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혜로운말씀/나의 신앙 간증

나의 인생에 가장 축복된것....

그것은 왕따였습니다.  남들은 왕따를 고통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남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것 그것은 정말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견디기 힘들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길수 있는 문제입니다.  

저는 바로 이 왕따의 전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못생기고 참견하기 좋아하고  약간 제멋대로였고  잘난척을 했고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공부를 못했고  여드름은 분화구를 달고 살았으니까요^^  어릴적에도  혼자였고  지금도 혼자입니다.  혼자이기를 기뻐하고 혼자이기를 즐깁니다. 

 

제가 못생겼다고  제가 좀 바보스럽다고  꺼벙이라고 불릴때 혹은 귀신이라고 놀림을 당할때 혹은 입이 커서  악어라고 불릴때 조차도  저는  웃음으로 그 별명들에 대답해야 했었습니다.  

이세상에 살면서 왕따가 되는것은 죽기보다 힘든 일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혼자이지만  혼자이기를  싫어해서 친구들을 많이 만들고 교제를하고  만나고  수다를 떨고 합니다.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고  친구들의 거짓에  동참해야 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상하게도 거짓은 싫었습니다.  가식도 싫었습니다. 솔직하기를 좋아했고 또 친구를 가리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친구가 없었을 뿐입니다.


원하지 않는 왕따는 정말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왕따가 저에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왜일까요?  왕따는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친구되시는것이 무엇인지를 알게되었습니다. 왕따였지만  예수님 말씀대로 착하게 살려고하니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늘 성경말씀은 나에게 길이고 빛이었습니다.

 

조금은 고지식하고  조금은 미련한것같기도 한 삶이었습니다.  왕따는  오히려  축복이었습니다.  혼자 기도할 시간이 많았습니다.  혼자 사색할 시간이 너무나 넉넉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배우지 않았고 담배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호기심에 창녀촌을 갈때 나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형은 나에게 군대서 고문관이 될거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했습니다.  비록 멋진 군생활은 아니었지만 후임들을 보살피고 챙겨주고 그들의 어려움과 함께 해줌으로서  고참으로서  또 하나님을 믿는 자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주려고 애썼습니다.  군대를 전역할때 저는 후임들로부터 헹가레를 받았습니다. 

추운겨울  보초설때 잠들지 않으려고  후임을 재워놓고  혼자 기도하던 그 시간이 저에게는 정말 감사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군대 입대하기전  기쁨으로 불러왔던 찬양들을  머리속으로 기억하며 보초서는 시간을 찬양하면서 지낼때는 그 시간은 꿀보다 단 시간들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있을 시간에 나는 아이들과 있었습니다.  주일학교를  오랜시간  봉사하면서  아이들을 사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왕따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것을 금방 느끼고 압니다. 아이들은 내 사랑을 알고 나를 사랑했습니다. 

1년동안을 그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알파코스로 목사와 분쟁을 할때 저는 여전히 혼자서 싸워야 했습니다.  교회 장로들과 담임목사와 말입니다.   내가 사랑했던  아이들은 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제 그 아이들을 잠깐 만났습니다.  1년만에 만난 아이들이 제 품에 안겼습니다. 그들은 그저 사랑함 뿐입니다.  조건없이 나를 그저 좋아하는것 그것뿐.... 예수님이 이 소자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은 바로 이런것에서 나온것같습니다. 

아이들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못생겼다고 말은 할지언정  그들은 사랑을 느끼고 깨닫고 그 사랑을  받을줄 알고 보답할줄 아는것이 그 아이들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계산하고 따지고  이것을 주면 저것을 받아야 하는것이 어른들의 모습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뭔가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것이 어른들의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거저 주었는데  감사히 받지 못하고  뭐 이런걸 다~하면서  겸양아닌 겸양을 떨면서 그럼 나는 뭐 해야 하나요? 하고 묻습니다.   어떤이는  하나님이 가라고하면 다 갈께요 라고 말하지만 결국은 가라고 해도 안갑니다.  하지도 못할것을 맹세하는것이 어른들의 가식들입니다. 

아이들은 안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널 사랑한다고 하면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는 구나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받들고 믿습니다.  그리고 감사할줄 압니다.  드릴수 있는것이 없어서 그럴까요?  오히려 드릴수 없는것이 축복일수 있습니다.  

나는 회개조차 할수 없는  그런 어리석은 자입니다.  나는 중생의 의미도 모르고  칭의가 뭔지도 모릅니다.  그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것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예수님을 나에게 주셨다는 그 사실 그거 하나가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나님앞에 무릎꿇을때 나는 가슴이 터질듯합니다.  날마다 울어도 그것을 갚을수 없기에  그 은혜가 너무나 커서  나는 그것을 받기위한 조건을 가질수 없기에  감사함으로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보이는건 오직 죄 뿐이기에 말입니다.  

죄가 나를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게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나에겐 분노가 있습니다.  사랑도 있지만 분노도 가득합니다.  제 분노는 20년이 넘는 왕따의 삶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12년을 가족을 위해서 봉사했는데  죽을때까지 봉사하기를 요구한 부모님의 그 강요에 나는 슬픔으로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혼식도 못올리고  내 아내는  시어머니,시아버지로 부터 사랑도 받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손자가 태어났습니다.  시아버지는 병원에 일주일 입원해 있는데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첫아이라서  24시간 진통하고 또 1시간을 수술대 위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걸 생각할때 나는 가슴이 북바쳐 올라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피곤해서 잠깐 눈붙이고 있을때 아내의 고통스런 목소리는 정말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부모님은 150만원이 나온 병원비에 10원도 보태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가 났는데  옷 한벌 사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말로만 다 해주었습니다.  미역국 한번 끓여준것이 다입니다.  반찬 몇가지 해준것이 그래도 우리에게 해준거라고 자랑합니다.  

제 욕심이 과한걸까요?  저는 아버지 생일이라고  빚내서  한우갈비 사드리느라고 40만원을 썼는데.....자기 손자 병원비 10원도....아니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 부모님을 보면서 정말 나는 아내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하는데....그동안 말로만 사랑했나 봅니다.  

저는 그렇게  부모님에게서도 왕따입니다.  12년동안  아버지 밑에서 일하면서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다 당하고도  참으면서 일했는데  결혼하는것조차 39년이 된 아들이 결혼하면  더이상 자기 밑에서 일하지 않을걸 알고  죽을때까지 부려먹고 싶은 그 부모님의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

해서 저는 결혼도 못할뻔했습니다.  

 

전 친구들로부터  부모로부터  왕따같이 살았습니다.  필요할때는  써먹고 필요없으면 내팽개치는 그런 존재로서.....다들 그런 존재들일까요?  필요할때는 부르고 필요없을때는 처다보지 않는 존재들이 우리들일까요?  우리의 인생이 그렇다면 정말 삭막할것이고 살아가기 힘들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삶이 다들 필요에 의한 만남과 조건을 가진 사랑뿐입니다.  그런것이 슬프지 않으면 사랑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그 노예의 삶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제 아내가  저의 그런 모습을 안타까워하고 그곳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저도 이제는 왕따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생겼습니다.  제 한몸되는 아내와  저의 몸에서 아들이 났습니다. 

저에게 하나님이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저를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나와 영원히 친구가 될 아들이 생겼습니다.  제 아이가 너무나 이쁩니다.  사랑스럽습니다.   뱃속에 있을때부터 찬송가 불러주고  하나님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아이가 찬송가 불러주면 너무나 좋아합니다.  

우리아이 너무나 얌전해서 지금 잘 자고 있습니다.  혹시 깨어나면  우유 먹이려고 지금 저는 잠들지 않고 이렇게 글 쓰고 있습니다.  

 

나에게 가장 큰 축복은 왕따입니다.  왕따로 인해서 저는 사랑을 알게 됬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됬습니다.  계산적 삶을 저는 경멸합니다.  진실한 만남을 저는 원하고 살아갑니다.  돈이 아닌 진실한 사랑안에서 아내를 만났고 사랑으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삶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업을 하고 있는데  돈벌이가 시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봉사하는 사람이거든요.  딱 밥먹을 만큼만 벌어갑니다.  그래도 저는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아내의 불평을 듣지만  8,9,10,11월 조금 벌어다준걸 열심히 모아서 병원비를 마련했습니다.  많이도 못벌어다주고 고작 4백만원 벌어다 주었는데 말입니다. 

정말 사랑스러운 아내를 하나님이 허락했습니다.  저는 이 축복이 너무나 감사해서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몰라서  그저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아내의 불평을 듣지만 사랑으로 그 불평을 감사줍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저는 사랑의 의미를 진정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것이 어떤것인지를  내 품안에 있는 내 아들을 내가 사랑하듯이 말입니다. 정말 내 아들이 나와 친구가 되길 원합니다.  내 말을 듣고  나와 함께 하고  언제나 나와 늘 함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 아들에게 바라는것은 딱 하나입니다.  착하게 자라주는것입니다.  저처럼 왕따 당할때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잘 이겨주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이 친구되심을  깨닫는 축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어릴적의 삶은 왕따였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나를 주안에서 인도하시고  바르게 자라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말씀이 나에게 삶의 길을 보여주었고  내안의 분노를 잠재울수 있는 참을성을 허락하셨습니다. 

가끔씩 터져나오는 분노는  주체할수 없을 만큼  쓰나미처럼 몰려오지만  그것이 사라질때는  그 빈자리를 예수님의 사랑으로 채울수 있음에  또한 감사하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그 사랑은  말로 표현할수 없는 사랑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 사랑이  저를 이만큼 성장시킨것은  어떤 박사들도 논리적으로 해석할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놀라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썩을 놈의 논리로  해석하려는 미련하는 짓은 안하는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논리적으로 해석되어져야 하는 분이 아닙니다.  물론 신학적으로는 알아야 하겠지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다면 이 신학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귀한 시간을 가질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의 존재는  우리의 존재 이전에 존재하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종하는것이 마땅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강제가 아닌 사랑의 복종이며 사랑의 순종이기에 이는 해석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 삶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고  저는 그것을  제 인생을 통해서 느끼고 깨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말하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사랑함이 미워함으로 바뀐다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자를 보면 과연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내 아들이 그냥 이쁘고 사랑스러운것은  내 안에서 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난 우리들은  우리들 자체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인것이지  조건을 붙이지 않는데  자꾸 조건을 붙이는 자들로 인해서 답답해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구원했습니다.  목숨을 바쳐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버린다니요?  내몸에서 난 내 아들을 어찌 버리고 어찌 벌한단 말입니까!!!

자기 머리가 좀 컸다고  부모님 위에 올라 앉으려는 교만한 자식들은 있을지 몰라도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의 속은 타들어 가도 사랑은 변하지 않는것은 부모이기 때문이고  그 관계는 영원히 끊을수 없습니다.  나중에는 깨닫겠지요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인간은 비록 계산적이겠지만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  오히려 목숨을 던저 구원하신 그 사랑을 깨달을때는 어찌 그것을 표현하고 어찌 그것을 갚을것을 생각하겠습니까?  할수 없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으로 받은 은혜와 축복 그것을 싸구려 조건으로  하나님께 하는 맹세로 바꾸지 맙시다.  하나님은 그런거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들로서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위치에 있을때 아버지는 그걸로 기뻐하고 좋아하는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얻은 것이기에  자기 아들의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셨기에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사랑했기에  아버지의 사랑은 말로 표현할수 없는 것입니다.  

자녀에게 조건을 거는 부모님들...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깨달으십시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녀들을 기르십시요.  자녀들은  절대로 다른길로 가지 않을겁니다.  아버지 당신이 바라는 그 길로 가게될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순종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듯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