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지금 결혼할 나이를 넘어서고 있죠^^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누군가 여기 신학교에 가보라고 해서 상계동 한국성서신학대학에 원서를 넣었고 합격을 해서 학교를 어렵게 어렵게 졸업까지 했습니다 .
학교 졸업하고 또 앞날이 걱정될때 인쇄소를 차리게 됬습니다. 군대에서 배워온 컴퓨터 워드로 일을 할수 있게된것이죠. 지금까지 이 직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장인거죠^^ 조금 시간을 맘대로 낼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쓸수도 있는 거죠.
아이들과 그냥 노는 재미로 살았는데, 물론 성경공부는 필수!! 아이들에게 신앙에 대해서 잘 가르치려고 애많이 썼죠!! 그리고 저희 교회가 2004년도부터 분쟁이 시작되더니 결국 2006년도에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현재 우리교회 부임한 담임목사로 인한 분열이었죠!! 분열의 근본 원인은 알파코스였습니다.
그리서 2007년도에 알파코스를 연구하다가 여기까지 오게됬습니다. 알파코스를 연구하다보니 정말 교회들마다 많이 심각해져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배시간에 설교들으면 잠자기 일쑤였는데.....신학교때 들었던 설교와 너무 동떨어진 설교때문에 정말 설교 듣기위해서 교회간적이 없을정도로 아이들때문에 교회에 가게됐죠. 솔직히 그렇습니다.
제가 현재 우리 대한민국 교회의 설교를 요약해서 말하자면.....시편 1편에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라는 말씀이 이렇게 변질되었다고 보시면 이해하게 쉬울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돈을 벌기위해 악인의 꾀를 쫓고 죄를 지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하고 높은자리를 탐내도 상관이 없다. 복있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고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이고 명예와 이름이 높이 나는 사람이고 좋은 집과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필요할때만 써먹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것으로 저는 요약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얼마나 교회들이 성경을 바로 가르치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인지 어떤 사람이 정말 복있는 사람인지 잘 가르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좋은옷 못입고 좋은 집 못살고 좋은 차 안타면? 저주받은 사람이 되어버리는 현재 교회들의 현실을 보면서 정말 많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제가 알파코스를 정말 싫어하는 것중에 하나가 이게 셀교회의 표본인데.....셀교회를 추구하는 목사들의 설교는 만명교회를 추구하는 설교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 100만원하는 성도가 100명이 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대형교회를 만들기위해 알파코스를 하는것이죠!!! 결국 성경말씀대로 사는 신앙인이 아닌 교회의 대형화를 위해서 성도를 소모품으로 만들어버리는것이 알파코스의 핵심입니다.
이 알파코스때문에 제가 깼습니다. 잠에서.....그리고 담임목사의 설교를 잘 듣기로 했습니다. 열심히 듣습니다. 무엇이 틀렸는지 오류를 지적하게 됬습니다. 처음엔 담임목사가 설교가 정말 절망적으로 했는데 요즘은 반쯤 절망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틀린것을 자꾸 지적하니까 담임목사가 짜증을 내더니 결국은 자기 스스로 바꾸고 있습니다. 성도님들이 이젠 잘 듣지 않아요!!! 하도 오류가 많아서 이젠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담임목사말을 듣지 않게됬습니다.
비판하는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에 힘입어서 비판합니다. 저도 비판받을수 있음을 잘 알고 비판합니다. 오류를 지적받으면 회개하고 반성하고 돌립니다. 신앙은 그렇습니다. 잘못한것이 있으면 인정하고 되돌리는 것입니다. 자기는 맞다고 우길 이유가 없습니다. 무엇이 틀린건지? 논리적으로 한번더 고민하고 바른 길을 찾아가는것이 옳습니다.
이땅에 사는동안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부족합니다. 서로 서로 그 부족함을 채우고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누구는 정말 완벽해서 오류가 없다는 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특히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통일교도 그렇고 여호와 증이도 그렇고 안식교도 그렇습니다. 개혁교회는 틀렸고 자기들은 맞다고 합니다.
개혁교회는 날마다 개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위해서 오류가 생기면 그것을 뜯어 고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칼빈주의도 완벽한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땅에서 칼빈주의 신학보다 더 완벽한 신학은 찾기 힘듭니다.
교회는 날마다 새로와져야하지만 또한 초대교회의 모습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날마다 새로와진다고 성경을 고쳐서도 안됩니다. 성경 66권은 변질되어서는 안됩니다. 첨가해서도 안되고 빼도 안됩니다. 그 말씀의 중심이 흔들려도 안됩니다. 변질되어서도 안됩니다. 날마다 새로와지는것은 죄로인해 더러워지는 우리의 양심과 삶이 주님앞에서 날마다 거룩하게 돌아와야 하는것입니다.
우리 맘대로 성경을 해석해도 안되고 성경을 모르면 모르는대로 놔두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그것을 풀수 있을때 우리가 성경을 푸는것이지 사사로이 맘대로 풀수 없는것입니다. 성경을 이해하고 알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선생님들을 보내주신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서 배웁니다. 바르게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배우지 못하면 잘못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 오류가 생깁니다. 바른 목회자에게서 바른 신학을 배우고 바른 신앙을 배우지 못하면? 잘못된 길로 갈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른 길을 알게되면 돌아와야 하는데? 자기가 배운것이 옳다고 극구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큰일납니다.
이땅에 옳은것은 하나님뿐입니다. 말씀 뿐입니다. 말씀을 자기맘대로 해석하고 그것이 옳다고 하면 안됩니다. 성경 전체의 기본 뿌리가 있습니다. 그 뿌리가 흔들리면 안됩니다. 성경은 성자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뿌리를 흔드는 자들이 바로 이단들입니다. 내가 예수라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신천지의 이만희 같은 자입니다.
많은 이단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이럴때 우리가 할수 있는건? 말씀을 바로 아는것입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는 것입니다. 나를 잘못된길로 끌고가는 세력으로부터 벗어나는것입니다. 메트릭스같이 우리를 조종하는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독립적인 개채가 되는 것입니다.
변승우 목사의 하수인이 되는것이 아니라 변승우 목사를 뛰어넘는 개인 곧 독립적 개채가되어서 변승우와 동일선상에 설수 있어야합니다. 변승우 목사보다? 나는 못하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변승우 목사의 가르침이 옳다고 그 아래 서서도 안됩니다. 칼빈주의가 틀리다고 말하고 변승우 목사 밑에 서면? 더 틀리는 것입니다. 칼빈주의와 동일한 선상에 서서 하나님을 볼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개개인이 독립적으로 성경을 바르게 보는 눈을 갖지 못하고? 누군가에게서 끌려다니면? 메트릭스에 갖혀있는 삶과 마찬가지입니다. 칼빈은 우리를 가두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가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아서 하게끔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의지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만날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봅니다. 제가 육신의 아버지에게서 생명을 부여 받았지만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지만 아버지와 전혀 다른 독립적 개채인것처럼!!! 하나님도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새로운 인생을 허락하신것은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고 하나님을 만나기를 소망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끌려다닙니다. 독립적 개채가 되지못하고? 뭔가에 이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옳다고 이리로 가고 저것이 옳다고 저리로 가고.....장경동이 옳다고 장경동에게 몰려가고 김기동이가 옳다고 김기동에게 몰려가고....이러면 안됩니다. 우리는 독립적 개채가 되어서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우리가 의지해야할 분은 하나님이고 말씀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배우는 길은 말씀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는것입니다. 변승우가 해석해준 말씀이 옳다고 믿어서도 안되고 제가 하는 말이 옳다고 따라가서도 안됩니다. 스스로 발견하고 깨달으십시요!! 하나님을 만나십시요. 그 중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힘들면....꼭 우리의 스승이었던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기를 원합니다.
기초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이 되어야합니다. 그런 오랜 세월동안 많은 신학자들이 집대성한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성경을 우리가 이해하게 쉽게 풀어놓은것입니다. 그리고 성경해석의 중심이 내가 아닌 하나님이 되어야함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중심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해석하십시요!!!
하나님이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이 성경의 주인입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성경을 바라보십시요!! 자녀는 아버지의 말씀을 바르게 깨달을수 있습니다. 그 명령을 이해할수 있습니다.
신앙은 자라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적 어린이의 생각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면 이제 어른이 되면 어른의 생각에서 신앙생활을 하게됩니다. 50대에서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그의 신앙은 어린아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50대 어린애 신앙에다가 나이가 많다고 많은것을 주문하면? 상처받고 신앙생활을 힘들게 하게될것입니다.
신앙은 연륜이 중요합니다. 내가 10년을 신앙생활했다면 그 만큼 자라있을 것입니다. 신앙에도 사춘기가 있고 안정기가 있습니다. 어린아이 시절이 있는것처럼 완성되는 시기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큰 차이는 없습니다. 자기가 나이가 있다고 세상을 안다고 신앙도 다 아는것처럼 행동하면? 큰일납니다. 교회안에서 문제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사람은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나이들어서 신앙생활을 한 분들입니다. 사회적으로 이름도 있고 돈도 있고 능력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 한분들이 장로가 되고 교회의 중직이 되면.....신앙연륜이 아니라 오직 사회적 위치에 의해서 결정되는 일들이 많이 있죠.....교회가 성경대로 운영되는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 운영되다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럴때일수록 더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을 잘 가르치고 양육해야만 문제가 해결되는데? 인간적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보니..결국 교회가 분열되는 일들도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 기독교 지도자가 없는 이 시대에...정말 많이 안타까운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 참 지도자가 나서서 많은 사람들을 잠에서깨우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선가 그런 사람을 예비해두셨을 것입니다. 저는 부족해서 아니니까^^ 짐 지우지마시고....잘못하면 교만에 빠져서 큰일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자라야합니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더 많이 개혁적이고 깨달아야합니다. 시인들이 가장 멋진시를 남기는 시기가 언제인지 아세요...바로 사춘기입니다. 그 시인들이 나이가 먹어서 노인이 되면 시의 내용은 깊어지지만 멋진시를 쓰기 힘들어집니다.
정말 멋진 시를 쓸수 있는 요동치는 사춘기 시절의 그 신앙생활이 정말 멋져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기를 지나서 깊음있는 신앙으로 자라는 제가 되기를 날마다 바라보고 또 그렇게 되기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정말 아름다운 신앙생활하는 깊음있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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