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혜로운말씀/은혜 로운 말씀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적 논증은 사실상 쓰잘데 없는 짓이지요.

제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먼저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우리가 판단할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곧 인간이 하나님은 삼위일체다! 라고 말할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는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우리에게 알리셨고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은 모두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창조주이시며 거룩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피조물이 아닌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가  구약에서도 예수그리스도로 존재했느냐?는 문제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구약에서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구약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뭐라고 불렀습니까?

 

구약에서 예수그리스도는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옵니다.  곧  예수그리스도께서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구약에서 증거하고 있는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는  몸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영으로 나타나신 분이 아닙니다.   몸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 몸이 우리와 다른 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하나님이 영이라고 말할때의 하나님은  영원하신 성부하나님을 의미하는것입니다.  성부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습니다.  빛으로 나타나신 분이라서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을 볼수 없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을 본 자는 죽음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하나님을 볼수 있는 자는 죄가 없는 자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만나주는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였습니다.  구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의심스럽다면?  제가  성경적 근거를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창세기 2장 7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면?  흙을 손으로 만졌다는 것인데  손으로 만진다는것은 영입니까? 육입니까?  몸을 가지고 있어야지만 흙을 만질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곧 여호와 하나님은 몸을 가진 분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 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 하나를  취해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갈빗대를 뽑아내는데? 그냥? 말로? 영으로?  아니지요!  하나님은 분명히 손을 가지고 계셨고 손을 쓰셨다는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는것입니다. 곧 몸을 가진 분으로 인간에게 나타나신 분이십니다.  곧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나신 예수그리스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님으로 계신 분이라는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죄인은 인간을 만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만나주신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때  아담과 하와를 찾은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고 양을 잡고 옷을 지어 아담과 하와에게 입히신 분도  예수그리스도이신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만나신 분도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창세기 18장 1절~이후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중략)  (13절)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죄인인 아브라함을 만나셨고 그리고  아브라함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케 하시며  롯을 구하셨습니다.

 

또한  야곱을 만나신 분도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창세기 32장  30절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만약 성부하나님 빛되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야곱이 만났다면?  야곱은 바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야곱을 만나주셨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렇듯 구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나타나셔서  인간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고 그 계획을 또한 알려주셨습니다.   모세에게 말씀으로 나타나  스스로 계신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약에서 어떤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는지를 말씀드리는것입니다.

 

그러면?  성부하나님께서는 안계셨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창세기 1장에서 우리는 바로 알수 있습니다.

 

인간이 창조 될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자서 창조하신것이 아니라   삼위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영과 육으로 창조된것입니다.  우리의 육은  영원한 몸을 입고 창조된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창조된 것은 한계를 가진 몸이었습니다.  그것은  생명나무 열매 없이는 생명을 유지할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생명나무 열매는 인간이 영원히 살수 있는 생명을 부여하는 열매였던 것입니다.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한 인간은 결국 죽음으로 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죄를 지은 인간에게 하나님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한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록 죽지만  다시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을 입을것입니다.  그 몸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몸입니다.   곧 천국은 물질의 세계라는것입니다.  천국은 영이가는 곳이 아니라  영과 육이 함께 가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곧 구원은 영육간에 얻게되는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부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빛이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볼수 있는 인간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게 하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수 있는것은  성령하나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가능한것입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거듭나지 못할것이고 예수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지 못할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역활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정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나타남과 표현이 그렇다는것이지 하나님의 본성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로  스스로 계신 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산자의 하나님,  자기 백성을 죄악의 땅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  북방땅 흩어진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표현한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럼 제일 궁금한 삼위일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닙니다.  스스로 계신분이십니다.  곧  처음이요 끝인 분이십니다.  시작도 없으시고  끝도 없으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곧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은 독립적인 분이십니다.  곧  성부가 성자가 되지 않고  성자가 성령이 되지 않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하나님은  독립된 위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기서 위격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인간에게는 인격이 있지만  창조주 하나님께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격이라고 표현하는것입니다.

 

각각의 위격을 가지고 계시지만  왜 세분이 하나라고 표현할까요?  이것이 신비입니다.  곧 위격에 있어서는  각각의 위격을 가지고 계시지만 본성에 있어서  곧 하나님이라는 본성 거룩하시고 죄가 없으시며  스스로 계신분이시며 피조물이 아니라는 것에 있어서  곧 하나님이라는 본성에 있어서는 같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곧 부부가   남녀 각각 따로 있지만  부부를 둘이라고하지 않고 하나라고 하는것이  신비인것처럼 하나님이 하나이신것이 바로 하나님을 특징하는 신비라는것입니다.   이것을 알려고 하는것이 과연 인간이 해야할 일인가? 

 

그것은 성경에서 우리에게 해답을 주었습니다.

 

곧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라는 것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사야 9장 6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이사야선지자의 표현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표현한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표현한것은 곧  예수그리스도  곧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나님을 표현하기를 기묘자라!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신비하면 기묘자라고 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비로운 분이시고 기묘하신 분이십니다.  삼위일체를 알려고 하는것이 중요한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그것을 아는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물중 가장 아름답게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것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우리를 얼마나 기뻐하고 계시는 지를 아는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동행하며 우리와 소통하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며  모든 인류의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아버지가 되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인간이 훼손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된 인간은 하나님을 평가하고  하나님을  맘대로 잣대질 하지만 그것마져 하나님이 용납하시는 그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언제쯤?  인간은 깨달을까요?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삼으려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현 시대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사랑을 닮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삼으려고 하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것이 아니라  우상을 숭배하는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여 세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의 유익을 삼으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된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자들의 귀함을 표현하기를  솔로몬의 부귀 영화보도  들에핀 꽃 한송이가 더 영화롭다고 한것  그것은  하나님이 돌보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부귀 영화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것을 다 주실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하나님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소통하는것이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것이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일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