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의 자유를 허락하셨다. 이 생각의 자유는 결코 죄가 아니다. 우리는 생각할수 있는 권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 이 권리는 하나님이 주신것이다. 이 생각의 자유는 누구도 통제할수 없다. 하나님도 통제하지 않으신다.
이 생각의 자유는 우리의 육체를 이끈다. 육체가 가는 곳이 바로 생각하는 곳이 가는 곳이다. 생각의 자유를 통제하고 제어하는 힘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가 판단되는것이다.
생각의 자유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생각의 자유라면 우리의 육체또한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위해서 살게 될것이다.
이 생각의 자유로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생각하고 산다면 나는 내 육체의 만족을 위해 살게 될것이다.
이 생각의 자유가 원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찾을수도 없고 만날수도 없고 알수도 없다면 과연 생각의 자유를 가지고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살게 될것인가? 결국 나를 위해 살게 되지 않을까!!
생각의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는것은 나를 위해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가를 깨닫는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아닐까?
대통령이 되었다면 누구를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가! 나를 위해서 대통령이 되었는가? 아니면 국민을 위해서 대통령이 되었는가?
만약 회사의 사장이 되었다면 나를 위해 회사의 사장이 되었는가? 아니면 이웃과 종업원들과 사회를 위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었는가?
내가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면 그 아이가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아니면 내가 그 아이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믿는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차이점은 바로 이것에서 드러나게 된다.
결혼을 했다. 나를 위해 아내가 필요한가? 아내를 위해서 내가 존재해야하는가?
선악과를 두고 고민한 하와는 무엇을 고민했을까? 나를 위해서 선악과를 먹어야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서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하는가? 아니 아담을 위해서라도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 하는가?
하와는 자기를 위해서 선악과를 먹었고 자기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아담을 동참시켰다. 아담은 하와를 위해서 선악과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선악과를 먹지 않아야하는 절대적인 명제를 잃어버린 까닭이다.
아내를 위해서 살인을 했다. 과연 정당할까? 아이를 위해서 도적질을 했다? 과연 정당한가?
절대적 명제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결코 정당하지 않은 행동이다.
아내를 위해서 생명을 구해야하고 아이를 위해서 굶어죽을 각오를 해야하는것이다. 굶어죽어도 떳떳하게 살고 억울해도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것이 바로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행동인것이다.
사람들은 이 명제를 잘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위해서 산다. 이 땅의 모든 존재는 다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것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조차도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자로 만들어버린다.
하나님이 햇빛을 주는것도 비를 내려주시는것도 공기를 주신것도 농산물을 수확케하는것도 돈을 벌어서 잘먹고 살게해주는 것조차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해주시는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지구를 창조한것이 인간이 살기 좋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했다고 해석하고 설명하고 가르친다. 과연 그러한가?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한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나눌 인간이 생존하지 않으면 어찌 하나님과 동행할수 있으며 사랑할수 있는가? 인간이 살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만든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사랑하며 살기위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 만든것이지 인간을 위해서 만든것이 아니다.
만약 이 지구가 나를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만들어진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지구를 다스리고 정복하고 충만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곳이 하나님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것을 깨닫는데 그 시작이 있다.
나를 위해서는 모든것을 파괴해도 나만 만족하면 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풀한포기 꽃한송이 물고기 한마리까지도 모든것이 다 소중한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깨닫게되고 이 지구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게될것이다. 이 지구의 모든것이 내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소유이고 나에게 맡겨진것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흙으로 돌아갈때까지 이 땅 이 흙을 소중히 생각하게 될것이다. 이 흙위에 콘크리트를 까는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아님을 알게될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가?
이 자유를 어떻게 누리고 있는가? 이 자유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 가운데 하나일것이다.
짐승도 생각하지만 그 범위가 좁을 것이다. 인간은 생각으로는 우주 저끝까지 날아가고도 남지 않는가! 인간의 생각은 이 지구쯤은 1초도 안되어서 파괴시킬수 있는것이 인간의 생각이다. 생각만 그러할뿐? 인간의 육체는 제약되어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같은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처럼 천부적 자유를 허락받은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니면 마귀의 자녀인지? 구별되는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생각을 통제받고 육체적으로 절제하게되어 죄악을 범하지 않게되는것이고......
마귀의 자녀는 마귀의 지배를 받아 자기 맘대로 생각하며 하나님이 없다고 할것이고 모든 것들중에 자기가 왕이고 자기가 원하는것은 모두 다해야하는것이 바로 마귀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모습이다.
자살에 대한 문제의 해답도 여기에 있다. 누구를 위해 죽을것인가? 나를 위해?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죽음에도 그 가치가 다른것이다. 자살자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렵다. 그 이유는 우리는 항상 나를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내가 만족되어야지만 비로서 이웃을 돌아보게 되는데....문제는 나는 언제나 만족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네 은혜가 족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더이상의 욕심을 갖지 말라는것이다. 욕심은 죄를 잉태하고 죄의 값은 사망이니 나를 위해서 욕심을 부리면 그 한도는 없고 결국 그 끝은 사망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이름은 나를 위해서 사는 자들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그 절대적 명제와 가치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 가치는 바로 가난해도 만족하며 욕심을 가지지 않아 화평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의를 추구하고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자들이 가지는 하나님의 평안이다.
이는 아무에게나 주어진 평안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줄수 있는 평안이다. 그 평안이 우리에게 있는가?
우리의 가치 그것을 어디에 두고 사는가? 하나님을 향해 그 가치를 하늘에 두고 사는가? 아니면 나를 위해 이땅에 두고 사는가?
이 삶의 방식이 바로 하늘에서 난자와 땅에서 난자들의 차이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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