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론을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는 율법주의적인 신앙을 버리고 바른 신앙으로 돌아올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묻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으로 구원을 얻었습니까? 믿음입니까? 아니면 행위입니까? 그럼 아브라함의 믿음은 아브라함 스스로 가진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것입니까?
아브라함은 본래 하나님을 알지못한 자였고 그 아버지는 우상을 만드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누구의 명령을 받고 가나안으로 가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 아브라함은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고 하나님이 가라는 곳을 향해 갔습니다.
그렇게 도착한곳이 가나안입니다. 이 가나안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인도하여 간 땅입니다. 곧 본향인것입니다. 우리가 본향으로 간다고 말할때 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간 곳 곧 가나안을 의미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가나안까지 갈때 아브라함이 혼자서 가나안을 찾아 간것입니까? 하나님이 인도하여 간것입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살때 우리의 힘으로 가나안 곧 영원한 나라를 향해가는 길을 우리가 간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을 잘 읽어보세요! 우리의 힘으로 가는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위라는것을 할때 그 행위는 구원과 상관없는 것입니다. 행위는 구원과 상관이 없이 오직 믿음만이 구원과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서를 끄집어 내어서 믿음이 죽을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죽을수 있는것이 아니라 죽은믿음 곧 믿음자체가 없는것입니다. 행위를 바르게 하지 않는것은 믿음자체가 없기 때문에 행위를 바르게 할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찾아오셨기 때문에 가질수 있는것입니다. 곧 들음이 없이는 믿음이 생길수 없습니다. 이 들음과 함께 활동하시는 성령하나님의 거듭나게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권세를 얻게된것입니다.
이는 행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음입니다.
그런데 왜? 행위를 강조하는 현실이 되어 버렸을까요? 그것은 바로 신명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최장로님의 언약론을 제대로 이해하시려면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의 행적을 잘 생각해보시면 알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역사하시는 것을 본 유대인들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점을 하나님이 무시했다면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며 고넬료의 가족을 구원케하는 역사를 보여주지 않으셨을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향해서 복음을 전파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각 지역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은 무엇을 전했을까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전했을까요? 천만에요!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가 오셨다고 전도한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자기 백성들에게 전도하는 방법은 기다리는 메시아가 오셨다. 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도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차이를 이해하지못하고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온것처럼 착각하여 유대인이 된것인냥 지금도 자기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 언약의 후손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깨달은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분수를 깨달아 겸손히 행하여야함에도 불구하고 자기 분수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긍하여 이스라엘을 무시하는 자리까지 가게 됬으니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인들이 지금 복음을 오해하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이 되었으니 율법이 바로 우리들에게 적용된다고 착각하는것입니다. 이 율법은 언약의 후손들에게 준것이고 그들이 이 율법을 지킬때 언약안에 거하게 되고 율법을 어기면 무할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무할례자가 되어서 멸망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것이고 예수님을 믿으면 이들은 조상들과의 약속한 언약안에 거하게 되고 조상들이 받은 기업을 받게되는것입니다. 이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음입니다.
곧 짐승을 잡아 죽여 제사를 드려 속죄하던 그 행위를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모든 피를 흘려 죽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구원받게 된다는것을 의미하는것입니다.
이는 유대인들과 하나님과 약속한 그 약속에 의해서 성취된것입니다.
그러나 이런것은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것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에게는 복음을 주어서 유대인들이 받을 복에 참여하게 한것이 바로 우리게 전하여진 복음인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받은 율법을 가지고 특별한 자들이라고 생각하여 이방인들을 짐승처럼 생각하고 그들을 구원받지 못한 자들로 보며 깔보고 그들만 선택된 민족이라고 하여 모든 민족들 위에 군림했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바란것은 그런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택한 이유는 바로 그들을 통해서 만국이 복을 받게되는것을 원했던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못오해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참된 뜻과 마음의 할례를 받는것이 더 중요하다는것을 깨닫지 못하고 육체의 할례를 더 소중히 여겼고 율법의 문자적인것을 지킴으로서 구원받을수 있다고 착각하여 그들은 결국 은혜를 행위로 바꿔버리는 악을 행하고 만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게된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복음으로 구원한 이방인들을 향해서 말씀하신것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구원했으니 그 은혜안에서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가는것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방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의 자리를 우리가 차지하고 우리가 유대인이라고 하여 우리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하여 이제 우리가 율법을 받은자인것처럼 율법을 행해야지만 구원을 얻는것처럼 착각하여 율법을 행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것처럼 말하는것은 결국 성경을 잘못알고 있는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썩을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말세가되면서 이런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워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얻지 못하지만 은혜로 살아야합니다. 은혜의 삶은 무엇입니까? 용서하는 삶입니다. 율법은 정죄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긍휼함이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용서하는것입니다.
내가 용서했듯이 너희도 용서하라는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참된 행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율법을 가지고 이웃을 정죄하고 있지 않습니까? 믿지 않는자들을 불쌍히여기고 그들을 안타깝게 여기며 그들을 용서하는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는 자들을 오히려 정죄하지 않습니까? 너희가 믿음없는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든지? 아니면 너희는 지옥갈자들이라고 말입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 좋은 전도방법이지만 또한 이는 정죄하는 것으로 이말을 듣는 사람들중에 구원받는 사람도 있지만 또한 반발하는 사람도 있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용서해달라고! 그런데? 우리에게 긍휼이 있습니까? 용서가 있습니까?
우리는 잘못하면 용서를 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웃을 용서할줄 모릅니다. 율법을 가지고 정죄할줄밖에 모릅니다. 이젠 율법만 가지고 정죄하는것이 아니라 전통을 가지고 정죄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도데체 주일날 과자사먹지말라는 말이 어디 있는것입니까!
우리의 본분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삼천포로 빠지게 될것입니다. 우리 저주받은 자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 이스라엘과 하나되게 하시고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의 자리에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적 정죄의 삶이 아닌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삶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제대로 깨달을때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게 될것이고 그 안에서 은혜의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말씀데로 살아가게 될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를 교훈삼아 우리는 실패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이땅을 심판할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자로 이땅에 오시지 않습니다. 심판주로 오십니다.
기독교인들은 구원하러 오신다고 하는데 착각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실것이고 자기 백성들과 하나된 자들을 구원할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업신여기고 그들을 폄훼하고 그들의 자리를 우리가 차지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저주할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것은 바로 언약을 바로 아는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 중 언약안에 있는 남은자들을 구원할것입니다. 이 구원에 우리는 동참하는 자들이 될겁니다. 복음이 바로 이 언약에 참여하게 하는것임을 깨닫는자들만이 참된 구원을 받을것입니다.
이들은 율법주의자들이 아닌 참된 은혜가운데서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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