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를 비판하고 판단할 자격이 없는 인간들입니다. 만약 누구를 비판하고 판단한다면? 그 비판과 판단에는 용서와 사랑이 있어야합니다. 인간이 가장 하기 힘든것이 바로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는 한편으로는 증오로 한편으로는 무관심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믿는자들에게서 찾기 쉬운 오류는 바로 내가 옳다라는 고집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고 많은 믿는분들이 이런 오류를 쉽게 범하고 있습니다. 내가 옳습니까? 아마 많은 분들은 아니라고 대답할겁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는 내가 옳다라는 생각을 맘속에 가지고 살고 있고 그럴수 밖에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옳다라는 생각을 갖는것은 바로 우리가 죄인인 탓에 그렇다는걸 아실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틀린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옳은것은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옳은것의 중심에 내가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누가 옳다고 판단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누가 틀리다고 말할수도 없습니다. 만약 이렇게 말할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을 가지고 용납하는 마음에서 해야합니다. 문제는 누구나 이런생각을 가지고 있는것이 문제인것입니다. 그 기준이 모호하고 어렵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복잡하고 고단하고 피곤한것일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기준이 되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님조차도 간음하다 끌려온 여자를 정죄하지 않았다는 그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합니다.
욥은 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욥의 세친구는 너가 죄를 져서 심판을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들 다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볼때 욥도 옳고 욥의 세친구도 옳을수 있지만 하나님은 다 틀렸다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율법과 복음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율법이 없으면 정죄함이 없기 때문에 인간이 무슨 죄를 지어도 죄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율법의 의미는 바로 심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판을 받지않으려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최근에 쓴 글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망의 법(율법) 생명의 법(하나님의 사랑)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법아래 있다고 해서 우리가 사망의 법을 무시해도 된다는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망의 법은 이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적용되는 법이고 생명의 법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법입니다. 사망의 법에 헤어날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한것입니다. "나는 곤고한 자로다" 사망의 법에서 바울조차도 벗어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님은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사망의 법에서는 자유로울수 없지만 생명의 법으로 인해 우리는 다시는 정죄를 받지 않게되었다는 사실을 바울사도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주의? 무 율법주의?같은 것이 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서로를 갈라놓고 서로를 찢어놓는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어떤 존재들이기에 서로를 해하고 서로를 의심하면서 서로를 향해서 독설을 퍼붓는단 말입니까? 무엇때문에 연약한 사람들을 향해서 자기가 좀 안다고 좀 가졌다고 그들을 향해서 상처주는 말들을 한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다 이렇게 서로의 삶에서 느끼고 체험하고 그리고 경험한 바탕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경험들을 하게 하고 체험들을 하게 하는것은 그 사람들만의 인생이 있고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삶과 이삭의 삶은 다르고 이삭의 삶과 야곱의 삶이 다릅니다. 야곱의 삶과 요셉의 삶이 다르고 요셉의 삶과 유다의 삶이 다릅니다.
우리는 이런 서로 다른 삶을 살지만 서로 다른 삶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틀렸지만 틀렸다고 해서 서로 망해야 하는것이 아니라 서로 흥해야 하는것입니다.
왜? 판단하고 왜? 우리는 정죄를 합니까? 우리가 그럴권리가 있습니까? 우리는 사랑할 의무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미리 실천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해야할 사랑을 먼저 실천했고 그리고 우리에게 그 길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길이 좁고 험하고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그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워할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는 싫어할 권리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는 다 똑같이 저주받아 멸망속에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안타까움은 서로를 향한 위로와 권면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그 부족함을 서로 나누며 세워져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것입니다.
율법과 복음을 말하면서 우리는 율법의 잣대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복음을 말한다고 하면서 그 말에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생명의 법인 복음은 무엇입니까? 용납입니다. 내 아들이 어디서 살인을 하고 왔다고 해도 그 아들은 내 아들입니다. 내 아들이 어디서 간음을 하고 왔다고 해도 그 아들은 내 아들입니다. 내아들이 어디서 도적질을 하고 왔다고 해도 그 아들은 내 아들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법입니다.
생명의 법은 정죄하지 않습니다. 징계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다하게 합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는것은 의무가 아니라 책임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세상사람들이 지키는 법을 나는 더 잘 지켜야 하는책임이 있는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망나니로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망나니로 살아도? 하나님은 그 아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끄러워서 하루 빨리 자기 나라로 불러올수도 있습니다. 더이상 욕되지 않게 살게 하려고...막되먹게 살았다고 해도 우리가 보기에 저는 구원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에게는 사랑스러운 아들인것입니다.
우리가 왜? 판단하고 정죄합니까? 우리에게 그럴권리를 언제 하나님께서 주셨습니까? 그리고 왜? 편견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과거의 모습에 비추어서 편견을 가지고 판단을 해버리십니까? 그사람이 과거에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고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닙니다.
지금 그가 어떻게 변해있는지? 어떤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지를 우리는 바라보고 기뻐해야합니다. 우리는 기뻐해야할 자세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비판의 눈으로 쬐려보는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고 어떻게 사랑스러워져 가고있는지를 바라보고 기뻐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그를 조금더 사랑한다고? 질투한다면? 그 가정이 바로 서겠습니까? 맨날 싸움질만 하는 가정이라면? 그 가정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겠습니까? 우리가 우리안에서 아무것도 아닌것가지고 싸우고 투정질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손가락질을 할것이고 욕할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은 사랑으로 넘쳐야합니다. 그래야 이단들도 번성하지 않을것이고 교리문제로 교단들이 시끄럽지 않을것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자기것만 주장하는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직 옳은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생각을 옳게말한다고 하는것도 문제가 있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딱 한가지 입니다. 사랑으로 용납하는것입니다. 서로 사랑으로 용납할때 하나님의 가정은 행복하고 기쁨으로 넘칠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내 주장을 조금 굽히고 남의 주장을 조금더 들어주고 그리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 되도록 서로 권면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되도록 서로 용납하면서 한걸음씩 그 나라로 나아가는 그 삶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삶이 아닐까요?
율법도 중요하고 복음도 중요합니다. 중요한것은 율법은 생명이 없고 정죄하는것이고 복음은 생명이 있는 법입니다. 율법의 정죄를 복음이 변호하여 우리를 구원하는것입니다. 율법으로는 구원받을 사람이 한사람도 없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 곧 성령님의 역사하는 그 법안에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되는 것이 복음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저주받은 존재를 깨닫고 복음으로 나아가야하지만 그럴수 없습니다. 율법은 바로 그런 점에서
필요한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받지 못할 존재임을 깨닫는것입니다. 율법을 다 지키면 구원얻는다는것은 율법의 본질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죄가 없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스스로 속이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킬수 없다는것을 깨닫는것!!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저주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것이 바로 하나님이 율법을 준 이유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복음으로 나아가게 하는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신 그 사랑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구하고 성령님의 구원하시는 역사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을 믿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율법을 알게되는것입니다. 복음을 통하지 않고는 율법을 알수 없습니다.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율법을 지킬수 있게된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된 몸으로 율법을 완벽히 지킬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은 은혜입니다. 구원을 얻고나서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잃을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바로 여기서 헷갈리는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본질상 지킬수 없는 존재임을 망각하는것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얻어 이제 의롭게 되었으니 판단할 자격이 생겼다고 착각하고 서로를 향해 정죄를 남발하는것입니다. 너는 그렇게 살았으니 구원얻기 틀렸다고 잘못됬다고 말하는것입니다. 이런 착각들때문에 교회가 어지러워지고 기독교가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잘못 세상에 전파되는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깨닫고 우리의 존재를 바로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원하는 그 자리까지 우리가 자라가는것 아브라함이 갈데아 우르를 떠나서 이삭을 바칠때까지의 여정 모세가 광주리에서 바로 딸의 왕자로 자라면서 그가 실패를 맛보고 떨기나무 앞으로 나아갈때까지의 그 인생의 여정이 바로 지금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길을 순종하며 나아가는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이지 그 길을 가는것을 자랑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것을 한번더 생각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곡한 마음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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