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9:15에서 새 언약의 중보자인 그리스도는 첫 언약 때에 범함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새 언약이 신약이요 첫 언약이 구약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새 언약과 첫 언약 외에 영원한 기업의 약속이 있다는 것을 주시해야 합니다. 새언약과 첫 언야과 영원한 기업의 약속의 관계에서 새 언약은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여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 언약 때에 범한 죄가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첫 언약과 새 언약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첫 언약은 동물로 제사를 드리던 레위의 언약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의 언약은 출애굽 때 받은 것으로 율법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율법은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지키면 복이요 범하면 저주인 상벌의 율법과 상벌의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는 속되의 율법입니다.
여기에서 일반적으로 범하고 있는 실수가 상벌의 율법과 속죄의 율법을 구별하지 못하고 율법이라고 하는 하나로 묶어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벌의 율법의 첫 언약과 새 언약 그리고 속죄의 율법의 첫 언약과 새 언약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린 것을 믿는 것으로 히브리인들에게는 레위의 언약에 대한 새 언약입니다.
이방인인 우리에게는 복음이 레위의 언약에 대한 새 언약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수는 복음이 열조의 언약에 대한 새 언약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곧 열조의 언약을 구약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새 언약이란 복음은 레위의 언약에 대한 새 언약입니다. (히 5-7장) 그러므로 레위의 언약이 아닌 열조의 언약을 새 언약인 복음에 대하여 구약이라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 구약인 율법은 출애굽 때 주어진 것으로 열조의 언약과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열조의언약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율법을 지켜 행하여야 그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범하면 저주를 받아 열국에 흩으진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율법을 지키면 할례가 유익하나 범하면 할례가 무할례가 된다고 한 것입니다. 무할례자란 열조의 언약이 없는 자입니다. 곧 율법을 범한 저주로 열국으로 쫓겨나면 이방에 거하는 것으로 이방인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되어야 다시 열조의 언약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이 레위의 언약인 동물 제사로는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단번에 제물로 드려 이를 믿는 자가 구원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율법의 저주가 할례가 무할례가 되게 하는 것이니 율법의 저주에서의 구원은 무할레를 할례가 되게 하는 것으로 다시 열조의 언약에 거하게 하는 것이니 율법의 저주에서의 구원은 다시 열조의 언약을 얻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새 언약의 중보자가 죽음으로서 얻게 하는 영원한 기업의 약속은 열조의 언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기업의 약속이 열조의 언약이란 증거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합니다. 그것도 가까운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당하며 누구의 글인가 또는 그 수신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히 9:15이 히브리서이니 히브리서에서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약속은 아브라함이 받은 것이며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 6:13) 그리고 이 맹세는 변치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 6:17) 그리고 하나님은 이 약속과 맹세란 두 가지는 변치못할 사실로서 거짓 말을 하실 수 없는 것이라 합니다. (히 1:18)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이삭과 야곱과 동일하게 받은 약속이라 합니다. (히 11:8-9) 이렇게 아브라함이 받은 것으로 하나님의 맹세와 관련된 것은 가나안 일경을 영원한 기업으로 준다는 열조의 언약입니다. (창 17:7-8. 22:16) 그러므로 모세는 이 열조의 언약 앞에는 맹세란 수식어를 분명히 붙여줍니다. 그리고 언약의 땅 가나안도 맹세라는 수직어를 붙여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글인 신명기에서 수없이 발견됩니다.
곧 신명기에는 열조의 언약과 첫 언약인 율법을 명백하게 분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열조의 언약과 율법을 혼합시키고 있는 것과 이를 명백하게 분리하는 저와는 차이가 너무 큼니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신약에 대한 구약을 열조의 언약과 율법을 혼합시키고 있으니 제가 보는 눈을 구약적인 눈이라하는 것입니다.
열조의 언약의 눈에는 구약과 신약이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율법은 구약이요 복음은 신약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은 영원한 기업의 약속인 열조의 언약의 눈으로 보면 율법인 구약의 눈으로 보는 것이 성경을 얼마나 왜곡하게 하는 가를 알 것입니다. 곧 현재의 목사님들의 글은 율법과 열조의 언약이 다른 것을 알지 못하시듯 구약과 신약을 구별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이 약속론에 의하면 히브리서는 바울의 글입니다. 바울의 글인 로마서와 갈라지아서와 에베소서에 이 약속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는 4장에 약속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롬 4:13 아브라함이나 그 세상의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여기의 언약은 원어상에는 약속) 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여기에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한 것은 열조의 언약입니다.
롬 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
여기에서 믿음은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을 그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은 열조의 언약을 굳게하려 하심입니다.
롬 3:3-4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그럴 수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 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범죄가 하나님의 약속을 폐할 수없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맹세로 보증하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롬 15: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여기에서 약속은 조상들에게 주신 것으로 열조의 언약이며 그리스도는 이을 견고케 하였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이 약속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사람의 예대로도 언약은 정한 후에는 폐하거나 더하지못한다는 것입니다.
갈 3:15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지못하느니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주신 약속을 폐하거나 더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저주로 열국에 흩으도 다시 돌아오게 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신명기와 모든 선지자들의 글입니다.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갈 3: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모든 믿는 자에게 주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약속은 믿는 자에게 주는 것으로 믿음 곧 새 언약인 복음은 약속을 얻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이 약속 곧 열조의 언약을 받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를 자니라,
여기에서 복음을 믿는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약속대로 유업을 잇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 유업을 잇는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연관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방인이복음을 믿는다고 하여 아브라함과 별도로 결코 구원이나 복을 받을 수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 것입니다.
갈 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복을 받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전한 복음은 결코 아브라함과 분리될 수없는 것입니다.
갈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복음도 아브라함의 복을 이방에 미치게하신 것으로 그리스도와 아브라함도 분리될 수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엡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게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여기에서 이방인은 복음에 의하여 이 약속에 참여합니다. 그러면 복음이란 이방인을 열조의 언약에 첨여시키는 것이지 열조의 언약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소아 에베소서의 약속들은 모두가 히브리서의 약속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곧 열조의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열조의 언약인 약속과 율법을 완전히 분리하고 있는데 이 둘을 다 같이 구약으로 보시는 것은 잘못입니다.
롬 4: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 것이되고 약속을 폐하여졌느니라.
갈 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니
갈 3: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아니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이상에서 율법과 약속이 분명히 분리됨을 이해하신다면 제가 구약의 눈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이 목표로 하는 열조의 언약 곧 약속의 눈으로 성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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