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십자게에 못박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하나님께 이렇게 고합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안티들을 대하는 기독교인의 태도는 이러해야합니다.
복음을 전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람들이나 격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아니면 받아들인것같은데 변화가 없는 사람들......우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거듭난자와 거듭나지 못한자 두 부류로 나눕니다. 곧 거듭난자는 구원받은 자요 거듭나지 못한자는 하나님나라에 합당하지 못한 자입니다.
거듭난자는 영으로 거듭난자입니다. 곧 하나님으로부터 난자들입니다. 거듭난자는 살아있는자입니다. 곧 구원받은 자들은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거듭나지 못한자는 영으로 죽은자입니다. 그러므로 산자와 죽은자의 차이점에서 거듭나지 못한자는 죽은자로서 알지 못하는자입니다.
거듭난자는 산자로서 아는자입니다.
사람은 아는대로 행한다고 했습니다. 보이는데로 가는것입니다. 보이지 않으면 갈수 없고 아는것이 없으면 행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하나님과 그 보내신자를(예수그리스도)를 아는것이라고 했습니다.
안다는것은 살아있다는것입니다. 살아있다는것은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육으로 태어나 육적인 생명을 가진자는 육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은 생명이 있기때문에 육적인 일들을 감당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인 일을 알수 없습니다.
선을 안다는 것은 선이 무엇인지를 안다는것입니다. 이는 빛을 안다는 것을 의미하고 어둠에 거하지 않는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선을 안다는것은 선하신 분 하나님을 안다는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어둠에 행하지 않고 빛에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안티들은 선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선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알지못하고 빛을 알지 못하니 어둠에서 행할수 밖에 없는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안티들을 대하는 태도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와 같아야 한다는것입니다.
저들은 알지 못한다는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못하고 선을 알지 못하며 빛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짓가운데서 행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둠가운데 있는것입니다. 그들을 빛으로 인도하는것은 우리 기독교인이 해야할 일이 아닙니다. 빛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빛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아무리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예수그리스도를 깨닫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이 있어야지만 가능한것입니다.
바울이 스데반을 죽이며 의기양양했을때 하나님이 그를 꺼꾸러뜨린것처럼 그들이 기고만장하여 하나님을 이기고자 할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의에 복종시키는 자로 거듭나게 할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태도는 바로 스데반과 같아야 하는것입니다. 때리면 맞아야하고 욕먹으면 그 욕을 기꺼이 먹어야 하는것입니다. 나는 잘못한것이 없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말해서 그들이 알아먹었다면 말로 그들을 설득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지라고 하신 십자가가 바로 이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지어야할 십자가는 바로 긍휼과 사랑이고 이해와 용서입니다. 그들은 알지 못하고 우리는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죽이겠다고하면 목숨을 내놓을수 있는 그런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하는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으로서 그들이 변화할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마땅한것입니다.
안티들과 대적해 싸우는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지못하기 때문에 안티들과 싸우는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과 싸우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입니다.
십자가를 안다면 우리는 결코 안티들을 험담하며 안티들과 싸울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들과 싸우라고 지신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순종이요 희생이며 용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바로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재와 오래참음과 사랑과 희락 화평...등등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의입니다. 이는 내가 살고 그리스도가죽는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할때 이 믿음은 바로 순종입니다. 안티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믿음의 참된 모습을 보여줘야합니다. 그것은 그들과 화평하는것이며 그들의 모욕에 오래참는것이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며 그들의 아픔에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것입니다.
그들이 포악하고 악날한사람이라면 그리고 근본적으로 아주 악질적인 사람이라면..........우리도 맞써 싸워야 하는것이 아닌가? 생각될지 모릅니다. 이럴때는 맞써 싸우는것은 우리가 지는 것입니다. 이럴땐 무시하는것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자 하는 자들과 맞닥트렸을때 피하셨음을 기억하십시요. 때가 아니라서 때가 될때까지 예수님은 그들과 피하셨습니다. 그들을 죽이지 못해서?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하신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바보라서 피한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혜로와야합니다. 피할때는 피하고 행동할때는 행동해야 하는것입니다. 맞서 싸워 죽으면 개죽음이 될수도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미련하게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환란이 오면 피할수도 있어야하고 적그리스도들이 나타나면 가만히 숨죽이고 살아도 되는것입니다.
내가 믿음있는 자라고 뽑내봤자 세상사람들에게는 먹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여줄수 있는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자꾸 보여달라고 하니 요즘은 별 희안한 짓들까지 하는 모양인데....이게 미련한 짓입니다. 우리는 보여줄것이 없다. 보여줄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 없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지혜로와야 합니다. 아는 자들입니다. 아는자들은 지혜롭게 행합니다. 이 지혜는 성령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산자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눈에 보입니다. 죽은자들이 보이고 거짓이 보이고 진리가 아닌것이 보입니다. 그것을 드러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변화시킬수는 없습니다. 변화시키는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는 자들은 모든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자들입니다.
안티들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으로 행하실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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