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바로 나의 존재에 대한 의미일것입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왜? 이땅에서 살아가야하는가? 내가 가야 할길은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는 도데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하나님을 믿게된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교회에 다니고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안에 있으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이 기독교인들을 다 욕하고 기독교가 정말 악한 종교처럼 느껴질 정도로 세상은 극도의 증오를 가지고 있는데? 왜 나는 이 기독교를 버리지 못하고 있을까? 오히려 더 기독교를 변증하고 이 기독교를 세상속에서 빛으로 나타내려고 애쓰고 있는가? 도데체 나라는 존재가 왜 이렇게 됬을까? 왜? 나는 다른 사람처럼 살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남들처럼 술집도 가고 싶고 남들처럼 주말에 여행도 가고 싶은데? 왜 나는 주말에는 교회에 가야하고 수요일 금요일 세벽으로 기도회를 참석해서 기도를 하고 왜 이런 의무적이고 형식적인 삶을 살아야하나? 도데체 왜 내가 이렇게 될수 밖에 없는가? 나도 자유를 만끽 하고 살고 싶은데? 나를 억압하는 무엇인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데......
우리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에서 우리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나라는 존재를 잊는 방법으로 해탈을 선택합니다. 나의 욕망 나의 욕구 세상으로부터 도피해서 나라는 존재를 잊고자 하는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무념 무상에 빠지면 모든것을 뛰어넘는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거짓을 진실인냥 따라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것이 바로 이 때문일것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내가 하나님을 믿었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믿게 했느냐의 그 차이에서 부터 비롯된 것임을 우리는 인지해야합니다. 중생에 대한 문제 거듭남에 대한 문제에 혼동을 느끼는 분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문제는 내가 믿은것같은데? 성경에서는 내가 믿은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게 했다는것이고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것같은데 하나님이 오래전에 이미 나를 선택했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혼란에 빠지게 되는것입니다. 그럼 나라는 존재는? 왜 필요한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란 것이죠. 하나님이 다 하실거면? 왜? 내가 복음을 듣게 하시고 왜 내가 이 교회에 나오게 하신것인가? 차라리 세상사람들처럼 맘껏 쾌락과 향락과 즐거움을 누리다가 죽을때 하나님이 뿅하고 나타나서 이제 나믿고 천국가자 하면 너무나 쉬운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답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어리둥절하고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정답이라는 사실에 "그럼 나의 존재는 왜?"라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수 없는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연한것은 우리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수 없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할수 없다는것이 당연한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첨부터 부모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깨닫고 나서야 부모님을 알아가는것처럼 어린아이때는 어린아이로 살다가 사춘기가 되면 부모님이 내 부모가 맞나? 내 부모님이 맨날 다리에서 주워왔다고 하니 내 부모가 나를 낳고 버리고 간걸 지금 부모님이 주워서 키운것은 아닌가? 하고 의문을 가지고 부모님에게 때쓰듯이 부모님이 내 부모 맞습니까? 라고 묻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이렇게 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 맞습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맞다 아들아" 그런데 우리는 그말을 쉽게 믿지 못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기대와 요구를 가지고 계신것처럼 우리 하나님도 우리를 향한 기대와 요구가 많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고 부모님의 훈계와 징계를 들으면 우리 부모가 나를 사랑하는것이 맞는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것같다.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의 기대는 내가 따라가기에 너무나 힘들고 어렵기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 맞습니까? 그런데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 아버지의 요구는 너무나 어렵고 힘듭니다. 원수를 사랑해라!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대라. 오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같이 가주라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까지 주라.....선한 사마리안인처럼 되라 거기서 더 나아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따르라고 말씀하시니.....하나님 아버지 전 그거 정말 못하겠습니다. 라고 손사래를 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하실수 있다." 우리가 이 일을 우리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너무나 힘든것입니다. 여전히 나라는 존재가 살아있어서 내가 할수 있다고 말할수 있는 교만이 내 안에 그 죄악이 내안에 살아있기 때문에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할수 있는가? 못하는가의 문제가 바로 신앙입니다. 이 신앙의 문제에서 가장 어려운건 바로 하나님이 내 눈앞에 있지 않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보인다면? 하나님이 정말로 통치하는 세상이고 그 통치아래 내가 왕자로서 있다면 우리는 너무나 쉬운 신앙생활을 할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날마다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이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분명히 못박았고 우리는 이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리는 세상에 있을 뿐만 아니라 공중권세잡은 악한 영의 세력안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언제나 전쟁이고 영적 싸움안에 있는것입니다. 이 싸움을 이기는 길은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거한다는 의미에 대해서 나라는 존재를 잊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안에 있으니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그리스도가 살아서 역사해야 한다는것입니다.
우리의 기독교는 불교와같은 인본주의 내가 무엇을 할수 있다고 말하는 종교가 아니라 나는 할수 없고 오직 하나님이 하신다고 믿는것이 우리가 믿는 기독교임을 날마다 묵상하고 잊지말아야 하는것입니다. 기도도 말씀읽는것도 공부하는것도 우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것을 날마다 배우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까? 그러면 이 말씀을 날마다 상고하십시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절)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살고 있음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내가 살아가는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평안을 누리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그 십자가를 지셨음을 우리가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이고 그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중심에 나를 두지 마십시요. 나의 존재를 그리스도안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내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마십시요. 그 일을 하시게 하시는 성령하나님을 의지하는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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