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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은혜 로운 말씀

구원의 확신이 없으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곧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은 내게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에게 있는 것입니다. 

곧 구원의 확신을 갖는것은  내가 갖는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맡기는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의 욕구는 간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사모하고  그것을 받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구원의 확신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나  하나님은 부족한것이 없으니 나도 부족해서는 안된다거나...

 

아버지는 선하고  죄가 없으시니  나도 죄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들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그 틀에 나를 맞추다보니 결국은  나는 아버지를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고  오직 죄만 지을줄 알고  부족한것 투성이고 능력은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결국 나는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거나 아니면 자녀가 될 자격이 없다거나 하는 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기도 잘하고 찬양을 잘하는 분들을 보면서   저들은 참 구원받은 자녀들 같이 보이고 나는 기도도 못하고 신앙생활도 못하고 확신도 없고 찬양도 없고  찌질이 가난하고 능력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부족하고 못났고  참으로  내 자신을 볼때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나를 하나님이 사랑이나 할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것이 맞기는 맞는걸까? 하고 고민할때가 우리에게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늘 비교하고  판단하고  실망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또 불안해 하기가 일쑤입니다.

  

과연  우리가  죄를 짓지 않을수 없거나   걱정을 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거나  근심이 떠나지 않을때 자녀는 자녀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정말 내 뜻대로 되지 않을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한숨을 쉬고 살고 있습니까!

 

이런 모습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가면 정말 부끄럽고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의 모습은 아니라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좌석 맨 끝에서  쥐죽은듯이 조용히 예배드리고  교회를 떠날때가 한두번이 아닐때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러주셨고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본다고 하는 자들을 위해서 오지 않으셨고  보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곧 본다고 하는 자들에게는 보지 못하게 하실것이고  보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보게 하여 줄것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다고 하는 자들  의롭다고 하는 자들을 위해서 오시지 않으셨고   죄가 있다고 하는 자들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을 위해서 이땅에 오셨다는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연약함을 느끼고  또 죄인임을 느끼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볼때  신앙이 출중하고 성경도 많이 알고 있고  기도도 잘하고  하나님을 잘섬기는 분들처럼 보이는 자들도

그 마음에는 늘 걱정과 근심이  떠나지 않고  한숨이 그칠날이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목사님들은 하나님이 불러 세운 종들처럼 보입니다.  그들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엄청날것이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상 목사님의 처지에 들어가보면  그렇지 않다는것을 아실것입니다.

 

담임목사가 아닌 부목사님들은  1년마다  계약을 다시 새롭게 해야하는  1년짜리  비정규직에 불과한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언제나 불안하고  걱정근심이 떠나지 않는다는것을 아십니까?   교회에서 일하고 봉사하고 가정을 꾸려가니 걱정이 없을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일반 직장생활하는 분들보다  더 많은 고민과 걱정과 근심들이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삶이 달라질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과연 그럴까요?  

구원의 확신과  삶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것을  아셔야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도  쌀이 떨어지면 배고픈것은 인간인이상 어쩔수 없는 문제입니다.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  땀과 피를 흘려가며  일을 해야하고  그렇게  가족들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헌신하며 살아가야 하는것이 오늘날 우리 이땅에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내일을 걱정하며  자녀의 앞날을 걱정하고  미래를 위해서 저축을 하고  보험을 드는것은  믿는 자라고 해서  벗어날수 있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런것들을 하는것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삶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들이야 말로  정말 남보다 더 미래를 준비해야하고  또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야하고  피땀을 흘려가며 일해야 하는것입니다.  이것이 이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마땅히 행할 삶의 모습입니다. 

 

이 삶의 고난에서  구원의 확신이 주는 것은   평안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이 주신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통장에 잔고가 넘쳐나고   가족이 건강하고  삶이 윤택하고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고  좋은 차를 끌고 다니며  여유있는  여가생활을 하고  미래에 근심과 걱정이 없는 삶을 사는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꿈꿔야 할  삶의 모습은 아닐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이  이런 평안이라면  하나님이 주신 평안은 어떤 평안은 이런 평안이 아니겠지요.

 

구원의 확신이 주는 삶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곧 오늘 힘들게 일해서  밥을 먹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이 삶에서  주님이 함께하고 있다는것을 깨닫는것이 바로  평안한 삶인것입니다.  

 

내일 걱정을 하지 않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삶이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삶의 평안인것입니다.  그것은 이땅의 삶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직장을 좋은 직장을 꿈꾸며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이 계실것입니다.   판사를 꿈꾸고 변호사를 꿈꾸고 의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직장이 과연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죄인이 없다면  판사도  변호사도 필요없는 세상입니다.  아픈자가 없다면  의사가 필요없는 세상이 되겠지요.   이땅에서만 누릴수 있는  죄인들과 병자들이 득실대는 이땅에서  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을 풍요롭게 할수 있는 직장......이런 직장을 꿈꾸는 분들이 계시다면  더 깊이 생각을 해야 할것입니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판사를 꿈꾼다면  좋은 꿈입니다.   아픈 자들의  마음까지 달래줄수 있는 의사를 꿈꾼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쌀을 생산하고  소를 키우는  농부들도  참으로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이땅에서 내가 무엇을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거나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판단하는것이야 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오늘 내가 종이를 주워  입에 풀칠밖에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는 자라면  행복할수 있을것입니다. 

오늘 내가 번돈 때문에  담을 더 높이 쌓고  이웃과  대화를 단절해야하고  의심하고  만나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는 자라면 참으로 불행한 사람일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구원받은 자야!  나는 구원받지 못한것같아? 라고 할때  그 판단이  내 형편과 처지  내 모습에서 발견해야 하는것이라면  얼마나 불행한 삶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은 분이십니다.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지식으로도 판단하지 않으시며  재물로다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것을  깨닫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오히려 잊고 살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날마다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는것처럼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신다는 사실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그것을  날마다 되새기며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늘 변함없이 내 마음에 함께 항상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늘 마음에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이것을  하나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곧  내가 아내와 하나되었다는 것은   아내와 마음을 같이하고  늘 아내를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된것은  늘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된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신가?  고민하시는 성도님들은 오히려  그 고민이야 말로  참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한순간도   내 자녀인것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날마다 걱정하고  안타까워하고  근심하며 자녀를 생각하며 기도하고   늘 확인하고  그렇게  부모님들은 자녀를 한시라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부모의 근심과 걱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할때가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정말 내 부모인지조차 의심하고 살아가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의심한다고 해서  부모가 부모가 아닌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여전히 부모의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늘  우리를 생각하고  우리가  잘못될까봐  늘 우리를 챙겨주시고  돌봐주시고  바른길로 가게끔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채찔질도 하시고  훈계도하시고 칭찬도 하면서 우리를 늘 돌보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아버지의 관심을 오히려  부담스러워하거나   아버지의 훈계와 채찍을 오히려  반감을 가질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많은걸 주시면 좋겠는데  안주시면  부모가 아니라고 까지 판단할때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아니라고 한다고해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포기하실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

 

구원의 확신이 없으십니까?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만드시고 창조하신 분이라는 사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그 아들을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믿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는 결단코 잃지 않을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구원은  내가 원해서 받은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