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찾아왔는데 제 블로그는 참 한산했지요..
저를 찾아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좋은글로 답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글을 쓰고 은혜로운 말씀으로 답답한 마음을 뚤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제 마음도 답답하니....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무슨 종교입니까?
우리는 믿음이라는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고 또 너무 쉽게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운것이 믿음이라고 할수 있지만....
버스가 폭발한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해서 버스를 타지 못할것같았지만 아니었지요. 여전히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기차가 탈선을 했습니다. 기차를 타지 못할것같습니까? 아니요. 그래도 타고 다닙니다. 비행기가 추락합니다. 그래도 비행기를 안탈수 없는것이 우리의 삶이지요.
믿음으로? 아니 솔직히 믿고 탄다는 마음을 가지면 절대로 버스도 기차도 비행기도 택시도 탈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을수 있는것은 이땅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걸어다닐수도 없습니다.
데스티네이션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우연히 사고를 미리 경험한 한 사람으로 인해서 여러사람들이 위기를 모면하고 목숨을 구하지만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던것이라서 죽음의 순서대로 죽음이 다가오고 죽어가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 두번째편에서 첫번째 편에서 살아남은 한 여자가 밀폐된 공간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던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은 결국 아무것도 믿을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럴수 밖에 없었던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결국 다른 사람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갖혀있던 삶이 행복할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것입니다. 그래서 죽을줄 알면서도 그곳을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거룩하게 맞아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어느곳에서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안전한 곳은 한군대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땅을 살아가는 것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믿을수 없음으로 포기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지만 그 죽음을 넉넉히 받아들일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죽음앞에서 우리가 두려움을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1초의 미래도 알지 못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타고 기차를 탑니다. 이는 믿음이 아니라 확률로 죽을 확률이 적기 때문에 안심하고 타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유일하게 믿을수 있는 완벽히 안전하고 순도 100% 안전한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 일까요?
바로 하나님 안에서 완벽히 안전합니다. 하나님안에 있으면 절대로 불안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는 확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단 1%의 불안요소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는자가 있고 믿지 않는자들이 존재할뿐 곧 100% 신뢰하는 사람과 0%신뢰하는 사람 두 부류만 존재할 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이 적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믿음이 적다고 말합니다. 과연 이 말이 옳을까요? 옳지 않습니다. 이는 믿음이 적은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것입니다.
베드로가 바다에 빠진것은 믿지 않았기 때문이지 믿음이 적어서 그런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적다는것은 의심한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100% 완전히 안전한 곳인가? 하는 믿음이 적은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100%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인생 이 삶에서 우리가 죽지 않는다면 아마 하나님을 100% 신뢰할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부족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안전하지 않으니 하나님을 믿는 믿음또한 완벽해질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완벽한 믿음을 요구할수도 없는 것일수 있습니다. 우리 편에서 하나님을 바라볼때는 그렇습니다. 우리는 100% 완전한 믿음을 갖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할것입니다.
하나님편에서 볼때는 어떨까요? 하나님편에서 볼때 우리는 100% 완벽히 안전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라고 격려해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것을 안다면 하나님이 나를 그리스도안에서 구원하신것을 믿는다면 내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얻은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돌아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편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것입니다.
성경에 믿음있다고 칭찬받은 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들은 예수님앞에 나아올때 자기 자신의 믿음을 들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 맡기러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첫번째 기적도 시키는대로 하라고 하는 마리아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실것을 마리아는 믿었기에 예수님께 맡긴것입니다.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이 고침을 받은것도 예수님이 하실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야이로의 딸이 살아난것도 예수님이 하실것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맡긴것입니다. 자기 믿음으로 나아간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난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것으로 우리의 믿음은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못하신다고 생각하는것이 바로 불신인것입니다. 하나님은 못하시는것이 아니라 안하시는것이라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의 맹점이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아는것에 그치는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부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하나님으로 계신다 세분은 각각 위격이 다르시만 한분 본체는 하나이시다. 이렇게 말입니다. 왜? 성경은 이것을 강조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계신 분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구원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강조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 구원과 관련된 아주 필요한 하나님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살아계신자의 하나님이라는것입니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요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는 죽은자들이 가는곳이 아니라 산자들이 가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기전에 이땅의 모든 사람들은 다시 다 부활할것입니다. 죽은자들도 일어서고 살아있는자들도 변화할것입니다. 지옥가있는 자들도 다시 부활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텐데....지금 지옥에 가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다 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때가 오면 다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영원한 낙원에 들어갈 자들과 영원한 심판을 받을 자들이 구별될것입니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시니 둘째 사망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할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들만이 오직 하나님과 함께 할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기독교는 죽은자의 종교가 아니라 산자의 종교라는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애굽종되었던 땅에서 인도하여낸 하나님이십니다. 곧 우리 이방인들도 죄가운데서 구원하여 죄의 종되었던 몸에서 구원하여 낸 하나님이신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북방땅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신것처럼 우리 이방인들도 온 사방에서 모아 자기 땅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죽은자들과 하지 않으셨고 오직 산자와 약속했습니다. 아브라함과는 그 아들을 줄것을 약속하셨고 약속대로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삭에게는 야곱을 축복하실것을 약속하셨고 약속대로 야곱이 장자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는 민족을 이룰것을 약속한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켜 야곱의 열두아들로 민족을 이루게 하셨고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칭하시고 그 백성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얻게 하셨던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 백성이 애굽 곧 죄의 종으로 죽음의 삶을 살고 있었을때 그들을 인도하여 아브라함이 살던 본향 곧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 되신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들은 죽은자들로 장사치루게 하시고 산자는 하나님을 따르게 했습니다.
곧 우리의 믿음은 산 믿음이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이라는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곧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죽은자들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이 없음으로 행동이 없습니다. 행동이 없음으로 열매가 있을수 없습니다.
살아있을때 열매가 있는것입니다. 열매없는 가지를 찍으라는것도 바로 살아있는 믿음을 요구하는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살아있는 믿음이 있다고 할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믿음을 증거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분이라는것을 증거하는것으로 우리의 믿음은 살아있는것이 되는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안에 있어야 참된 산믿음을 가진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서 나오는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할때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것은 그 안에서 생수의 강이 마르지 않고 흘러나옴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안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가지게된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샘물을 가진자들이 바로 기독교인들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생명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것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샘물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가진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솟아나는 생명의 샘물을 가진자들로서 목마른 자들에게 생명의 샘물을 마시게 해야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샘물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땅에 생명을 주는 샘물이 되고 있습니까?
제가 지금 드리고자 하는 질문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행위는 우리가 착한 행실을 하여 살아있는 믿음을 증거하라고 하는것이 아닙니다. 우리안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곧 그리스도가 우리안에 있으면 우리는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을 가진자들임으로 자연스럽게 살아있는 자들로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죽은 믿음을 가진 죽은 행실을 할수 없는것입니다.
죽은 행실은 사람을 죽이는 행실을 뜻합니다. 생명과 무관한 행실을 뜻하는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바라는 행실 빛의 삶이 아니라 어둠가운데서 행하는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착한 행실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자랑이 될때는 어둠가운데 행하는것과 같기에 이것을 착하다 하지 않습니다. 선한 행실을 할때 이 선하다고 하는 판단은 우리가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임으로 우리의 모든 행실은 그리스도가 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명의 샘물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향해서 생수를 부어 목마르지 않게 하는것을 의미하는것입니다.
지금 세상이 혼탁한 이유는 우리가 진정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것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니까요. 그러나 그것보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하시는 그리스도안에 있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죽음의 그늘로 가득차 있습니다.
강이죽고 바다가 죽고 새들이 죽고 물고기가 죽습니다. 그리고 짐승들이 죽고 이젠 사람들이 죽어갈 때가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한 이유가 있을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사람들에게 생수의 강이 되어야합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세상사람들에게 맛보게 해야 하는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세요!!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고 전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안에서 흘러넘치는 생수의 강으로 우리안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로 목마른자들에게 갈증을 해소하고 시원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가라는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이후부터 나오는 빛의 자녀로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땅에 공의가 바로서고 거짓을 배격하며 정직과 정의가 바로서게 하라는 것입니다. 더러움에 자기를 버려두지 않고 깨끗이 씻어 정결케 하고 더러움을 멀리하며 거룩하게 하여 세상사람들에게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세요! 라고 백번 말하는것보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한잔 주는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 물한잔에 예수그리스도의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이 되도록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이웃을 섬기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죽어가는 나라에서 이 죽음을 부르는 생명이 없는 기독교의 모습을 하루속히 벗어버리고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창하게 광화문에서 일인시위하고 청와대로 쫓아가라는 것이아닙니다. 죽음의 그늘아래 있는 이땅의 가련한 백성들을 향해서 우리는 희망이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빛이 되어야하고 생명이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아닌 산자들이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절망이 아닌 희망을 주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이것이 살아계신 자의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며 삶이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요즘 정말 마음이 아프고 무겁습니다. 이땅의 기독교가 생명을 주는 기독교가 아니라 죽음을 부르고 있는 기독교가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김장로도 죽음을 불러 이땅에 죽음이 가득하게 했는데 이장로도 그 뒤를 따라가니........제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더이상 이 대한민국 기독교가 죽음의 종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죽은자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산자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하루 하루 힘들고 어렵겠지만.......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희망이 되고 빛이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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