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의해야할 율법주의적 성향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규정하고 있는것들이 율법주의로 흐를수 있다는것을 항상 마음에 염두해 두어야합니다.
신앙인들은 거듭난자들입니다. 곧 분별할수 있으며 구별할수 있는 자들입니다. 신앙인들은 자유자들입니다. 자유자들이라고해서 맘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맘대로 살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우리는 법이라는 규칙을 만들어서 그 규칙안에서 생활하게됩니다. 그 법이 우리에게 어떤 규정이 되거나 규범이 되는것이 좋을때도 있지만 좋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율법주이라는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그것은 율법주의로 인한 정죄일것입니다. 나는 법대로 살고 있고 너는 법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고 규정짓는 태도들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의를 행한다고 할지라도 그 의가 하나님으로부터 규정되는것이 아니라 내가 규정하는것이라면 문제가 있는겁니다.
내가 행하는 의가 결국 남이 행하지 않는것이 됨으로서 남을 법이라는 잣대로 정죄를 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술 먹지 않는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내가 술을 먹지 않는다고 남에게 술을 먹지말라고 강요하거나 술먹는것이 죄라고 하는것은 결국 마귀의 정죄의 늪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내가 거룩하다고 해서 남에게 거룩함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거룩한 모습을 보이고 그 모습을 하나님이 인정하셔서 그 이름이 높아질때 주변의 사람들이 변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것이 하나님의 방법인것입니다. 내가 담배를 피지 않고 술을 먹지 않음으로 실수를 하지 않고 정직하고 바르게 산다면 주변 사람들도 술과 담배를 줄이게 된다는것입니다.
내가 창녀촌에 가지 않고 술을 먹고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내 이웃, 내 친구들이 내 모습을 보고 창녀촌에 가지 않거나 술을 먹고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게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내가 창녀촌에 가면 내 친구도 나를 따라서 창녀촌에 가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것처럼 내가 의를 행하는것으로 인해서 주변을 변화시켜야지 내가 의를 행하는것으로 이웃을 정죄하고 나는 창녀촌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너는 간다. 그러므로 너는 죄인이다. 이렇게 말하는것이 바로 율법주의라는 것입니다.
나는 십일조를 한다. 너는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는 도둑놈이다. 라고 말하는 그런 신앙인들을 많이 만납니다. 내가 십일조 하는것이 자랑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십일조를 함으로서 부자가 되고 더 많은 축복을 얻는다면 주변사람들은 내 삶을 보고 십일조를 하게 될것입니다. 내가 십일조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가난해지고 사업이 쫄닥망한다면? 주변사람들은 십일조하는 나를 욕하게 될것입니다.
십일조를 정직하게 하고 하나님앞에 바르게 행하면서 남을 정죄하는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아 누리게 될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신실히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인다면 더 감동하게 될것입니다.
주일날 무엇을 사먹으면 안된다고 말하는것은 율법주의가 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내 모습을 하나님께 보이는것이 더 중요하지 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사는데? 너는 주일을 아주 지저분하게 사는구나?라고 지적해서는 안되는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성경에서는 전통에 대해서 많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일종의 전통이 있습니다. 부활절 이전 고난주간이라고 해서 그 주간을 거룩하게 보내는 모습들말입니다. 그것이 나쁜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날마다 고난주간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땅에 사는것 자체가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날들은 막살고 고난주간만 거룩하게 살면 다되는것처럼 해서는 안되는것입니다.
문제는 스스로 고난주간을 생각하여 그리스도를 더 많이 생각하고 그날들을 더 거룩하게 사는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에게까지 그 날을 강요하는것은 결코 옳은 행동이 아닌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사냐? 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사는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것은 그 의를 가지고 남을 평가해서는 안되는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의롭게 사는데? 너는 참 더럽게 사는구나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의롭게 삶으로서 내 삶이 풍요로와지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면 주변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의롭게 살려고 애쓸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장 실수하는 부분이 바로 그런 부분인것입니다. 특히 주일날 이런 말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나는 예배시간 항상 10분전에 와서 준비하고 예배하는데? 너는 맨날 지각하냐.....이런말들을 되도록이면 삼가합시다. 우리가 좋은말로 서로 위로하고 도와주며 용납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기독교인들이야말로 정말 온유하고 겸손하고 선을 기뻐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 삶은 내가 실천하는것이 중요하지 남에게 강요하는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의롭다고 해서 남에게 의롭게 살라고 강요해서는 안되는것입니다.
가르치는 자들은 그렇게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만큼 더 행동으로 보여야합니다. 성도님들을 책망하는것은 하나님의 맡겨준 사명으로 그렇게 할수 있지만 그 책망으로 인해서 정죄하는 죄에 빠져서는 안되는것입니다. 이런 구분들이 참 어렵고 힘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고난의 삶입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를 위해서 사는것은 거룩한 삶입니다. 고난주간이라고 해서 아내가 원하는데도 잠자리를 같이 안하는것은 거룩한 행위가 아닙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거룩한 행위인것입니다.
거룩하다는 의미에 대해서 우리는 가끔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를 행하는것에 대해서도 오해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것에 대해서도 우리는 구별하기가 참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주변에 안믿는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서 법없이도 살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을때 바로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것을 증거하게됩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데도 불구하고 법이 우리를 통제하지 못해서 주변사람들이 우리를 향해서 귀신은 뭐하는지 몰라 저런 인간들 안잡아가고...라고 말할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것입니다.
이웃들을 통해서 내 자신을 돌아볼수 있는 책망을 하나님이 허락하십니다. 기독교인들은 남을 정죄하기 이전에 내자신이 정말 법없이 살고 있는 착한 사람인지...이웃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인지....늘 생각하면서 이웃을 향해서 훼방하고 이웃의것을 탐내고 이웃의 행복을 질투하면서 살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해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때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율법주의적 삶이 아는 은혜로 풍성한 삶이 되기를 원하시는것은 바로 이웃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렇게 살기 원하심을 깨닫기 바랍니다. 내가 은혜로 풍성한 삶을 살때 이웃들이 나를 향해서 기쁨으로 대하고 감사함으로 대할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한 부분임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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