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이 많이 오해하는 점이 있다는것은 오래전부터 느낀것이고 이것을 어떻게 말해야할까? 늘 고민중에 있었는데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이 오해하는 점과 그리고 이 사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야하는지를 우리 기독교인들이 분명히 인식하고 성령님이 이끄시는 삶이 어떤 삶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성령의 역사하면 생각나는것이 "기적/이적/능력/초월적인 역사" 뭐 이런것을 생각할수 있을것입니다. 그런것말고 성령의 역사하면 "의를 행하는것/죄를 짓지 않게되는 능력을 갖게되는것"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는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인정할수 있습니까?
성령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가 바로 성령의 역사인데 이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 아들을 내어주신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믿고 그 아들을 영접하고 구원얻게하는 역사인데 이 성령의 역사는 가장 기초적이고 모든 사역의 중심이고 핵심인것은 두말할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고민들을 가지고 있고 또 성령충만한 삶을 추구하기위해서 애쓰고 기도하고 방언을 사모하고 병고침과 각종 은사들을 사모하고 살고 있을까요? 구원얻은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알수있도록 우리가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까요? 기적이 나타나고 표적이 나타나면 세상이 우리 하나님을 발견할거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정말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이 아닐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표적을 보여줘도 기적을 나타내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을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준 표적과 기적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때 강도 두사람 말고 예수님을 따라서 십자가를 진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느끼고 있습니까? 성령의 강림후에 예수님을 따라서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지만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들조차도 십자가를 지지 않았던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표적과 기적이 성령의 역사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만한 기독교인들이 또 얼마나 될까요? 저가 이렇게 말하면 아마 많은 분들이 성령의 역사속에 표적과 기적이 나타난다고 말할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표적과 이적은 나타나지만 그것이 중생이나 거듭남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것임을 인정할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 하는 것입니다.
표적과 이적을 나타내도 성령하나님의 중생케 하는 역사가 없이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를 우습게 여기고 더 큰 기적과 더 큰 이적과 더 큰 표적을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할수 있는 능력이 한계가 없다고 말한다면? 성령님이 함께하면 더 큰 이적과 표적을 나타낼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자가 될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한 삶이라는게 무엇입니까? 날마다 고민하는 여러분들.....왜? 고민하고 무엇때문에 고민합니까? 저도 어릴적에 고민했습니다. 방언도 해야하고 병도 고쳐야 성령충만하고 하나님을 영접한 자녀로서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님을 깨달은것은 아무리 기도하고 노력해도 방언도/병고치는 능력도 받지 못하고 믿음이 뭔지 자포자기할때 비로서 그것이 믿음의 증거가 아님을 깨달은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증거! 곧 성령충만한 삶의 증거는 바로 주안에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도록 하시는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의 열매는 우리가 잘 알듯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에서 너무나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열매들속에는 기적도 표적도 방언도 능력도 없습니다. 이 열매들은 인간들이 할수 있는 우리들이 할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입니다. 사랑/희락/화평/온유/오래참음/자비/양선/충성/절제니......우리가 할수 있는것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할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할수 없는 것들임을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할줄도 모르고 주안에서 희락과 화평을 누릴줄도 모르며 온유하지도 않고 오래참지도 못하고 자비롭지 않으며 선하지도 않고 충성할줄 모르고 절제보다 탐욕을 더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다는 말이죠^^
이런것들이 어디서 나타날까요? 이런 열매들이 어디서 나타나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성령충만한 삶이 어떤 삶인지 날마다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열매들이 어디서 나타나는 걸까요? 우리의 삶에서 나타난다고 말하기 너무나 쉽습니다. 그럼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데...우리의 삶이 무엇인지 똑부러지게 말하라고 하면 참 어려울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은 바로 아내와 남편/부모와 자식/상사와 직원/정치인과 국민/이런 사회적 관계속에서 우리의 열매들이 나타나는 것임을 우리는 날마다 잊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적 관계속에서 열매를 나타내고 살고 있다면? 지금처럼 이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개독교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살게될것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개독교라고 말을 듣게된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사회와 단절된 종교성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와 단절된 종교성 추구는 은사주의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회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나타낼수 있는것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세상에 나타낼수 있는 방법이 교회를 간다거나 아니면 표적과 이적을 나타낸다거나 아니면 목소리를 크게 내어서 예수천당/불신지옥을 외치는 일 밖에 할수 없다는것에 그 문제가 심각히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이 이런 것들을 통해서도 역사하지만 그것은 성령하나님이 너무나 안타까운 바람에 하시는 일임을 우리는 아셔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을 향해서 한숨을 내쉬는 하나님의 그 한숨을 느끼십니까?
우리의 가정에서 부인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남편은 교회를 절대로 싫어합니다. 그런 어머니를 자녀들이 정말 못마땅해합니다. 그런 부인이 다니는 직장에서 그 부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 기독교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교회의 권사이면서 아버지가 교회의 장로이면서 자식을 대학 보내기 위해서 주일조차도 교회나오지 못하게 하고 공부를 시키는 부모님들이 계신다면? 과연 그 부모님들이 자식을 제대로 교육시키는 것일까요?
이랜드 사태를 잘 아실것입니다. 회사의 사장은 십일조를 많이 낸다고 교회에서 극찬하고 자랑하는 사장인데? 그 직원들은 고용불안으로 연일 대모하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 사장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합니다. 과연 그 사장에게 손가락질을 했을까요? 그가 믿는 하나님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했을까요?
이런삶과 성령충만한 삶과 전혀 다른 것입니까? 혹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는 삶이 성령충만할 필요가 없는 일상적인 삶이고 성령충만한 삶은 교회안에서 하면 된다? 교회에서는 거룩한 권사 멋있는 장로이면서 가정과 회사에서는 군림하고 권력을 가지고 탄압하는 자로 비췬다면? 그로 인해서 누가 욕을 먹을까요? 성령충만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세상사람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을 향해서 개독인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게 될것입니다.
성령충만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구체적으로 에배소서에 나타납니다.
에배소서 5장 17절~6장 9절까지의 말씀..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성령충만한 삶이 어떤 삶입니까? 이 말씀을 늘 묵상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서로 피차 복종해야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위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외에 어느누구도 높은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서로 평등하고 높고 낮음이 없는 그런곳입니다.
성령충만한 삶이란 한몸된 우리의 지체를 지키는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훼손되지 않고 서로 서가기위해서 우리는 우리자신을 포기하고 지체를 세우는 작업을 해야하는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아내와 남편이 서로 사랑해야하고 부모와 자식도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순종하는 관계가 되어야하며 직장에서도 사장과 종업원이 서로 싸우지 않고 서로 위하고 돕는 위치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사는것이 바로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한몸을 잘 이루어가는 것이고 가정이 파괴되고 직장이 무너지는 이런일이 벌어지지 않고 오히려 이런 삶을 통해서 가정은 행복을 누리고 화평을 누리게 될것이고 직장은 발전하고 성장해 나갈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삶이 어떤 삶입니까? 기적/표적/방언/신비한 체험들을 하게 하는것이 성령님의 역사이고 그런 역사를 나타내는것이 성령충만한 삶입니까? 성령을 체험한다고 하는 그 체험이 무엇입니까? 방언하는것입니까? 아니면? 병고치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7장 21절~23절 말씀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왜 주님은 병고치고 선지자 노릇하고 권능을 행한 사람들을 향해 불법을 행했다고 말하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느것이 아니라고 말했을까? 우리는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뜻은 쉬운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합니다. 능력을 통해서 전도를 하고 권능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것은 어려운길이 아닌 쉬운길을 택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저들이 그걸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략질하는 이리같은 품성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양의 모습으로 나타나나 결국은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그 거짓 선지자들 능력있는 사람들의 그런 행위를 보고 우리가 할수 있는건? 그들이 바라는데로 헌금을 내는것이 전부일겁니다. 헌금을 더 많이 걷기 위해서 거짓선지자들은 더 큰 능력을 보여줄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좁은길입니다. 쉬운길이 아니라 어려운 길입니다. 그 어려운길이 무엇인지? 우리는 고난과 역경을 말합니다. 어려운곳에 선교를 가는걸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길이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내 지갑에서 내 이웃을 위해서 내가 가진것을 꺼내는것만큼 어려운것이 없습니다.
정말 어려운것이 내 아내와 내 자식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바가지 긁는 아내와 말안듣는 아이들을 보면서 인내하고 참아야하고 사랑해야 하는것이 정말 좁은길입니다. 일안하는 직원들을 잘 추수리는것 월급 잘 안주는 짠돌이 사장을 보면서 성실히 열심히 일해야하는것....이런것이 우리에게 가장 힘든일들입니다.
주일 교회가기위해서 일찍 일어나는것이 십자가의 길이 아닙니다. 가끔 목사님들이 이런 설교 하는데 이건 쉬운길입니다. 진짜 어려운길은 주일 나를 위해 그 쉬는 시간을 쓰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그 뜻을 위해 그 하루를 하나님을 위해 쓰는것이 진정 어려운 길인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것이라고 하면 교회에서 주구장창 사는 걸로 생각하는데...제발 이런 사고방식을 심어준 목사님들은 반성해야합니다. 내 부모를 공경하고 내 아내를 사랑하고 내 자식을 위해서 그리고 직장의 직원들과 사장을 위해서 그 시간을 쪼개고 나를 위해서 아닌 내 주변사람들을 위해서 그 시간을 할애하는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이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임을 우리는 날마다 상고해야하는 것입니다.
이길이 어려운 길입니다. 정말 힘든것이 바로 내 가정안에서 화평을 누리게 하는것이 정말 어렵고 힘듭니다. 여러분들 안그렇습니까? 이혼율이 높아져가고 실직과 문닫는 회사가 늘어나고 비행청소년이 늘어나는 이유가 바로 성령충만한 삶이 어떤 삶인지 우리는 그것을 헷갈리고 혼동하면서 모든 시간을 교회에 바치고 능력있는 선지자/병고치는 자들 기적을 쫓아다니면서 부모와 자녀와 아내와 남편을 팽개친 그런 삶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아사는 삶이고 여러분의 삶을 노략질하는 이리들의 흉포한 모슴이라는 것을 분별해야 하는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상세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바라보십시요!! 전도를 강요하면서 가정은 파괴되어져가고있습니다. 신사도 운동이라고 불리는 운동들이 전교회들을 휩쓸고 다니고 있습니다. 알파코스 g12로 가정이 파괴되고 교회가 파괴되고 이혼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부부와 부모와 자녀들의 갈등이 심각해져가고 있습니다.
큰*음교회같은 신사도주의 교회들이 나타나서 선지자 학교니 하면서 성도님들을 향해 의롭게 사는길이 무엇인지 바르게 가르칠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죄를 짓지 않는 것으로 모든걸 만족하게 하는 거짓선지자들이 지금 난무하고 예언과 기적을 통해서 사람들을 속이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여름성경학교의 제목이 성령을 체험하자!! 이런식의 거짓가르침들로 아이들마져 속이고 있는것이 지금 보수교단이라고 불리는 교단들이 하고 있는 정말 어리석은 짓들을 우리는 지금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무너져가고 있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런 글을 써봅니다. 종교다원주의/신복음주의 그것들이 전도프로그램이라는 양의 탈을 쓰고 우리의 삶을 노략질하고 있으니 참된 성령충만한 삶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바르게 깨달아야 할것입니다.
전도의 열매는 성령의 열매가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에는 전도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바르게 맺어야 전도가 이루어지는것입니다. 전도의 열매를 맺기위해 성령님의 역사를 구해서는 안되고 성령의 열매를 맺기위해 우리가 최선을 다해 우리의 삶을 살아갈 때 전도는 저절로 이루어지고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라지고 오직 노략질하는 거짓선지자들의 그 탐욕을 채우기위한 전도만 존재할 뿐입니다. 한알의 밀알이 썩어져 죽어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역사는 사라지고 귀신을 쫓아내고 방언을 하고 거짓 기적의 역사를 통해서 사람들을 현혹하려는 자들만 난무할 뿐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들을 쫓아가서는 절대로 안될것입니다. 그들을 쫓아가면 우리는 결국 심판으로 가게될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알고 바르게 분별하고 바른길을 가기위해서 참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것을 배워가고 알아가며 그 어려운 길을 가기위해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고 참고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져갈것입니다.
그 길은 어렵고 힘든 길입니다. 참고 인내해야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열매입니다. 오래참고 절제하며 온유하고 충성하며 나아갈 때 화평과 사랑의 열매가 우리를 통해서 세상에 나타나게 될것이고 그것은 빛처럼 숨기지 못할것이고 소금처럼 사회가 부패되는것을 막게될것입니다.
우리가 이땅에서 해야할 일이 바로 이런 삶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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