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24가지 질문과 나의 생각
1.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들어 내 보이지 않는가?
신이 자기의 존재를 밝히지 않는 이유는 밝히면 인간이 살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신앞에서 결코 설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신은 완전하다 거룩하다 그런데 완전하지 않고 거룩하지 않는 인간이 어떻게 신을 볼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이 신을 보려면 완전해야 하고 거룩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신을 볼수 없는것이다.
신은 언제나 우리에게 나타나신다. 단지 우리의 거룩하지 못함이 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은 언제나 우리와함께 있다. 쉽게 설명하면 우리가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고 있을때에도 늘 부모님과 마음이 함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곁에 있지 않다고 해서 하나님이 안계신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에 함께 있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는것을 인정하면 하나님과 언제나 함께 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계시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무리 옆에 있어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부모님은 옆에 계시든 안계시든 언제나 부모로서 존재하는 분이신것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언제나 우리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시고 우리가 다른 이들의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들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옆에 있는다고 해도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본자가 하나님을 보았다고 했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심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과 함께있었는데...
어떤이는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알고 믿고 순종한 자들이 있는 반면 예수그리스도를 본자들 그로 말미암아 병을 나음받은자들 조차도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은 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존재가 인간에 의해서 증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존재한다고 하면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존재하지 않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는 신이 될수 없는것이다.
하나님이 신이기 때문에 인간의 존재와 인간의 사고와 무관하게 그는 언제나 존재하며 그것을 인지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알아볼수 있는 것이다.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우주는 우리 안에도 있다. 신이 우주를 창조한것은 바로 인간을 위해서 창조한것이다. 하늘의 태양과 달 그리고 북극성과 수없이 많은 별들......
그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곧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해둔것이다. 만약에 지구가 없다면 인간이 존재할 땅이 없을것이고 땅이 없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존재할수 없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것을 증명하는것은 바로 내가 존재하는 것으로 해답을 찾을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나의 존재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창조의 증거가 된다.
여기서 나라고 하는것은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을 포함하는 것이다. 곧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은 존재할 것이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존재하는한 하나님이 창조주라는것은 증명될수 있는 것이다.
곧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창조하시면서 그들이 살게 하기 위해서 만든것이 온 세상 만물이니 아담과 하와의 존재가 바로 만물의 존재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만물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준 선물이다.
숨을 쉴수있는 공기 곡식을 얻을수 있는 땅 맛있는것을 먹을수 있는 과일나무들 그리고 기름진 고기들을 얻을수 있는 짐승들 물을 다스리는 별 곡식과 생명을 다스리는 햇빛....
이 모든것이 바로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인간의 존재가 없이 이런것들만 존재한다면 그것들이 존재가치가 있을까? 과일나무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공기의 존재는? 짐승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라는 고귀한 하나님의 창조물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 모든것을 다 인간에게 주었다.
그러므로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것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나, 너, 우리, 인간의 존재가 바로 하나님이 창조주라는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 아닌가?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 아니다. 배움으로 인간은 진보한것이지 진화한것이 아니다. 아담은 창조때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지식을 물려받았다.
그는 하나님이 만들어 데리고 온 창조물들에게 그에 맞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짓는것을 본 하나님이 아담을 재우시고 하와를 만들어 돕는 베필을 삼으셨다.
이것은 인간이 이미 창조될때부터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것을 의미한다.
신은 이렇게 인간을 완전한 존재로 창조했다. 그리고 인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 배움이 늘고 배움이 글자화되면서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이 후대에 전해지면서 후손들은 짦은시간안에 선조들의 가르침과 지혜와 지식을 습득할수 있게 된것이다.
그런 배움과 지식의 창고들이 인간에게 각자에게 맞는 능력이 주어지고 그것이 분업하되면서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변화하게 된것이다.
이것을 진화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생물학적으로도 불가능하며 이런 진화론은 이미 가설일뿐 진실이 될수 없다는것이 밝혀졌다.
진화론은 허구이고 거짓이 된것이다. 학계로부터 진화론은 이미 학문으로서 퇴출되었다.
그래서 서구의 과학자들은 이제 진화론을 연구하지 않고 우주 전래설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또한 하나님이 창조했다는것을 부정하려고 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기 위해서 끝까지 창조론을 거부하고 진화론이니 우주 전래설이니 우주인이 씨를 퍼트렸느니 하는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생물이 진화할수 없고 돌연변이로 다른 생명체로 바뀔수가 없으니 이제는 창조론만이 진실이 되어 버렸다.
이것을 인정하자니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해야하고 인정하지 않자니 해답이 없으니 우주전래설을 끝까지 가져오려는 것이다.
만약 생물의 진화가 진실이고 진리라면 지금 인간과 비슷한 부류의 고등생명체가 진화되어 있어야 한다. 아니면 인간도 지금보다 더 진화하여 물속에서도 숨쉬고 하늘을 날아다닐수 있는 그런 새로운 생명체로 탈바꿈되어야 할것이다. 인간이 진화의 최상류층에 있어서 더이상의 진화가 없다?는 말은 거짓이다.
만약 진화론이 진실이라면 진화론은 끊이 없이 진화하는 것임으로 인간도 분명 지금보다 더 진보된 형태의 생명체로 바뀌어 있어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과연 해답을 줄수 있는 진화론자들이 존재하는가?
4.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창조가 위대하다는것을 증명하는 것이 될수 밖에 없다. 쉽게 말해서 분자가 있고 원자가 있다. 그리고 원자에는 중성자가 있고 중성자에는 중성미자가 있다. 그리고 중성미자밑에 또 더 작은 창조물이 존재한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창조물을 완전히 발견할수는 없는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컴퓨터 LCD, LED, 빛의 삼원색 색의 사원색 유기발광 다이오드(아몰레드)라고 불리는 모니터.....
생각해보자 우리가 이런것들을 만들어낸것인가? 찾아낸것인가? 만약 하나님이 지구안에 희토류라는 물질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우리가 지금 쓰고있는 컴퓨터나 IT산업이 과연 발달할수 있었을까?
지구에 존재하는 광물들....그리고 지구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약초들과 생명체들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들 현미경으로만 보는 것들 전자현미경으로 보는 존재들.....
그런데 이 지구조차도 우주에서 가장큰 별 VY캐니스메이져리스라는 별에서 볼때는 현미경으로 봐야할 만큼 작은 별이라는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보는 현미경에서 보이는 작은 물체안에 나노라고 불리는 나노보다 더 작은 존재가 또 있겠지...그 나노보다 더 작은 존재안에 60억인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있다고 생각해봐라......
과학의 발달은 신의 존재를 부인하게 되는것이 아니라 신의 위대한 창조를 찬양할수 밖에 없게 되는것이다.
그리고 생명은 신의 영역임으로 결코 합성할수 없다.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다고 할지라도 그 생명체의 살아있는 세포는 인간이 만들어낸 세포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세포안에서 만들어진 것일것이다.
인간은 결코 살아있는 세포하나를 창조할수 없는 존재다. 만약 만들어낼수 있다면 그 세포는 인류를 멸망시킬 최악의 병원균이 되고 말것이다. 인간은 결코 올바른 세포 병들지 않은 세포 문제가 없는 세포를 만들어낼수 없기 때문이다.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고통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불행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불행이나 고통이 없다면 행복이나 기쁨이라는것이 존재할수 없는것이다.
미워하지 않는다면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사랑이 존재하기 때문에 질투라는것이 존재하는 것임으로 인간이 살아가는동안 늘 고통과 기쁨 행복과 불행이 함께 하는것이다.
죽음이 없다면 인간은 신을 찾지 않을것이다. 본래 죽지 않게 창조된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신의 명령을 무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의 명령을 무시한것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것이다.
그것은 죽음을 통해서 신의 명령을 기억하게 하고 그 기억속에서 신을 찾게 하기 위함이다. 죽음이 없다면? 과연 신을 찾겠는가? 고통과 불행이 없다면 과연 인간이 기도하고 행복과 기쁨을 찾으려 할것인가?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예 ;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인간은 본래 악하다. 단지 그것을 법으로 제어할 뿐이다. 법이 제어하지 못하면 인간은 죄를 범하는것을 즐겨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인간은 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법이 없다면 인간을 통제할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히틀러나 스탈린같은 흉악범들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신은 율법을 만들었고 양심을 만들어 주셨다. 인간은 양심에 의해서 죄를 범하는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죄를 좋아하는 자들은 어둠을 좋아한다. 밝은곳에서는 죄를 범하지 못한다.
밝은곳에서 죄를 범하지 못하는것은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양심이 통제하지 못하는것은 법으로 통제하는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준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한 백성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거룩하게 한 자들일지라도 법이 없으면 분명히 범죄를 저질러도 그것이 범죄인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은 악인을 만든것이 아니다. 인간이 악해진것이다. 왜? 인간 본성은 본래 착하게 하나님이 창조했지만 하나님과 똑같아질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이 결국 인간을 악하게 만든것이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것은 악이다. 인간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자세를 갖는것보다 신의 영역을 인정하고 자기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한다.
인간의 교만은 자기가 인간이라는 존재라는것을 망각할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없이도 살수 있다는 오만함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수 없는 존재이다. 곧 인간은 다른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다른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속에 내가 있다는것을 깨달을때 그 인간은 신의 명령앞에 순종할수 있게 된다. 히틀러나 스탈린 그리고 흉악범들은 다른 인간의 존재 곧 나와 같은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범죄가 출발하는것이다.
인격을 가진 자들의 존재를 무시하고 오직 자기만이 모든것을 할수 있다는 착각속에 빠져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상대방을 죽여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바로 악을 잉태하고 범죄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악한 인간을 만든것이 아니다. 인간 스스로 자기를 신의 영역에 올려놨기 때문에 악해진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것은 살인이고 범죄이다.
인간을 죽일수 있는 존재는 오직 신에게만 있는 권리이다. 세상의 법에서 사형은 인간이 내릴수 있는 최고의 형벌이 아니다. 인간은 살인할수 있는 권리를 받은 자가 단 한사람도 없다. 그가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진 권력자이건 판사이건 마찬가지이다.
7.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성경에서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것이 죄가 되는 것이다. 그럼 순종하지 않는 말씀이라는것은 성경에 기록된 율법을 의미한다.
곧 율법에서 정의하는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범죄인것이다. 이 율법의 정의는 두개로 요약된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죄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에 대해서 죄를 묻지 않는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묻는 죄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죄를 묻는 것이다. 곧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죄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내 자신의 판단으로 모든것을 판단한다. 그 판단이 과연 옳을까? 인간의 판단에는 언제나 편견이 존재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은 상대방을 다르다고 하지 않고 틀리다고 해버릴때가 있는 것이다.
곧 상대방의 존재를 다름으로 존중하는것이 아니라 틀리다고 하여 거부할때 이것이 바로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죄가 되는 것이다.
성경에는 십계명이 있다. 이 십계명의 요약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제정한 법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살인,간음,거짓증거,도적질,부모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이웃을 훼방하고, 이웃의 물건을 탐내고, 정당한 방법이 아닌 거짓된 방법으로 타인의 권리를 강탈하는것이 바로 범죄인것이다.
국가적으로 저지르는 범죄가 있는데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상대방의 것을 빼앗아 내가 부를 축적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땀흘리지 않고 불로소득을 쌓는것이 바로 범죄라는 것이다. 내가 불로소득으로 얻는 부를 땀흘리고 일하는 자들의 재화를 빼앗는 짓이기 때문이다.
다시 설명하면 100만원주고 산 집이 1,000만원이 되었다면 900만원이라는 불로소득이 생긴것이다. 그럼 1,000만원짜리 집을 사기 위해서 땀흘려 일하는 자들은
100만원이면 살집을 900만원이라는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벌어야 살수 있게 됨으로서 땀흘려 그만큼 고생해야하고 재화를 벌어야 한다.
그러나 100만원주고 집을 산 사람은 집을 소유하고 있음으로 그냥 900만원을 벌었음으로 불로소득을 얻게된것이다. 이 불로소득은 이웃의 것을 강탈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라는 사회가 정의가 실종되고 이웃에 대한 배려가 실종되어버리면 그 사회자체가 범죄의 소굴이 되는 것이다.
이런 범죄의 소굴이 되어버린 사회는 결국 약자를 탄압하고 약자의 것을 강탈하는 자들이 부자가 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는 결국 오래가지 못할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경말씀에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으며 정당하게 땀흘려 돈을 버는것을 미련하지 않다고 했다. 약자의 것을 강탈하여 부자가 된자는 결국 그 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에 갈수 없게 될수 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고자 한다면 약자의 것을 강탈한것을 다시 그들에게 돌려주어야 할것이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이웃사랑의 법칙이다. 이 법칙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지켜질것인가?
자본주의 사회가 지속되는한 이웃간의 관계는 점점더 깨어질것이고 무너질것이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자가 어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수 있을까?
결국 자본주의 돈을 숭배하는 곳에서는 하나님이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더욱 강력한 법치로 부자를 통제하고 가난한자를 구제하는 방법으로 나라를 이끌어야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는 사회를 막을수 있게될것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기득권이 되고 주인이 된 나라를 바로 세우는것은 너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지만 이 민주주의는 부자들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는 시스템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이런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이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질때 가능해 지는것이다. 이런 시스템하에서 부자가 되기위해서 애쓰는 자들은 결국 죄를 지을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부자가 되려는 노력보다 하루 하루 성실히 땀흘려 살아가는것이 인생의 참된 보람이라는것을 깨닫게 할 때 하나님의 공의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부자가 되려는 시스템에서 땀흘려 일하고 성실하게 사는것이 미련한 자로 비추게 되니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을 쫓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부자가되면 무엇을 할것인가? 생각해보라 결국 돈을 많이 소유하면 범죄의 유혹에 더 많이 빠지게 된다. 쾌락과 환락을 쫓아가게 되어있다. 돈은 우리를 죄를 짓게 하지 죄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는다.
죄에서 벗어나려면 돈을 쫓는 것이 아니라 삶을 찾아야하고 보람을 찾아야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축복이라는것을 깨달아야 한다.
대한민국 교회들도 대형화와 물질을 그만 쫓고 땀흘려 일하는 행복을 기독교인들이 알수 있도록 지도자들이 더 솔선수범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은혜로운말씀 > 은혜 로운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것은 거룩과 사랑입니다. (0) | 2012.02.05 |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렸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0) | 2012.01.31 |
그러면 듣고 믿는자는 어떻게 설명할것인가? (0) | 2011.12.21 |
구원은 믿는자가 받는것이 아니라 은혜를 입은자가 받는것입니다. (0) | 2011.12.21 |
믿는다 말하지 마시고 아버지를 부르십시요. (0) | 2011.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