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주안에 하나된 형제님들 형제님들의 고민을 들어보면 참으로 다양하고 가지각색입니다. 그러나 하나로 귀결될수 있는것은 바로 우리가 이땅 이 고민많은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는것입니다.
우리는 이땅에서 살아가고 있고 육신을 입고 있습니다. 이땅에서 살아가는동안 우리는 끝까지 고민은 우리를 쫓아다닐것이고 의문은 우리를 끝까지 괴롭힐것입니다.
왜 우리에게는 이런 고민과 의문과 또 의심과 괴로움이 끝까지 우리를 쫓아올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받을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험인것입니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시험을 받습니다. 왜 시험을 받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이유는 딱 한가지! 천국백성이 되게 하기 위한 시험인것입니다. 이땅에서 우리는 시험을 받고 그 시험을 잘 치루면 상을 받습니다. 그 상을 성경에서는 공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험에서 낙방할지라도 하나님은 이 시험을 치루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기로 작정하고 계시니 이 시험은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치룰만한 가치가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험은 기쁘게 받아야 마땅한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될수 없고 하나님의 명령없이는 자기 맘대로 일할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하는 피조물입니다. 그가 교만해진것은 바로 하나님과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하나님과 대적하게 된것은 인간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때 천사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천사가 부러워하는 자들이 바로 인간입니다. 이 사단은 이 질투심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인간을 자기것으로 만들고자 선악과를 먹게 한것입니다.
이 사단은 자기 편은 절대로 건들지 않습니다. 사단이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단은 패배한것처럼 보이는것입니다. 사단은 공중의 권세를 잡았지만 한가지 할수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구원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로 건들수 없는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명은 건들지 못하지만 복음전파는 기필코 막고자 했습니다. 사단이 하는 일은 바로 이 복음전파를 막는것이고 세상의 멸망을 끝까지 막는 길이었습니다. 세상이 심판을 받지 않으면 사단도 영원한 심판을 피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패배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패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것을 막는것입니다.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는것을 막으면? 예수님이 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복음을 막아야 하는것이지요. 그러나 사단은 언제나 뒷북이었습니다. 복음이 전파된후에 따라와서 방해를 놓았으니까요....바보들이지요....그런 바보들의 시험에 우리가 져서야 되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과연 사단에게 패할까요? 하나님과 사단은 우격다짐으로 싸우고 있는것이 아닙니다. 논리로 싸우고 있는것입니다. 성경은 이 싸움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이 쳐놓은 덫입니다. 사단이 쳐놓은 덫이 무엇입니까?
사단이 쳐놓은 덫은....하나님이 창조해놓은 논리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약속했습니다. 정녕죽으리라!! 그런데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바로 죽지 않았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 요구했겠지요. 왜 죽지 않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를 먹음과 동시에 영원한 생명에서 쫓겨나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단지 기간이 900년이라는 기간만 살아있었을 뿐 죽음을 그는 피할수 없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간 인간은 하나님의 약속되로 죽게된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최고의 작품이고 하나님은 이 인간과 사랑을 나누며 영원히 살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은 불멸의 영혼으로 창조한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죽지 않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또한 내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 내세에 가는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내세에 가는 방법을 일러주셨는데 사단이 모르게 일러줘야 했습니다. 그래서 짐승을 죽여 가죽을 만들어 아담과 하와에게 입힘으로서 너희 죄때문에 애꿎은 짐승이 죽어야 했다. 창조세계는 짐승들도 죽음이 없었습니다.
아담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창조세계에도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너희 죄로 인해서 짐승이 죽어야 함을 가르쳐 주었고 이 짐승을 죽여서 죄로 인해서 죽게된것을 잊지 않도록 했으며 그 죄를 생각하여 하나님께 회개하도록 하나님이 인간에게 사는길을 터준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실것을 하나님이 미리 말씀해 주신것입니다.
한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듯이 둘째 아담되시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사단의 논리를 깨부시는 하나님의 논리인것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의 발뒤꿈치를 물었지만 언젠가는 그 발에 밟히여 머리를 상하게 될날이 올것입니다!!! 이 승리를 밎는다면 우리는 이땅에서 받을 시험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는것입니다.
사단은 인간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막고자 했고 하나님과 대적하게 된것입니다. 인간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아무리 짐승을 잡아도 깨끗해질수 없었으니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길이 없었던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인간이 죄를 짓는다고 하여 바로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오래 참으시고 참으시고 또 참으시고 심판하셨습니다.
아모리족속의 죄악이 관영할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을 노예로 고생하며 살아야했고 요나를 불러 니느웨를 심판한다고 할때 회개한 니느웨를 바로 심판하지 않고 수백년이 흐른뒤에 그들의 죄악이 관영할때 결국 홍수를 일으켜 니느웨를 심판한것은 하나님이 그만큼 오래 참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신것을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4백년이면 4세대이고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할아버지까지 살아계실때까지 하나님은 참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오래참으시는 사랑을 괴롭히는것은 바로 사단인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죄있는 자들을 심판한다고 하면서? 심판하지 않으십니까? 하면 하나님도 어쩔수 없이 심판할수 밖에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노는 사랑이지 미움이 아닙니다. 인류를 다 쓸어버려 새롭게 지을수 있었지만 노아를 남겨두신 하나님.....소돔과 고모라를 모조리 멸망시킬수 있었지만 롯과 그 딸들을 살려두신 하나님........
이 사단이 자세히 드러나는 성경책이 바로 욥기서입니다. 사단은 욥을 시험합니다. 시험은 하나님이 허락했지만 목숨만큼은 건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욥은 처음에는 자기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했으며 하나님앞에서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고난을 당할때 고난당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죄가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일을 저주했으며 괴로와 했습니다. 사단은 욥을 괴롭힐수 있었지만 생명은 건들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욥은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임을 깨닫고 참된 신앙고백을 하게됩니다. 욥 42장 6절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하나님이 사단에게 욥을 시험케 한것은 욥이 하나님을 변절하지 않을것을 아시고 계셨지만 또한 욥의 오류를 깨닫게하여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던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이제 자기의 존재를 깨달아 하나님앞에 온전한 신앙고백을 하게됩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시험을 거두시고 욥을 축복하여 그의 복이 배나 더하게 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시험을 만나거든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시험을 한번 통과할때마다 우리는 그만큼의 신앙이 자라는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험이 있다면 그것을 기뻐해야할 이유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기로 한 이후부터 우리에게는 늘 시험이 있게되어 있습니다. 만약 예수그리스도를 믿기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시험은 없고 축복만 있고 고난은 없고 늘 평안하기만 하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을때는 하나님의 시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간섭도 없고 고난도 없고 아무것도 우리를 괴롭힐것이 없습니다. 시험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험을 받는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이고 또한 시험받을만큼의 신앙이 성장한것이며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더 잘 알게 하기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더욱더 우리의 신앙은 견고해질것이며 튼튼해질것이고 어떠한 바람에도 견디고 어떠한 고난에도 견딜수 있는 신앙인으로 성장할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단에게 사로잡힌 인간을 구원하여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자녀로 삼으십니다. 빼앗긴 사단은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 괴롭히고 시험하고 유혹하고 하나님을 버리도록 유도하는 일을 악날하게 행하고 있습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복음이 뿌려진 밭의 상황에 따라 열매를 맺거나 못맺는 경우가 있는데 복음은 어디든지 다 뿌려지는데 사단이 바로 그 말씀을 뺏아가는 길가밭이나 조금은 하나님을 믿을까? 하다가 포기하는 돌짝밭이나 하나님을 믿는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의 사람들처럼 사단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시험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하는데.......열매를 맺는 좋은 밭을 가진 자들은 사단이 그냥 가만히 두는것이 아니라 몰래 그 안에 가라지를 심어 놓아 온전히 열매를 잘 맺지 못하도록 방해를 놓는데 이것이 바로 사단이 인간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시험하는것입니다.
이 시험에서 이기고 열매를 맺는 자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자녀들이니 이 시험을 우리는 잘 견디어 내어야 할것입니다. 내안에 가라지와 같은 목소리가 들립니까? 하나님을 배반케하고 돈을 사랑하게 하며 쾌락을 즐기게 하는 목소리를 이겨낼수 없습니까? 하나님이 이런것들을 내안에서 다 뿌리 뽑아내주기를 바랍니까?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것들을 내안에서 뿌리 뽑아내면 좋아지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하고 다칠까봐 그냥 그 상태 그대로 두시는것입니다. 마지막때 추수때에 내안에 있는 가라지들을 다 뽑아내어 가지고 있는 열매들만을 하나님이 모으실것이니 우리안에 있는 시험과 유혹들을 뿌리 뽑아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그것들이 너무 활동하여 열매맺지 못하도록 하는것을 우리는 견디어 내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것입니다.
우리안에 있는 시험은 불의한것들입니다. 이것들을 행하게 하려고 사단은 그렇게 우리를 잡아 먹기위해서 안달을 부리는것입니다. 우리가 불의의 열매를 맺을때 하나님은 근심할것이고 사단은 기뻐하게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사단의 싸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편에서서 승리해야하는데 이 승리를 위해서 하나님은 영적 전투의 원리를 설명해주셨으니 이 영적전투에서 승리하는 길은 바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것입니다. 영적전투에 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믿음과 구원과 복음과 말씀을 들고 사단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바로 열매를 맺는것인데......
사랑과 희락과 오래참음과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같은 열매들을 맺는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험들을 이겨내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된 도리이며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로서 마땅히 싸워야 할것들입니다. 쾌락과 탐욕과 불의와 더러운것에 우리는 물들지 않아야하고 이것들이 바로 사단이 주는 가라지들이고 이 가라지들이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것이 바로 우리가 잘 성장하여 열매를 잘 맺는것입니다.
가정문제, 자녀 문제, 진로문제, 결혼.....수없이 많은 우리의 삶의 고민들과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문제도 아주 중요한 것중에 하나입니다. 그런 문제들 가운데 우리는 쓸데없는 걱정들을 많이 하고 있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을수 없는것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고민과 근심과 걱정은 우리의 죄로 만들어진것 이거나 실수로 생기는 문제이거나 다툼과 싸움에서 비롯된것입니다.
이런 다툼과 싸움과 실수와 죄들은 근심을 낳게 하는데 이것을 이기는 길이 무엇입니까? 바로 용서받는것과 용서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든것들을 이미 용서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언제나 우리를 속입니다. 너가! 그렇게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이 용서해줄것같냐? 라고 말입니다.
사단의 대표적 속이는 말이 이런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용서해줄것같냐?" "내 죄가 주홍빛 같을 지라도 하나님이 자기 목숨을 바쳐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은 모든죄를 다 용서하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달을때 우리는 더이상의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게 되는데 상처를 주게되면 용서를 구하고 상처를 받게되면 그저 그냥 용서해주면 그것으로 인간관계는 회복되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질것입니다.
돈에 대한 문제도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과욕을 부리지 않는한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데는 결코 지장이 없을것입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많은 소비를 하고 낭비를 하고 쾌락을 위해 돈을 쓰다보니 늘 부족하고 부족하다보니 욕심을 부리게 되고 결국 이런것이 죄를 낳게 되고 근심을 낳게 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정말로 걱정할 일이 사라질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수 없는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까지 하나님은 다 아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인간을 사랑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늘 마음속에 이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시는구나!! 내가 비록 지금 힘들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버리지 않으실거야! 라고 믿으신다면 근심과 걱정이 우리의 삶의 주관자가 되지 않을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게 될것입니다.
창조에 대한 고민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것을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하니 인간의 지식은 버리면 고민될것이 없습니다. 구원에 대한 문제도 이미 구원받았으니 사단이 의심을 품게 하는것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자유로와 집니까? 하나님이 구원해서 사단이 나를 시험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 더이상 구원에 대해서도 근심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미래가 염려가 됩니까? 내일 망하면? 우리가 지옥갑니까? 내일 죽으면? 우리가 손해봅니까? 결혼도 못했는데? 벌써 죽어야 하다니? 결혼 못한건 후회할일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를 모르는것이 후회할일이라는것을 너무 잘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EU의 통합이 두렵습니까? 혹여 요한계시록처럼 고난이 우리에게 닥칠까봐 무섭습니까? 우리의 육신은 죽일지언정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말고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에게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영혼을 살리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되시는데 말입니다.
종말이 오면 정말 두려워해야할자들은 정사와 권세잡은 자들이고 하나님의 오심을 반기지 않는 자들일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빨리 오시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소망이 있는데 미래가 무엇이 두렵다는것입니까?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해도 우리의 그리스도 영광으로 오실 메시아가 있는데 무엇이 두렵다는 것입니까? 적그리스도를 분별할수 없다고요? 왜 분별할수 없습니까!! 자기가 그리스도다! 메시아다 하고 처음 나타나는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인데 말입니다. 그가 나타나야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것인데? 분별못할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구원받지 못할까봐 두렵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분이신데 구원을 안하실 분이십니까? 그건 믿음이 아니지요!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의심이 됩니까? 나는 내가 존재하는것 조차도 의심스러운데?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다니요? 내가 존재하는데 하나님이 존재하는것은 당연한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신비한 내가 어떻게 그냥 생길수 있단 말입니까?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가 어떻게 이렇게 나를 만들수 있단 말입니까?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마한 생명체 반쪽이 서로 만나 인간이 된다고 하니 이런 신비한일이 어찌 그냥 될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의 존재가 의심스럽습니까? 내 조상이 원숭이들이라고 믿어야하고 원숭이를 보면 조상님의 후손들이라고 존경해야합니까? 원숭이들을 조상들의 후손으로 대접하지 않고 우리에 가둬놓고 구경하는 후손들이 있으니 아마 원숭이 조상들이 인간들에게 후레자식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려....ㅋㅋㅋ
논리에도 이치에도 맞지 않는 진화론으로 우리를 속이는 자들에게 속아넘어가서야 되겠습니까?
무엇이 의심스럽고 무엇이 궁금합니까? 두려워하지도 마시고 의심을 하지도 마시고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눈에 보이지는 않으시지만 목성을 창조하여 지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를 깨달을때 태양과 달의 크기가 똑같고 그것이 지구와 달의 거리와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똑같이 배수로 이루어져서 가능하다는 사실에 이것은 수학적 논리적 창조없이는 해와 달의 존재가 이렇게 맞아떨어질수 없으니 얼마나 놀라운 창조의 결과인가? 이것을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창조했으니! 기뻐하고 감사하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그를 영원히 찬양하고 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는 삶을 살수 있게된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니 이 축복을 받은 우리들은 더이상의 근심과 걱정을 하지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이 시간들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가장 간절한 소망이 아닐까.......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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