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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나의 신앙 간증

제 삶은 하나님의 은혜없이 살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제 삶은 하나님의 은혜없이 살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태어나서 아버지는 월남에 가셨습니다.  저는 2살때  어머니와 아버지와 헤어져서  할머니 아래서 자랐습니다.  강원도 탄광촌에서 살면서 그래도 가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탄광촌이 돈이 제일 많았습니다. 

 

연탄을 깔고앉아 엉덩이는 지금 어른이 된 제 손바닥만한 화상흉터가 있습니다.  어릴적부터 할머니는 밥을 너무 많이 먹여서  임신 40주된 아주머니같은 배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제 어릴적 사진은 아프리카 난민이었습니다.  몸은 마르고 배는 튀어나오고....

 

월남갔다 돌아온 아버지를 일년동안이나 못봤는데  아버지를 못알아본다고  마당으로 던져졌다고 합니다.  그것도 세살도 되지 않은 아이를  어머니는  할머니가 아들을 망쳐놨다고 할머니랑 10여년을 얼굴도 안보고 살았습니다.

 

어릴적부터  모진매를 맞고 자랐습니다.  가출을 세번을 했고  어릴적에는 성적표를 받으면 강물에 던져버렸습니다.  생년월일이 잘못되어서 학교를 만 5살에 들어갔습니다.  남들은 6~7살에 들어가는 국민학교를 저는 유치원 갈나이에 들어갔습니다. 

 

학교 적응이 안되서  맨날 나머지 공부했습니다.  받아쓰기 못해서 맨날 어린나이에 늦게 집에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고 맞았습니다.  부지깽이로 맞고  빗자루로 맞고  빚자루 뿌러지면 마대자루로 맞고.....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맞았습니다.

 

어릴적 별명이 꺼벙이고  조금 커서는 괴물입니다.  그리고 유년부 교사때는 악어입니다.  입크고 못생기고 여드름많고 머리는 별루 안좋고........그렇게 자랐습니다.  교회의 형들은  제가 군대가면 왕 고문관이 될거라고 놀렸습니다. 

 

대학교는 몇번이나 떨어졌고  집안은 폭삭망해서 알거지가 됬습니다.  대학 들어갈 처지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신학대학 다녔습니다.  생활이 어려워서  두번이나 휴학했지만  점심거르기 일수였고  점심은 거의 먹지 않고 다녔습니다.

 

일학년때는  밤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낮에 학교다니고  그렇게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하고 군대 갔다올수 밖에 없었고  군대 갔다와서 노가다 뛰어서 등록금 만들어서 3학년 겨우 등록하고 3학년때는 쉬는날  노가다 해서  일주일에 십만원 만들어서 책사읽으면서 다녔고 4학년때는 휴학하고 야간으로 옮겨서  낮에는 오토바이 택배로 돈벌면서 야간으로 겨우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어릴적부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속에서 아무런 탈없이 잘 자랐습니다.  부모님의 그런 폭력속에서도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살았고  어려움속에서도  그 어려움을 잘 견디고 살았습니다. 

 

모든걸 하나님이 나를 만들어가신다고 생각하면서  때로는 시를 쓰면서  때로는 수필을 쓰면서 때로는  소설을 쓰면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들을 내 언어로 글을 쓰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사람은  환경이 만드는것이 아닙니다.   내적치유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가 있다고 합니다.   진정한 내적치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아는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아는것을 말하니  지식적으로 자랑한다고 떠듭니다. 

 

저는 지식으로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제 삶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아마 저를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모든 논문을 다시 써야 할것입니다.  영적으로 생명을 갖지 못한 죽은 자들은  어떤 치유책도 소용이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만이  진정한 치유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는 분!!  참된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길이고 빛이고 생명입니다.   저는 제 삶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제 삶을 지켜왔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사는것은 아닙니다.  늘 바쁘고 어렵습니다.  사업을 하고 있는데  사업이  잘되는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하고 싶어도 안될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보면  그 모든것이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습니다.

 

그때 정말 살기 싫었는데  그때 정말 견디기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려운 시절을 보냈는데  그런데 지금 보니  다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살수 없는 세월이구나 하는 생각들을 갖게됩니다.

 

어려운 시절을 보냈기에  그리고 누구보다 외로운 삶을 살았기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나를 보는것처럼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드는것은 인지상정일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잘나고 멋진 사람들보다  못나고 어려운 사람들을 더 사랑했는지 저는 깨닫습니다. 세리가 세리의 마음을 알고  창녀가 창녀의 마음을 알고  문둥병자가 문둥병자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깨달았기에  다른 사마리아의 여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고  나의 삶의  인도자이시며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고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시고  내 삶의 모든 것이 되신다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깊이 깨닫고 알게 되는것들.....

 

그것은 말로 표현할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토바이 택배일은  서울 지리를 잘 알게해서 지금 제가 일하는것에 아주 큰 도움을 주고 있고  군대에서 의무병으로 복무하게 하신것 그리고  군대에서 어릴적부터 앓아온 축농증을 고쳐가지고 제대하게 하신것...군대에서 간호사가 되어서 전역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것을 배웠는지 저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후임들에게 헹가레를 받으면서 행복한 군대생활을 했습니다.  

군대에서 컴퓨터를 처음 접하고  타자치는 일을 함으로서  전역후에도 컴퓨터일과 디자인일을 할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가지고 온것은 정말 하나님의 예비하심입니다.  한글 1.0부터 배우게 하셔서 한글97박사가 되어서  어릴적의 그 못난 사람이 멋진사람으로 칭찬까지 받게 되었으니....

그리고 알파코스를 접하고  세상이  흉악 무도한 자들로 인해서  기독교가 변질되어 가는것을 눈으로 보게 하여 주시고  바른 신앙을 갖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시고  그동안 신학을 공부해놓고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아이들만 가르치고 살았는데......

이렇게 깨우셔서  바른길에 서도록 인도하여주신 하나님께  저는 정말 말로 다할수 없는 그 사랑과 인도하심을 깨닫습니다. 

쫄닥 망한 내 집안이  열심히 일함으로서  지금은  반듯한 빌라를 제 집으로 가지고  사랑하는 아내와  그리고  내 아이까지 갖게된 아버지가 되었으니  저는 너무나 행복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