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해석하고 묵상하는 저의 기준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본이 바로 창조요
둘째는,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하나님의 진실함이요.
셋째는,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의 거룩함 회복 곧 인간의 새로운 피조물(재창조)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의 사랑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한 만드신 인간을 토기장이처럼 맘대로 하실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인격적으로 대하시며 인간을 존중하시고 인간의 생각을 무시하지 않으시며 인간을 설득시키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바로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타락으로 비록 창조의 모습이 사라지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에 동참하던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서 더러운 곳에서 살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간을 하나님의 거룩함에 동참하도록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에게 물질적 축복과 건강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거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살아가면서 물질과 건강이 참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입니다.
그것은 근본이 사랑이요. 거룩함입니다. 인간들은 이 거룩함과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알게 하신것입니다.
성경은 천국과 지옥가는것이 성경의 주제가 아닙니다. 상주고 벌주는 것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의 아주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타락해서 천국과 지옥가는것을 크게 만들고 상받고 벌받는것을 아주 심각하게 만들어서 천국가고 상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식으로 기독교가 주제를 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천국가는 방주이고 상급을 받는 장소인가? 이러니 교회만이 폐쇄적으로 되어 세상으로부터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보다 더 이기적이고 타락해버리는것이 현재 교회들의 모습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한심한 것(천국과 지옥으로 분리하는)에서 교회의 근본을 회복하려면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라고 함은 하나님의 속성의 회복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인 사랑과 거룩함의 회복입니다. 죄에서의 분리인것입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다는 말을 들은지 수십년입니다. 이유는 교회가 사랑보다 천국가는것이 우선시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거룩함이라는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천국 과 지옥은 현실적으로 상상으로 분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천국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우리가 천국가기 위해서 이땅에 살아가는 겁니까? 지옥가기 싫어서 예수님 믿는 것입니까? 물론 그렇게 말해도 틀린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불렀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는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천국이 임했다고 말했습니까! 그것은 이미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천국에 살고 있는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천국가고 지옥가고 믿음이 있고 없고에 왜 이렇게 매몰되어야 하고 그것이 이땅에 살아가는 목적이 되서는 안됩니다. 그럴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야한다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자들을 보면,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말은 못하고 그저 그냥 예수천당! 만 외치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것을 믿기만 하면 그냥 천국행 티켓을 받았다고만 말할 뿐입니다. 그걸로 끝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그러니 믿는자들조차도 불안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근거가 확실히 있지도 않고 내 생각으로 예수님을 믿으니 천국행 티켓을 받은거고 이젠 헌금만 잘하면 하나님이 복주시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인생에 대해서 돌아보지 못하고 그저 헛된 인생을 살아가다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요?
나이들어서 존경받는 사람들이 교회안에 얼마나 존재합니까? 그저 권위와 권력을 내세우고 나이를 내세워 자녀들, 성도들 위에 군림하고 대접받으려고 하는것이 지금의 교회의 모습 아닌가 말입니다.
우리는 교회가 잃어버린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닙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천국을 가기 위해서 교회를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교회를 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녀이기 때문에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천국의 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왕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으로서 그 나라 백성들과 어울리며 사랑하며 살기 위해서 교회에 가는 것이란 말이지요. 그런데 아직도 교회에 가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교회를 가는 것처럼 된다면 그것만큼 불행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지 못하면 천국에서 쫓겨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도 그런 탓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천국 시민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지금은 이땅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천국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미 천국 시민권을 가진자가 여전히 천국에 가야한다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언제까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죽을때까지? 그 믿음이라는것이 죽을때까지 인정해야 완성되는 것입니까? 저는 정말 교회가 답답하고 한심스럽습니다.
교회가 근본을 잃어버렸으니 세상이 이렇게 뒤죽박죽 혼란속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세상은 인생의 해답을 위해서 교육을 하고 철학을 배우며 수학을 하고 공부를 합니다. 인생을 위해서 수고하고 애쓰고 고생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입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의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하는것이 아닙니다. 청소부가 되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다보니 청소부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의사도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인간이 그렇게 사는 것이라면 그것보다 더 비참한 삶은 없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이땅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있어서 긍정을 갖고 싶어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그것에 의미를 두고 싶어합니다. 세상에서 소중하지 않은 삶은 없습니다. 비참한 직업도 없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철학이고 정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식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런 상식이 근본이 되는 종교라고 할수 있습니다. 상식에 벗어난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샤머니즘이며 미신이라고 해야 할것입니다. 기독교가 상식을 버리고 이상한 기적이나 특별한 무엇인가를 쫓아가는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성령의 불을 쫓아가는것도 정상은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하나님의 역활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자들의 한심스러운 행동입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며 성화되는 삶으로 이끌어갑니다.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이상한 망상에 몽상에 빠뜨리는 짓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본질적이며 순수하며 거룩하고 참된 삶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을 쫓아 사는 삶과 영을 쫓아 사는 삶으로 분리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을 쫓아 사는 삶은 영을 쫓아 사는 삶이며 그것은 거룩하고 사랑하며 하나되고 성화되어가는 죄와 멀어져가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제대로된 성령론을 가지고 성령하나님을 바로 섬겨야 합니다. 작금의 성령운동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것이 문제입니다.
교회가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면서 결국 거룩과 사랑을 일어버렸습니다. 천국만 가면 무슨짓을해도 괜찮다는 괴물들을 양산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땅에서 잘먹고 잘사는것이 축복받은 삶이라고 이것이 기독교가 추구하는 정신인냥 외곡시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이비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이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돈은 함께 섬길수 없는데 교회가 하나님을 버리고 돈을 섬기는 길로 갔으니 그것이 바로 이단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종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는데 우상은 물질의 축복을 위해서 우리가 비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랑하며 거룩하게 사는것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우상처럼 숭배하며 물질의 복과 이생의 자랑 축복을 갈구하는 하나님을 섬기는것을 하나의 샤머니즘 미신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과 형식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실 복을 우선시 여겼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실망한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녀로서 거룩하고 참되게 살아가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 내 삶의 필요를 더 채우고 누리고자 하는 욕심만 가졌던 것입니다. 결국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우상으로 섬긴것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율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정신입니다. 율볍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 중심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겉보다 속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형식만을 강조한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추구한것이 아니라 형식만을 추구하고 거룩함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율법주의는 결코 성경적이지 않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것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형식과 내용 이 두가지를 다 버릴수는 없습니다. 만약 내용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주일날 예배드리는 형식을 나쁘다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식을 중요시 여기고 형식안에 내용이 있다고 말하면서 형식을 강조하는것은 결국 속빈 강정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형식보다 내용이 더 중요하고 내용이 알차면 저절로 형식도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교회는 거룩함의 회복 성화로 가야 하는 삶 그리고 그 삶의 중심이 사랑이라는 내용(중심)을 버리고 형식만을 쫓아 가고 있습니다. 형식안에 내용이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는 우선순위의 착각입니다. 내용이 완벽하다면 형식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것입니다. 형식이 완벽하다고 해도 내용이 전혀 없으면 그 예배는 하나님이 절대 받으시지 않을 것입니다.
본질의 회복, 교회 개혁의 근본은 바로 거룩과 사랑의 회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서야 교회가 세상에 있어서 빛과 소금의 역활을 감당할수 있게 되는것이고 세상사람들도 삶의 본질을 깨달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그 삶의 의미를 잘 알게 될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교회가 부흥되는 역사가 다시 일어나게 할수 있는 계기가 될수 있습니다.
제가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다. 그것은 거룩의 회복이고 죄의 단절이며 사랑의 실천인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녀인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소망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신 이유이며 지금까지 참으시고 우리를 돌아보시는 이유이시고 성경을 준 목적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많이 공부하고 그 내용을 완벽히 아는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함의 회복입니다. 사랑의 실천이고 죄악과의 단절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도 하나도 부족함이 없다는것을 세상이 알게 해야합니다. 빛이 감출 수 없듯이 우리의 삶을 세상사람들이 다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가지 않는다면 세상은 우리를 조롱할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을 조롱하는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욕먹어서는 안되는 것 아닙니까? 성경공부의 목적 성경을 알아가는 이유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성경을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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