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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은혜 로운 말씀

복음이 언약에서 벗어날수 없는 이유는 언약이 뿌리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장 16절 ~ 27절 말씀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에베소서 3장 6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뿌리가 거룩한즉 그 가지도 거룩하다는 말의 의미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의 뿌리는 바로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약속한 언약입니다.   곧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영원한 기업을 유업으로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이 가나안일경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영원한 천국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뿌리가 나오고 가지가 나올까요.  뿌리가 뭐고 가지는 뭘까요?   바로 이점이  우리가 깨달아야할 복음의 비밀입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입니다.  그가 열국의 아버지가 될수 있는 이유는 그가 바로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을때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됩니다.  그것은 그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 조상이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바로 뿌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그것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그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이 약속있는 언약입니다.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될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이방인은 믿음으로 섰고  저들은 믿지 않음으로 꺾이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복음의 기본 진리로 돌아갑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아서 믿었습니까?  아니면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불러서 믿게 하셨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를 불렀지만 아브라함은 그가 하나님인지 몰랐습니다.  이삭을 바칠때까지도 그는 솔직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몰랐을 것입니다.  그가 아는것은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했고 그 약속을 이루겠다는것을 믿었다는것 뿐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을 주시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것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한것에 대해서 믿음으로 응답했고 하나님은 그것에 대해서 의롭다고 해주었습니다.   곧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믿게 하신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첨부터 믿은것이 아닙니다.   이삭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삭을 낳을때까지도 솔직히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에 대해서도 솔직히 믿음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후손이 없는데? 민족을 이루다니요?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한 약속에 대해서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지 못함으로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가지도 못했습니다. 곧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아브라함은 맹세하지 못한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맹세하셨고 그것으로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신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게 되는 믿음까지 자라게 된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아와서 믿었다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그로 하나님을 믿게하고  그를 통해서 그의 후손을 통해서 열국에 복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한것입니다.  그 후손은  가까이는 이삭을 뜻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보내실 약속의 자손 곧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의 후손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보내실것을 약속하셨고  그 그리스도를 통해서 열국이 복을 얻게하실것이라는 약속을 한것입니다.   곧 이 약속이 바로  뿌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뿌리....그리고 이 뿌리에서 나온 가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감람나무 가지입니다.

 

참감람나무의 줄기는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줄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언약의 뿌리에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그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이 바로 한번에 모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참으로 깊고 오묘합니다.  그래서 이 안에 복음의 비밀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믿는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 됩니다.  갈라디아서에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뿌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뿌리가 바로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한 언약입니다.  이것이 조상과의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이 뿌리에서 나온  예수그리스도와  그 줄기에 붙어있는 참감람나무의 가지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곧  뿌리가 거룩하니  가지도 거룩한것입니다.  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룩하게 사는 방법으로서  예수그리스도에게 붙어있어야 하는것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의미입니다.  곧  속죄제사를 통한  거룩하게 되는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게될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속죄제사가 아니라  실제로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죄를 사함받는 은혜를 입게 되는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은혜를 입지 않은 자들은  율법을  지킴으로서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법을 바꾸어 버린것입니다.  율법은 거룩한 백성이 거룩하게 살아가야할 규칙입니다.  곧  법입니다.  이를 범하면  죄인이 되는것이고  죄인이 되면  죄를 용서받아야하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죄제사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제물을 사고 팔았고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은 율법을 가지고  기득권을  누렸습니다.  곧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핵심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율법의 의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는것이 율법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는  이 율법을  가지고  믿음의 법을 폐하고  행위의 법을 세워버렸습니다.  인간은 절대로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수 없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을 인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바로 잘린 참감람나무의 가지들인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거짓으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잘린 가지들위에  이방인들이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이방인은 본래 돌감람나무입니다.  이는  본성이  본래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언약과 상관없고 할례받지 못한 자들이고  그리스도 밖에 있던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줄기에 붙어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안에 있었지만 이방인은  돌감람나무가지들이기 때문에 본성자체가 본래 악한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소속이었다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잡힌 자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그를 잘라 예수그리스도의 줄기에 접붙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이방인들도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양식을 먹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그리스도라는 줄기에  본래 이스라엘이라는 가지가 존재했고  그리고 돌감람나무의 가지가 접붙임을 받게되었으니 이 접붙임을 받은 자들도  이제  참감람나무의 가지가 된것입니다.   참감람나무의 가지가 되었다고해서  본성이 바뀐것은 아닙니다.  본성 곧 이방인이라는 것은  그대로 가져가지만  곧 이스라엘 백성이 된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된 자들이라는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은  돌감람나무에서  참감람나무의 가지로 접붙임을 받아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게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언약의 뿌리에서 올라오는 양식입니다.  곧 이것이 구원이고 구원이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3장 6절에서  이방인이  약속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참감람나무의 가지에 접붙임을 받고 싶어서 받게되었을까요?   그것은 농부가 하는 일입니다.  곧 하나님이 나를 돌감람나무에서 잘라서  참감람나무의 가지에 접붙여준것입니다.  곧  구원은 내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혜를 입은 자들이  본래 가지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린것을 보고  고소해하고 웃고  조롱할수 있을까요?  그시대때는 유대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죽인자들이라고 해서  온갖 학대와 핍박을 이방인 신도들에게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1945년 독립하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이 미워하고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히틀러도  유대인들을 죽이기 위해서 천주교에서 지령을 받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여기 로마서 11장에서는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경멸하는 것을 바울이 보고  이렇게  설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방인인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없던 자들을  본성을 어기면서 까지  그리스도에게 접붙여 주셨는데  고작 하는 말이  유대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못밖았다고 하는 조롱만 하고 있다면......하나님이 과연 마음이 기쁠까요?

 

이스라엘자손의 가지중에 일부가 잘린것이지 다 잘린것이 아닙니다.  곧 그 일부를 통해서  이방인에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게 하시고 계신것입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을 조롱하고 깔보고  업신여기는것이  그때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은 유대인없이는 구원이 없다는것을 알아야합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난다고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22절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는것이라고 하는것이 바로  언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언약안에 있는 그리스도  그리고  인간과 언약을 맺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에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보냄을 받았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언하기 위해서 오셨지만  결국 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버리자  예수그리스도는 복음으로  온땅에  이방인들을 구원하게 하십니다.   곧 복음은  이방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이 기쁜  소식인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무엇으로?  구원을 얻게될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가지에 남겨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 감람나무의 가지들은?   유대인들은  조상들과의 약속에 의해서 구원을 얻게되는것입니다.  이 약속이 없으면 구원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예수그리스도는  바로  언약의 뿌레에서 나온 분이라는것을 알아야합니다.  

 

 

정리를 하면  유대인은  아브라함의 언약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입니다.  곧 언약안에 있던 자들이었지만 율법으로 말미암아 곧 죄를 지음으로  율법을 범함으로 그들이  잘리게 된것입니다.  언약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저주입니다.  이 저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으로 보지 않고 정치적인 메시아 곧 왕으로 오실 분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때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던것입니다.  제자들 조차도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자리 다툼을 하고 있는 것을 볼때  그들도 예수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셨다고 생각했던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두가지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예수그리스도와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  예수님의 초림은  십자가를 지실분으로  그리고 재림은  심판주로 왕으로 오실분으로 예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지시러 오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알기는 알았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경건하고 참된 유대인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언약에 의해서 유대땅에 오셨듯이  왕으로 재림하실때에도 마찬가지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려고 자기땅에 재림하실것입니다.  그때는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문이 닫힐때 곧 충만한 숫자의 이방인이 구원을 얻은후에 이루어질 일입니다.

 

이방인은  본래 돌감람나무입니다. 이는 언약의 뿌리안에 있는것이 아니라  언약과 전혀 다른  본성이 다른 나무의 가지였던 것입니다.  곧 언약 밖에 있던 자들이었고 저주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참감람나무 가지에 접붙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할수 없는것을 하나님이 해주신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는  이방인이 참감람나무의 진액을 먹고 생명을 얻게 하신것입니다.  이 참감람나무의 진액은 언약의 뿌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곧  이방인의 구원은  언약에 참예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아들이 되는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25절 이하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중략....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여기서 이면적 유대인과  표면적 유대인이 나오는데  여기서의 이면적 유대인은  참감람나무의 가지 곧 잘리지 않은 가지 원가지를 의미하고  표면적 유대인은  율법을 범하여 잘린가지 곧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을 의미하는것이지  이방인이 믿음으로 유대인이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를 두고  이방인이 이면적 유대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것을 영적인 해석이라고 해서 많은 분들이 이런식으로 해석하는데  성경은 영으로 기록된것이기는 하지만 또한  문자로 기록된것입니다.  너무 많이 나가서 해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지만  마음의 할례를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오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은  믿음으로  유대인이 된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유대인과 하나된것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자꾸 많은 분들이  이방인이 믿음으로  유대인으로 새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마지막때 새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의 한 백성이 될때는  모든 사람이 다 하나가 될것이기 때문에  그때를 말함이지......

 

지금 변화되기 이전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는 이런 구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성령의 사역이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담을 허시고 둘을 하나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원수되었던 자들을 하나로 만드신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우리 이방인들은 율법에 대해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율법을 지켜야 하느니?  지키지 말아야 하느니? 하는 논란은 우리가 할 필요가 없는 논란입니다.    율법은 할례를 받은 언약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이 율법을 가지고 논쟁을 해야하는 민족은 유대인 뿐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자들임으로  믿음안에 있어야합니다.  믿는 자들이 왜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십니까?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무할례자들이 되었다가  믿음으로  다시 언약안에 들어갔다면  그 믿음으로 살아야지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죽이는 법이지 살리는 법이 아닙니다. 

 

오직 살리는 법은 하나님의 성령의 법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법입니다.  이것을 세롭게 새운 이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고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옛언약 율법을 폐히고  새언약의 중보자가 되신것입니다.  여기서 폐했다고 할때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율법을 완성시키심으로  율법을 더이상 지키지 않아도 되게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곧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이미 율법을 온전히 지킨자들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때에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일이 없다는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기억하여  죄에 대해서 추궁하는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지키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완성시키신것이고 우리는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켜 행해야할 삶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율법의 내용인  본질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폐했다고 해서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율법의 본질적 내용은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니 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 삶의  원칙이 바로 사랑인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으로 행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들은 율법의 본질인 사랑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껍떼기인  율법의 문자를 지키려고만 애쓰는 것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안에 있는 자들이 믿음을 버리고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하라는 말씀이 십계명에 없음에도  십일조로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 자들이 있고  이것이 율법의 전부인것처럼 말하는 목자들이 있습니다.

 

아주 교회가 타락해가는 이유중에 하나입니다.  지키려면  율법을 다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다 지키지 못할바에?  특정한것 하나만 가지고 지키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떠들어 댑니까?    다 지키지 못할거면  그 내용을 깨닫고 그대로 살려고 애쓰면 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웃에게 바라는것을 내가 이웃에게 행하는 삶이  바로  기독교인의 삶이요   그렇게 사는 삶이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언약안에 참예하게 하시고  그 생명의 진액을 먹게하신 이유입니다.  열매를 맺어야지요.  

 

물론 돌감람나무의 가지에서는 돌감람나무의 열매가 맺일것입니다. 이것은 비유이니  여기서의 열매는  본질의 열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곧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되었다면  그냥 열매를 맺기만 해도 좋은 열매를 맺는것입니다.  본질이 좋은 나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쁜나무라면  아무리 열매를 맺어도 나쁜열매만 맺을수 밖에 없습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좋은 열매를 맺게될것입니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