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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은혜 로운 말씀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건 자유의지로 하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이고 은혜인것이다. 

마태복음 16장 16~17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의 유명한 고백을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했는가?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만 기억할뿐 그것을 알게한 이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는 사실을 잊고 살고 있다. 

우리가 선하게 하는것이  내가 선해서 선하게 사는것이 아니라  내안에 계신 성령님이 나를 선하게 인도하기 때문에 선하게 살수 있게된것이다.   

내 의지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수 있는것은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것이지만  그 생명을 주신분이 하나님이시다.  곧 하나님의 섭리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신앙고백도 할수 없는것이다. 

왜 성경에  믿으라는 말씀이 많이 나와있을까?  왜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시고  왜 우리에게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계시며  인내하라고 말씀하고 계실까?   우리는 그렇게 할수 없을지라도 성령하나님께서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늘 간구하시니  우리안의 성령님이 나를 인도하여 끝까지 이끄신다.  

우리가 잘못할때는 책망으로  우리가 잘할때는 겸손함으로 이끄시는 분이 성령하나님이시다.  그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수 있는것이다.  우리의 의지에 성령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는것이다. 

구원은 내가 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것이다.  그것을  어릴적에는 몰랐지만  장성한 자가 되어서 깨닫게 되는것이다.  성경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것은  젖먹이에게  아버지가 이런 분이시라고 가르치는것과  같다.  

젖먹이는 생명을 가졌지만 아버지를 이해할만큼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 성장한 후에는 말하지 않아도  아버지가 나를 낳았다는것을 깨닫는것이다.   아버지 없이는 내가 이 땅에 태어날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것이다.  

성경은 수없이 많은 어린 성도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는것이다. 너희가 사는것이 고난이다.  생명을 얻었으니 고난을 당하는것이 당연한것아닌가?  그 고난을 이겨내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가라고 격려하는것은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너희가 이렇게 살면 행복해질것이라고 끊임없이 가르치고 책망하는것과 동일한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녀를 낳아놓고  너희 맘대로 살아라 하는 부모는 이땅에 단 한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자녀가  행복하길 바라고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라는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다른가?   우리가  행복하고  이 어려운 삶을 잘 살아가기 바라는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육적인 부모는 우리를 끝까지 보살피지 못하지만  그래도 눈감을때까지 자녀걱정을 하다가 눈을 감게 되지만 하나님은 창조주이심으로  우리를 끝까지 돌보시는것이다.  성령하나님으로 우리를 위해 날마다 함께 하시고 우리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잘 순종하고 행할수 있도록 늘 도우시는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우리 자녀가 내 말대로 행하지 않았다고 칼들고  죽이지는 않는것이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할수 있는가?  

우리가 스스로 난것도 아니고  우리의 부모의 뱃속에서 생명을 얻었듯이  하나님께로서 난것도 우리 스스로 날수 없고 오직 성령하나님의 거듭나시게 하시는 역사로  그 은혜의 섭리로 우리가 새롭게 태어났는데  언제까지  내가 하나님을 선택했다고 자랑하겠는가?  그건 어릴때에나 하는 행동일 뿐이다. 

다 큰 성인은  겸손하여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그 자녀들에게 베풀게 되는것이다. 신앙적으로도  다 큰 성인들은 어린 신앙인들을 잘 돌보고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잘 깨닫게 하는것이  성숙한 신앙인이다.  

어린아이들이 성인을 가르치는것은  정직함과 솔직함으로 그쳐야 한다.  인생의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신학적 지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신학자들과 목사들을 가르치려고 드는것은  철없는 어린아이  짓에 불과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