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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나의 신앙 간증

성경에서 왜 율법을 지키라고 했는지에 대한 나의 견해....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장 12절)

 

 

저는 되도록이면 신학적인 글은 자제하려고 합니다.  제가 신학자도 아니고  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도 아닙니다.  모태신앙에서부터 지금까지  쭉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이땅에 살아오면서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으면서 깨닫고  그리고 느끼고  그것을 성경적으로 적용하면서  삶의 개념을 확립시켜온 나의 삶을  글로서 표현할 뿐입니다. 

 

제 글을 읽으면서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체로  율법주의적 관점이 아닌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관점으로 성경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점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이 시킨것을 하지 않음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멸망을 받는 모습들 말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각각 달란트를 받았는데  마지막 달란트를 받은 종은 게으름으로 인해서  책망을 받고 멸망을 받는 모습이라든지 아니면 왕이 잔치를 벌렸는데  그 잔치에 참여한 자가  옷을 입지않음으로 인해서  내쫓기는 것이라든지  아니면  열처녀의 비유에서 다섯처녀의 준비 부족에 대한 것이라든지   농부가  왕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왕자를 죽이는 비유라든지.....많은 비유들과 구약에서 행함을 말함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멸망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라든지...이런것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멸망을 받는듯한 모습들이 바로 우리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모습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서 멸망을 당하는것이 우리의 인생들이라면  구약에서  모세도 다윗도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어쩌면  모두 다 멸망을 당해야 마땅한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하고  우리가 그 구약의 위대한 인물들보다 더 위대한 율법주의자들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할때  어느 관점에서  성경을 바라보느냐의 차이에서 우리의 삶이  나뉜다는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뉘는 삶이 틀린것은 아닙니다.  저는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 않고  다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양쪽에서 성경을 바라보면서  한쪽으로 향해가는  일종의 나그네들입니다. 

 

그것을  딱부러지게 표현할수 없지만  그냥 나눠본다면 한쪽은  하나님의 종의 모습으로서  한쪽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으로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종으로서 하나님으로 나가는 사람들이나  자녀로서 하나님으로 나가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동일합니다.  

 

저도  한때는 종으로서의 삶을 살은적이 있었고  꼭 그래야만 정말 신앙인이라고 생각한적이 있었다는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찬양할때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예수 우리 왕이여"라고 말하거나 찬양하는 사람들  우리는 왕의 신하로서  왕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라는 신앙고백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이자 형제로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고 우리는 양자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삼위일체의 하나님 성자하나님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순종하는 모습으로 사는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고 친아들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종으로서의 삶과  자녀로서의 삶을 한번 비교해 보아야합니다.  종은 시키는것을 해야합니다.  시키는것을 하지 않으면?  쫓겨나는 신세인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거 하라고 했으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것이 바로 종으로서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능동적이지 않고 수동적인 삶입니다.  인간들은  매우 수동적인 삶을 좋아합니다.  그 한예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왕을 세워달라고 이방인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하나님께 조를때의 모습입니다. 

 

나를 통치해달라고.....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세우고  우리는 그의 통제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유를 주었습니다.  자유를 주었더니  사람들이 힘들다고  죽겠다고  말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들은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너무 잘압니다.  스스로의 책임을 가지고 살아가는것만큼 부담스러운 삶은 없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통제해주고 이길로 가라하고 할때 그 길을 가는것이 너무나 쉽고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삶이 그렇습니다.  좁은길로 가라...그 명령에 순종하여 그 길을 갑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순종하여 나아가갑니다. 그런데  여기의 문제점은 바로 자발적이지 않다는것입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것입니다.  시키는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으로서의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자녀의 신분과 종의 신분이 충돌해서 문제점을 야기시키는것입니다. 

 

시키는데로 하는 삶을 살면 쉬울것같은데?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종의로서의 삶은 어렵고 고통스럽습니다.  이명박의 독재로서부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팍팍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고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합니다. 검찰과 경찰이 나를 감시하는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때는  맘껏욕하고  노시개니  놈현이라느니 하면서  아무리 욕을 해도  누구하나 겁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었다는것은  바로  종의 신분이 아닌 자유자의 신분으로서 살아갈수 있었기 때문인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그렇습니다.  이명박은 장로입니다.  그가 교회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저는 금방알수 있습니다.  그는 종의로서의 삶을 배웠기 때문에 그의 생각이 자유롭지 못하고 통제되어 있으며  독재적인 발상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이것이 현제 교회내의 가장 큰 문제점들입니다.   자유자의 자녀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의 종으로서  통제되려고하는 그런 습성들이 자연적으로 쌓여서 생긴 불합리한 모습이라는것입니다.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이가 바로 그런자였던것입니다.  이름이 김성주 교회의 기둥이 되어라고 이름을 지어준 부모님의 그 신앙을 본받아서  살아온 그가 왜 독재자가 될수 밖에없었을까요?  그에게 자유자의 모습을 찾아볼수 없었던것은 바로  종으로서의 신분을 살아왔기 때문인것입니다.  그런 삶을 배웠기 때문인것이지요..

 

율법주의가 다른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알게모르게 전통에 물들어 있고  우리의 삶에 규범에 물들어 있습니다.  특히 신앙인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유롭고 자발적이지 않고  누군가로부터의 통제와  억압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제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한번 고민해보신적들이 있습니까? 

 

기도, 말씀읽는것, 착한 행실을 하는것들,  특히 우리는 식사기도나  잠자고 일어날때 기도하는것들  새벽기도나  특별 새벽기도  아니면 철야기도,  주일날 예배드리는것들  주일날 경건하게 사는 모습이라고 하면서  돈을 쓰지 않는다거나  좋은데 놀러가지 않는다거나 자기를 통제하며 살아가는 모습들......

 

제가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것이  주일날 뭐 하지 말라는 것들입니다.  즐기지말라?  저는 그런 전통들을  교회안에서 없애버렸습니다.제가 주일학교 20년동안  가장 없애려고 했던것이 바로  주일날 돈쓰지말라는 말들과  주일날 즐기지 말라는 모습들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전통이 되고  율법이 되고 신앙이 되어버렸습니다. 

 

요즘 서점에가면  십일조에 관련된 것들과  예배시간 지각하는 문제에 대해서  많이 논하는 책들이 있습니다.  순종에 관련된 책들도 많이 있고  성공에 대한 책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화해와 용서에 대한 책들은 너무나 찾아보기 힘든것이 현실입니다.   방언에 대해서 은사에 대해서 많은 책들이 나오고  선하게 사는것을 강조하는 책들은 있지만  우리의 참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신앙안에서 자유롭게 사는것에 대한  의견들을  피력하는 책들은 구하기 쉽지 않고 그런 책들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새벽기도나 특새의 축복은 말하지만  용서의 기쁨에 대해서는  별루 논하지 않는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새벽기도회나 특별새벽기도회 가서  기도하는 것들을 보면  성공에 관련된것들이나  미래의 자기의 모습들  하나님앞에 충성하는 모습들에 대해서 많이 기도하고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는  거의 기도하지 않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종으로서의 책임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때문에  주인에게 많은것을 요구하고 있는것입니다.  아침에 불러서 일시킨 종이나 퇴근시간 다되어서 불러서  일시킨 종이나  똑같은  일당을 주었는데  아침에 부른 사람들은  자기들은 더줄거라고  기대하고 있다가 주인이  똑같이 일당을 주니  화가나서  주인에게 항의하는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자인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 아니라  종으로서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율법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는지?  아니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것인지?  우리는 이런것을 질문하기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통제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하면  천국간다"라고 말할때  우리는 그것을 지키는것을  너무나 쉽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죄악된 습성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자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 이길로 해서 똑바로 저기까지 가면  내가 상을 줄께....하니  사람들은 다 그길을 가게됩니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죽는것처럼 착각해서  정말 한치도 어긋남없이 살아갈려고 애쓰는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명박의 독재정치는 결국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통제함으로서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살지 못하고  결국 검찰도 경찰도 권력에 기댄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것인지만 바라보고 사는것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렇게되니  자유로운 나라가 결국 통제되어 지는 나라가 되니 경제가 무너지고  사회의 시스템이 무너지게 된것입니다.

 

노무현의  자율적  자유를 강조하면서 책임을 강조하는 정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책임으로  일을 감당해야하기 때문에  스스로 살길을 찾았고 열심으로 자기일을 해나감으로서 경제가 활력을 얻고  사람들이 스스로 살아갈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삶을 위해서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모습들을 볼수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율적 삶은  낙오한 자들에게 복지정책을 통해서  스스로 살기 힘들면  국가가 도움을 주어서 살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니  낙오한다고 해도  살아갈수 있다는 안정감에서  더욱더  열심으로 스스로 자기 길을 개척할수 있었고 그것이  이 사회의 경제의 활력이 되었고 밝은 나라가 될수 있었고  문화,경제,사회,정치,교육 전반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룩할수 있었지만...

 

결국 이명박의 독재정치는  스스로 낙오할 수 밖에 없는 자들은 더이상 기대할 곳이 없음으로  죽음을 택하거나  성공한자들에게 빌붙어서 살수 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하게 될것이고  또 가진자들이나  위에 있는 자들은  시키는데로 하고  자율적이고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서  온갖 부정부패와  자기 살길을 위해서  뒷돈을 챙기고  더러운 짓들을 자행하는 모습들이 쉽게 나타나고 있는데....이것이 바로 사회의 어두운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는 길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면  사랑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들  교회의 담임목사가  독재자처럼 군림하고  성도님들에게 시키는데로 하면 천국가고 못하면 지옥간다는식의 설교를 하게되는 일이 벌어지는것이 바로  무엇때문입니까?   자기스스로 책임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려고 하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포기하고  종으로서의 편한 삶을 살고자 하는 무책임한 모습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것입니다.

 

요즘 교회들을 보면  목사가 우상화 되어가는것은  인간의 나약한 품성으로인해 나타난 병폐입니다.   목사의 우상화는  목사를 통해서 자기의 삶을 편하게 살아보겠다는  무책임한 성도님들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심리학을 배운것도 아니고  철학을 배운것도 아니고  제 삶에서  느끼는것을 이렇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글이 좀 길더라도 이해해 주십시요.....

 

자유자의 모습은  자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를때  자녀로서 불렀습니다.   자녀의 신분은 어떻습니까?  통제되는 신분이 아닙니다.  자녀는  법으로 통제되거나  시키는대로 하는 신분이 아닌것입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하는것이 바로  자녀의 신분인것입니다.  

 

종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성도님들이  자녀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하기 싫다고 안하는 부분을 가지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으니 심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종이라면 심판을 받는것이 당연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절대로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의 신분인것입니다.

 

자녀는 심판을 받지 않지만  책망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에게 회초리를 들어서 아프게 때립니다.  가끔씩 목사님들이 이런 설교할때가 있습니다.  간증집회때도 많이 나옵니다.  내가 원래 목사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병을 주셔서  내가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나의 병을 고쳐주셔서 내가 이렇게 목사가 될수 있었다.  이런 설교들이나 간증들 말입니다. 

 

가끔씩 내 부모가 죽기도 하고  내 자녀가 죽기도 합니다.   다윗은  그 아내 밧세바로부터 얻은 첫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되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 자녀를 죽임으로서  다윗을 책망하는 모습인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많은 인물들이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바른 길로 돌아오는 모습들을 쉽게 찾을수 있습니다.  

 

모세가  살인을 저질렀을때  하나님은 모세를 죽이지 않고  광야로 불러내어서  모세를 훈련시키십니다.  인간적으로 볼때  모세는 살인죄를 저질렀으니 죽어 마땅했지만 말입니다.  

 

욥이  사단의 시험을 받을때  많은것을 다 잃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욥의 목숨만큼은 건들수 없었습니다.  욥은 생일도 저주하며  죽고자 했지만 그럴수 없었습니다.  결국  욥이 깨달은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종으로서의 신분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자유자들인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물한그릇을  목마른자들에게 주는것도  손님을 대접하는것도  왼뺨을 대는것도 속옷까지 벗어주는것도  용서하는것도  우리가 스스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진정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기독교인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다고 합니다.  물론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고 지키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인도하고 지킨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 맘대로 살지 못하고  성령님이 시키는대로만 사는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님께  자기를 맡기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성령님께 자기를 맡겨서  나는 죄를짓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신앙은 좀 이상한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거듭나서  우리가 생명을 얻었을때  이미 우리안에  성령님이 우리의 생명이 되어 주신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고 있는것이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함께 하고 있는것입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맡긴다?는것은 결국 종으로서 살고자하는 악한 본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화라는것이 있습니다.  성화되어가는 것은  우리가  과거의 습관들 죄의 습관들을 버리고  온전해지는 것을 뜻합니다.   온전해진다는것은 자란다는것입니다.  자라는것은  우리의 자녀가  부모의 통제로 부터 벗어나는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부모들로 인해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성령하나님으로 부터  중생,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을 통제하지 못하지만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회손되지 않고  그 관계가 영원한것처럼  성령님을 통해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신분이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고 인침을 받은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자가 된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제를 받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는 자녀의 신분은 버릴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교육하여  이렇게 살라고 했을때  우리 자녀가  내 뜻대로 살아가는것을 원하는것은 그것이 행복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행복한 삶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선택은?  자녀에게 달려있는것이지요.  

 

만약 우리의 자녀가 잘못할때 우리는 회초리를 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하나님도 우리가 잘못할때 회초리를 드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회초리를 들지 않고 우리를 내쫓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신분이 자녀가 아니라  종이기 때문에 내쫓길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는것은  종으로서의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누가 잘 압니까?  종은 시키는대로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필요가 없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뜻을 헤아려 살핍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할때  부모님은 시키는데로 하는 자녀보다  시키지 않아도 잘하는 자녀가 더 이쁘고 사랑스럽습니다.

 

공부하라고 할때 하는 자녀보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자녀가  얼마나 이뻐보입니까?   착한일 하라고 할때 하는 자녀보다  시키지도 않아도 착한일을 하는 자녀가  더 이뻐 보이는것입니다.   근데 요즘은  부모님들이 그렇게 가르치지 않죠.  이기적으로 가르치고  자기만 아는 자들로 가르칩니다.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잘 이해하지 못하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 자녀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그래서 성경말씀에서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에게 말씀하시는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는 이기적이고  착하고 순하면  사람들에게 당한다고만 가르침을 받았기에  오히려  때리고  독해져야하고  착한것보다  자기를 지킬줄  아는 자들로 자라야 한다고 배워왔기에  성경말씀이  자녀들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고  올바로 가르쳐 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요즘 젊은 목사들이  성경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의 한 이유도 바로 부모님들의 올바른 가르침이 없는 까닭입니다.  학창시절부터 배워온것이  남을 누르고 이기는것만을 배워왔으니  무엇을 제대로 알겠습니까? 

 

성경말씀에서  왜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불렀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종처럼 살아야 합니다.  시키는데로 하는 삶이 되어버릴것입니다.  자유롭지 못하고 자발적이지 못한 삶을 살게될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바로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는 성공해야 하고  성공하려면 남을 눌러야하고  이기적이어야 하고 자기를 위해서 남을  이겨야 하는 그런 삶을 살수 밖에 없는데  성경은 남을 위해서 자기를 죽여야 하니 이것이 우리의 삶에 적용이 되지 않고 매치가 되지 않고  결국  대립각에 서있으니  교회에 다니는 성도님들이  성경말씀보다 목사님을 우상화 시켜서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지지 않고 목사에게 전가하려는 모습들이 나타나게 되는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을 우리는 묵상하기 이전에  과연  마태복음 5장부터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바로 이해할수 있는지? 그것을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적용하고 살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것입니다. 

 

정말 가난하고 온유하며 겸손하고 의를 위해 핍박을 받고  긍휼하며 살고 있는지를 늘 점검해야 합니다.  목마른자에게 물을 주고 있는지? 배고픈자를  배부르게 하고 있는지?  손님을 잘 대접하고 있는지?   배고픈자의 가진것마져 빼앗아서  부자가 되려고 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우리는 늘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종으로서의 삶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자의 삶인지?  한번 점검해보셔야 합니다.  종으로 살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서 생각하고 계십니다.  제가 처음에 말한  우리의 삶이 두가지로 나타나지만 결국 이것은 틀린것이 아니라  달리 생각하는 까닭이라고 말한것은  우리가 이땅에서 완벽하지 않고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의 본질상 나타나는 모습 현상들은 어쩔수없기에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처럼 살아가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서 선택했고  자녀로 대우하고 있으며 자녀로서 살아가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셔야합니다.  많은 선지자들과  구약의 인물들은  하나님앞에서  종으로서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서 생각하고 있다는것은  이미 성경곳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자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어야 합니다.  삶의 책임을 내가 지고 내가 스스로 살아가도록 해야 하는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자기가 지고 가야 한다는 말씀이 무엇인지? 좀 이해가 가실수 있을겁니다.   내 삶을 내가 책임지기 싫어서  내가 지고가야할 십자가를 지고 가기 싫어서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다 해주실것이라고 말하는것은  게으른 한달란트 받은 자의 변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율법?  우리에게 그것을 지키라고 준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렇게 살면 행복한 삶을 살수 있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배푼것입니다. 

 

대접받고 싶으면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의 핵심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때  어떻게 살아야  정말 행복한 삶인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죄를 짓고 사는 삶과  의를 행하며 착하게 사는 삶  이 두가지의 삶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의를 행하며 착하게 살아갈것입니다. 

 

맞은자는 두다리 뻗고 자고 때린자는 웅크려 잔다는것  벼락칠때  죄지은자는 무서워 떨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람들은 어떤 벼락소리도  찬양소리로 들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는지?  종으로 불렀는지?  생각해보십시요.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자녀로서의 삶이 어떤 삶인지  많은 묵상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