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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은혜 로운 말씀

성경의 구원론을 꿰뚫을 수 있는 기초방정식!

제가 이단적 발언을  합니다.  이단인지 아닌지 한번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을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것은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말씀을 기록한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을 받은 자들이냐?  아니냐? 라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은 자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단적 발언이지요?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죄를 탐하니  하나님이 죄를 탐하는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믿으라고  호소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입니까?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선민입니다.  선민이니 모두 구원얻은 자들일까요?   그렇다면 그들이 죄를 짓든 말든 하나님이 왜 간섭합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백성의 의미는 정확히 똑같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두 부류가 나옵니다.  두 부류라 함은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첨부터 있던것은 아닙니다.  노아홍수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 불러 언약을 맺습니다.  자손을 줄것이고 그 자손이 민족을 이룰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쪼개진 제물 사이로  하나님이 불로 지나갑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맹세로 아브라함과 약속한것입니다. 

 

 창세기 15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어 그 후손들이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얻게될것이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럼 이 약속이 구원과 관계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민족이 구원얻은 하나님의 백성을 낳게 하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자손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이는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의롭게 여겨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하신것입니다.

모든 믿는자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들이 됩니다.

 

하나님이 민족을 이루겠다는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들  믿음의 자손들 말고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시고 야곱을 통해서 민족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하나님이 언약한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가십니다.  가나안을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줌으로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한 언약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한 언약의 일부분입니다.  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고자 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선택해서 그 민족을 통해서  이땅의  많은 족속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구원한 이유가  이웃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전파하게 하기 위함인것처럼   이스라엘을 선택한 이유도  그들을 통해서  만국에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특별히 구별하여  언약의 후손들이 되게 하신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땅에 복을 주기 위해서인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습니다.  새로운 약속은 바로 할례의 언약입니다.  이는 이 할례를 통해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언약의 백성이 됨을 서약하는 것입니다.

 

할례의 언약이 왜 중요한지를 알아야합니다.  할례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가 있음을 고백하는 의식입니다.  곧 할례를 한자는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는 백성이 되는 것이고 할례를 받지 않으면 언약과 상관없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곧 할례를 받은 자들은  전통에 따라 율법을 지켜야합니다.  그러나 할례를 받지 않는 자들은 율법과 상관이 없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율법이 뭐냐? 라는 것이 또 등장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법입니다.

 

글을 읽다가 조금 추가해야할 부분이 있어서....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할례의 언약을 맺습니다.  할례의 언약을  맺는것은 태어난지 8일만에 하는 의식입니다.

 

할례의 의식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해지는것을 의미합니다.  곧  할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거룩해진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한 하나님의 뜻대로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할례받은 자와 약속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에 의해서  율법이라는 거룩한 법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지닌게 됩니다.  율법은 거룩한삶을 살게하는 법입니다.  곧 하나님의 법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구원을 얻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것은 문자그대로 지키는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주인되는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의 글자를 지키려고 하다가 망했습니다.  율법을 글자 그대로 지킬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또  중요한게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얻지만  율법을 범하면  구원을 잃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다 지킬수 있는 인간이 있습니까?   이 율법의 언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맺습니다.  이것이 바로 옛언약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옛언약이  율법의 언약이고  율법의 언약은  할례를 통해서 맺어집니다.  할례를 받은 자들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생기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합니다.  그런데  이 율법을 범하면  할례자들이 무할례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할례를 통해서 언약의 백성이 된 자들이  율법을 범함으로  언약의 백성의 자리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럼 이들이 다시  언약의 백성이 되려면  죄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하나의 법이 아니라 두개의 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는 상벌의 율법이요!  하나는  속죄의 율법인 것입니다.

 

상벌의 율법을 범하면  속죄의 율법을 통해서 죄를 해결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사 속죄제사 번제같은 제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해결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사는  영원한것이 아닙니다.  곧  죄를 범할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이 죄를 완전히 해결할수 있는 분이 오실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구세주가 오실것임을 약속하는 언약입니다.   곧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게됩니다.

 

그러면  제사방식으로 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했어야 했냐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그분이 오실것을 믿는것으로  해결될수 있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수 있게된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약속이며   구속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을 제가 빼먹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구원도  믿음에 의해서라는것은  충분히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논리가 중요합니다. 왜 믿음에 의해서냐?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냐? 하는 문제입니다.

 

할례를 받으면 다 구원받은 백성이 되는것 아니냐? 하는 문제입니다.  할례는 율법보다 우선합니다.  그리고  할례는  언약의 백성이 되는 과정가운데 하나입니다.  할례의 시작은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언약안에서  이뤄진것으로  할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하는 중요한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할례가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죄로부터 구원임으로  할례가 죄로부터의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된 자들도  죄로 말미암아 무할례자들이 될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자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물과 불로 세례를 다시 받아야합니다.  이는 죄사함의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물과 불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할례를 받았지만 죄를 지어  무할례자들이 된자들 곧 언약에서 쫓겨난 자들은 세례를 받음으로 다시 언약의 후손이 될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이 존재합니다.   이방인을 성경에서는 말하기를  저주받은 자들이라고 칭합니다. 왜?  그들은 언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구원의 약속이 없기 때문에  저주받은 자들이었습니다.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은 언약의 후손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것은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무할례자들인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방인들이 구원받을수 있는 논리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들을 저주받은 자들로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에게 있어서 제사장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셨으며   또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지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주신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나은점이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성경을 맡았다는 것이  이방인보다  나은점이다.  그 외는 아무것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은 똑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지만 그것다고 구원을 얻게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율법을 받았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율법을 지킬수 있는 자는 단 한사람도 없다!  라고 말입니다.

 

오직 한사람 예수그리스도만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신 분이시며  무죄하시고  죄가 없으신 분으로서  인류의 죄를 모두 지고  속죄제물이 되셔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권세를 얻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성경은  약속으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이 약속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설명한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특별히 부르십니다.  그 이유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듦만 잘났다는 선민사상에 빠져  이방인을 짐승취급하고  자기들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인척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훈계하고  징계하고 벌을 주시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했습니다.  그러나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획하신대로 인류의 엯사를 운행하셧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족속의 후손으로 오실분임을 언약속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갈라져서 서로 싸우다  결국 앗수르에 의해서 망하게 되는데  먼저 망한 북이스라엘은  온 세계로 뿔뿔히 흩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나중에 망한 유다지파는  바벨론에 의해서 포로로 잡혀가지만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귀환을 하게됩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아에 의해서  귀환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유대지파는 포로에서 풀러나  유대땅으로 귀환하게 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아올 기약없이 온세상에 뿔뿔히 흩어지게 됩니다.  

 

왜 유다지파를  가나안땅에 귀환을 시켰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유다지파에서 태어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래서 이렇게 나옵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온다! 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기르솓게서 유다지파에서 태어나게 되시고  유다지파사람들을 유대인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스라엘 지파는 가나안에 돌아오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온땅으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만 하나님의 백성이지 하나님의 백성아닌 자들로 살아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약속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나의 백성이 될것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유대인들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온세상으로 뿔뿔히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백성임을 교육하기를  쉬지 않고 해왔으며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난 핍박과  역경속에서도 자기 혈통을 잊지 않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과 힘을 길러 살아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오셨고  12제자를 세우셨으며  제자들에게 복음을 가르치시고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게 하십니다.   왜? 예수님이 온땅에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온땅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비록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성경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것을 자녀들에게 잊지 않고 가르쳤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어  내가 그로다!  내가 곧 너희들을 구원하러온  메시아다!! 너희를 죄에서 속죄하라고  이땅에 온것이다.  라며  예수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이심을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복음전파로 이방인도 구원을 얻게 하셨는가?   복음을 성경은 두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복음이 요 하나는 약속이라고 말입니다.   약속을  다시 말하면 언약이라고 하는 것이고  성경에는 옛언약과 새언약이 나옵니다.   옛언약은 율법의 언약입니다.  새언약은  복음의 언약입니다.  곧  옛언약은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새언약은 믿으면 구원을 얻을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언약은 지킬수 없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지옥을 면할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옛언약가운데서  너희가 율법을 지킬수 없으니  율법을 지켜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려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보다  죄를 속죄하지 못하는 제사방식이나  전통에 의지해서  이스라엘을 유지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방식과   이방인들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방식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약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됩니다.  곧 이 약속은  새언약이요  새언약은 구원의 사자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죄를 사해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방인에게 적용하는 구원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약속에 참예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약속이 있는 자들은  그 약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약속이 없는 자들은  약속이 없음으로 약속있는 자들과 하나됨으로서 구원을 얻을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곧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것이고   그 이유는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시다.   그런데 이 구원의 적용이   하나님의 백성들만 구원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방식으로  이방인도 구원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나  이스라엘 백성이나 다 죄가운데 있고 죄를 해결 받아야  거룩하신 하나님 영원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죄를 해결하는 방법을 이스라엘은 알고 있었고 이방인은 몰랐습니다.   모르는 이방인은  지옥에 갈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것이바로 저주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믿지 않으면  그들도 구원을 얻을수 없고 죄를 사함받을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3장 6절 말씀에  이방인은  유대인의 언약에 참예함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은 언약의 자손은 아니지만  무할례자들이지만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서  할례자들과 같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은혜를 입는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듯이  이방인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에 말씀했듯이  하나님을 믿는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 언약에 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의 언약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겠다고 그들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자손으로 오셨고  이스라엘 땅에는 유다족속들이 살았습니다.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에 뿔뿔히 흩어진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 가운데서 제자들을 삼았고  유대인들을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그들에게 맡깁니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을 따로 세워 바울로 하여금 이방인들의 구원사역을 맡깁니다. 

 

온땅에 복음을 전파해야할 이유가 어디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예수님의 명령인것입니다.  북방땅 흩어진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가 왔다는것을 증거하고 그들을 불러 하나님을 섬기도록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온땅에 복음을 전파하러  제자들이 나간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가되면  이땅에 종말이 옵니다.  종말!!  그때가 언제인지 궁금하십니까?  온 땅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모이고  그들이 하나님을 부르짖을때 예수님은 재림하십니다!

 

이때가 언제나면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이 닫힐때입니다. 곧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준 자들이 모두 찰때입니다. 

 

제 블로그에  로마서 11장에 대한 설명글이 있습니다.  이글과 참조하여 읽어보시면 이해가 좀더 빠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이 참감람나무의 가지들이 열매를 맺지 않아서 잘립니다.  이방인인 돌가람나무의 가지들을 하나님이 잘라서  참감람나무 나무가지에 접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합니다.

 

참감람나무의  뿌리는 언약입니다.  그리고 줄기는 언약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와 접붙임을 받은 가지들은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잘린가지는 생명을 잃습니다.

 

본질에 있어서  참감람나무의 이스라엘과  돌감람나무의 이방인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참감람나무라고 해서 무조건 구원을 얻는것이 아니고  돌감람나무의 가지라고 해서 무조건 멸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돌감람나무의 가지가 참감람나무의 줄기에 접붙임을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안에 들어가야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을수 있다는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물론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강제적으로 하시는 것임으로   칼빈의 불가항력적 은혜와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아니라 하나님의 강제적인 접붙임에 의한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정하지 않는 부류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멸하셨다고 하는것은 말이 안됩니다.

 

로마서에 분명히  이방인을 참감람나무에 접붙여 구원을 주셨듯이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야 말로 접붙임을 받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겠느냐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것이며  언약을 잊지 않으셨다는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것이라는 약속을 이루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