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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언 약 론

믿음의 법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마음에 자유의지가 있게하셨으며 이 자유의지를 다스리시기 위하여 법을 주셨습니다.  

이 법에는 율법과 같은 행함의 법이 있고 복음과 같이 믿음의 법이 있습니다.  

행함의 법에 대하여 믿음의 법을 하나님의 은혜라 합니다.  사람들은 이 은혜를 법을 초월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법이니 행함에 대하여 믿음은 은혜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법에 의하여 구원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구원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믿음을 초월하여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정을 입은 자도 범죄하면 믿음에 의하여 구원되고 예정을 입지못한 자도 믿음에 의하여 구원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의한 구원은 은혜에 의한 구원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믿음은 법이며 그 대상은 천하만민입니다.  그러나 법의 대상이 다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법을 따르는 자가 구원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을 위한 믿음이 말씀에 의하니 말씀을 듣고 믿기 전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위한 말씀은 전도에 의하여 전파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전도를 강요하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은 장로님의 글에는 풍부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목사님들은 우리가 말하는 자유의지와 신학이 말하는 자유의지는 다른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칼빈의 이중 예정론이나 웨슬레의 선재적 은혜와 같은 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성경과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칼빈의 예정에서 선택과 유기는 에베소서의 설명을 이해하지못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엡소서 1:11에는 예정을 입어 기업이 된 자가 등장하며 이들은 창세 전에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로 이스라엘입니다.  

이에 대하여 택함 받지못한 자를 유기자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택함 받지 못한 이방인은 유기된 것이 아니라 복음에 의하여 구원됩니다.  

여기의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관계에서 택함받은 이스라엘을 제하고 택함과 예정을 이방에 적용하여 택함과 믿음을 혼합시킨 것입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대상자 중에는 택한 자와 유기자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택한 자는 증인으로 택함을 받은 것이요 택함 받지 못한 자는 택한 자의 증거에 의하여 믿음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하여 웨슬레는 택함을 전제한 것이 아니라 복음적인 면에서만 이해하여  믿음에 의한 구원은 선재적인 은혜로 본 것입니다.  

은혜는 행함의 법에 대하여 믿음을 법으로 주어진 것이나 웨슬레는 이를 만민을 구원하는 법으로 보지 아니하고 은혜로만 본 것입니다.  

나아가 이 은혜를 구원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법의 대상은 만민이라 하여도 구원은 법에 의하는 것이니 믿을 때에 구원됩니다.  

곧 선재적인 은혜에 의한 선재적인 구원은 없다는 것입니다.  

선재적인 것은 예정을 입어야 하는데 예정은 택한 자만이 입어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택한 자나 택함 받지 못한 자나 죄를 범한 때에는 믿음에 의하여 구원됩니다.  

이 믿음은 말씀에 대한 자유의지의 반응입니다. 곧 마음이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신학이 말하는 자유의지가  이러한 자유의지와 다르다면 새로운 설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성경을 떠나서는 불가합니다.  

그러니 믿음에 의한 구원의 대상은 만민이나 구원을 받은 자는 믿음의 법에 따라 믿는 자로 한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