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짓고 있어서? 속상하고 가슴이 아픕니까? 특히 젊은 청년들은 혈기 왕성함으로 말미암아 육체적 죄를 얼마나 많이 범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매일같이 눈물흘리고 가슴아파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제가 그러했습니다.
젊을때 내 몸은 언제나 음란과 탐욕에 쩔어있었고 감당치 못할정도로 나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고자가 되고싶은 생각을 가질만큼 나는 그렇게 심했습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을 믿었던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부터였고 고백한것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였습니다. 늘 예수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왔고 나의 노래는 늘 찬송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죄에서 벗어날수 없었습니다. 늘 죄가운데서 살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젊을때 나는 하나님을 붙들고 밤을 세워 기도하고 하나님께 이 범죄함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를 수백번도 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범죄하지 않고 살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나는 하나님앞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젊을때의 혈기 왕성할때의 몸이 감당치 못하는 그런 혈기로 범하는 범죄는 하나님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범죄였던것처럼 보입니다.
지금은 결혼도 하고 가정도 갖고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서 잘살고 있지만 오히려 범죄의 깊이는 더욱 깊습니다. 너무 깊어 그 깊이를 알수 없을만큼 나는 하나님앞에서 죄인으로 이 죄의 몸을 벗어내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유체적 탐욕은 끝이 없어서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있으면 눞고 싶고 누워있으면 자고 싶고 자고 있으면 깨고싶지 않은게 인간의 몸이라고......아내가 없을때는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고 아내가 있으니 애인도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고 애인이 하나더 있으면 즐기며 살고 싶은것이 바로 인간의 속성이라는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내 자신이 범죄함에서 내 자신을 추릴수 없기 때문에 항상 내 아들과 아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고 어떤 유혹에 있어서도 내가 이겨낼수 없는것을 스스로 막아 범죄함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결혼을 하면 아내 하나만 사랑하며 살것같지만 꼭 그런것은 아닙니다. 부부싸움을 몇년 하다보면.....사이가 멀어지고 멀어지다 보면 엉뚱한 상상을 하기 마련입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다보면 부부는 싸우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겁니다.
이럴때일수록 마음을 다잡고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내의 힘들고 고통스러운것을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갖는것은 믿는자나 믿지 않는자나 다 가질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죄와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는것입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과 동행해야하고 하나님과 동행할때야 비로서 죄라는 것 유혹이라는것이 문턱까지 넘어올때 안되! 라고 말할수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말라?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장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과 동시에 죄를 짓지 않게 변화시켜주셨겟지요! 우리는 죽을때까지 죄와 씨름하며 살수 밖에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죄와 씨름하며 살수 밖에 없게 만들었을까요?
이 죄를 통해서 늘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살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곤고한 몸에서 해방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도무지 살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하나님을 포기하고 죄와 동행하면서 살겠다고 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을 붙들며 사는것을 우리에게 원하시지 죄를 짓지 않을수 없으니 하나님을 포기하고 죄와 동행하며 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모진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에게 한점의 죄도 용서할수 없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의 문제에서 고통당하며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죄의 문제는 예수그리스도에게 맡겨야합니다.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이 항상 나와 동행하시고 계시고 나에게 있는 엄청나게 큰 죄의 짐을 이미 덜어주셨다는것을 깨닫고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삶은! 맡겨진 삶을 충실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죄와 씨름하며 다른 문제는 생각지도 못하고 죄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사는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자를 너무 밝히거나 남자를 밝히면 차라리 결혼해서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습니다. 돈을 밝히면 일을해서 돈을 벌면 되기 때문에 일을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 우리는 죄와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이 부딛치고 어려움을 겪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직장도 없고 아내도 없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부모님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젊은 청년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가운데 있습니까? 이 고통의 나날들이 빨리 하루 속히 사라지고 어엿한 직장을 갖고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며 아이도 낳고 아이를 키우는 재미를 느끼며 살고 싶은게 젊은이들의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삶이 그렇게 해주지 않을때 얼마나 좌절하고 얼마나 슬퍼하며 얼마나 애통하는 마음이 그 속에 가득하겠습니까? 이런것이 쌓여 하나님을 부정하고 이 삶을 부정하고 이땅에 사는것을 저주하고 싶을때가 또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믿는 사람들은 뭐가 힘드냐? 뭐가 그렇게 고통스럽냐? 뭐가 그렇개 애통하냐? 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라고 불리는 분들은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데? 하나님이 책임진다는데? 왜 이렇게 고민을 하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냐고! 마음 편하게 살라고 하십니다. 이는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닙니다.
특히 이곳에서 믿는 사람들은 성화의 삶을 살아야한다. 이웃을 돌보고 살아야한다. 사회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한다. 라고 말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말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원론적으로는 그렇게 하는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이는 정답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빛과 소금을 말하고 성화를 말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말하는것을 고차원적인 우리의 행실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큰 역활을 하라고 이땅에 보내주신것이 아닙니다. 이땅에서 사는동안 맡겨진 것에 충성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열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 달란트에 맞게 살면 되고 한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 달란트에 맞게 살면 충분한것입니다. 내가 한 가정의 가장이면 그 가정을 지키는것에 충성해도 하나님은 맡은일에 충성했다고 기뻐하실것입니다. 내가 한 교회의 양들을 맡은 목자라면 그 목자의 일에 충성할때 하나님은 충성했다고 기뻐하실것입니다.
대통령이면 대통령답게! 총리면 총리답게! 국회의원이면 국회의원답게 시장이면 시장답게............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것은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라는것입니다. 죄의 몸에서 우리가 벗어날수는 없지만 통제할수는 있는것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죄는 더욱 강력하게 유혹하기 마련입니다.
돈이 많으면 죄는 더욱더 힘있게 다가서고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죄는 그 권력의 힘과 동일한 힘을 갖습니다. 이것을 제어할수 있는 방법은 정직하고 진실함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앞에서 정직하고 하나님앞에서 진실하게 살고자 할때 죄는 그를 이길수 없는것입니다.
뇌물의 유혹과 상납의 유혹들 이런것을 받지 않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이런 유혹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안그렇습니까? 우리에게 닥치는 유혹들은 얼마나 미약한것들입니까? 우리에게 요구하는 범죄의 요구는 얼마나 눈에 보이지 않는것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큰 죄나 작은죄나 다 똑같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작은 죄는 취급안하고 큰죄만 취급하시는 분이 아니신것입니다. 작은 죄정도는? 내가 행함으로서 이겨낼수 있다? 라고 판단하시면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작은죄나 큰죄나 하나님앞에서는 죄이고 인간은 결고 그 죄를 해결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그리스도가 필요한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신것은 죄의 문제에서 자유하게 하기 위함인것입니다. 지금 죄를 범하고 있다고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헛된것이 되었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온전히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강조하시는 분들 늘 우리는 회개하여 돌이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돌아와야합니다. 그것은 날마다 계속되는 우리의 싸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죄의 몸이 죽을때까지는 죄와 싸울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함으로 죄를 해결할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회개는 죄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길에서 예수그리스도와 동행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우리를 정결케 해야 하기 때문에 행하는 우리의 모습인것입니다.
회개함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성경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라고 말하기 때문에 회개를 해야 천국을 얻는다?라고 판단할수 있겠지만 그것은 성경을 단면만 보고 말하는것입니다.
회개해도 죄가 해결되지 않는데? 왜 자꾸 회개를 강조하고 회개를 강요하는것입니까? 우리가 죄를 해결하는 방법은 회개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죄를 해결해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하고 믿는 길밖에 없는것입니다. 곧 예수그리스도를 믿는것이 죄의 해결방법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나를 의롭게 하기 위해서 부활하셔서 죽음에서 부활한다는것을 보여주신 첫번째 열매가 되셨다! 곧 나도 죄에대해서 예수그리스도과 함께 죽었고 의에대해서 부활한 자다! 라는것을 깨닫는것이 참된 죄의 해결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땅에 사는동안 우리는 죄와 함께 살수 밖에 없습니다. 이 죄는 우리를 날마다 넘어지게 할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어설수 있는것은 이 죄가 아니라 이 죄를 해결해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주신 성령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하나님앞에 설때 하나님은 우리를 죄로 심판하시겠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를 죄없다고 하실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설때 하나님께 이렇게 우리는 회개했습니다! 라고 말하는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용서받는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피흘리심으로서 나를 깨끗게 했다고 하나님앞에서 변호할때 내가 용서받는것이라는 말입니다.
나의 힘 나의 노력 나의 애씀 내가 ....... 나....... 이런 모습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징계에서 해방되지 못할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에서 용서받는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예수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부활을 믿는 그 믿음에서 하나님의 징계에서 용서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되십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앞에 우리가 설때 변호사가 되어주십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의 변호사가 되어주십니다. 우리의 변호사 되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사해주었다고 하나님께 말씀하실때 우리는 용서받는것입니다.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하나님앞에서 회개하면 용서받았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말해서는 안되는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회개할때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나아가는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믿고 나아가는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없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고 그것은 자만일뿐입니다.
믿음이 없는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가 없는 믿음은 존재할수 없는 궤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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