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5장 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이 말씀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성경의 유일한 말씀입니다. 명령어로서의 유일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성령에 충만하여 스데반이 성령에 충만하여 이런 말씀들은 있지만 명령어로는 이것이 유일한것같습니다.
이 유일한 말씀하나로 설교는 수백 수천의 설교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성령의 충만을 받는것이 기독교인으로서 마땅한것처럼 설교되어 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성령충만을 받아야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좀 견해가 다릅니다. 사람은 늘 성령에 충만할수 없습니다. 성령에 충만할수 없지만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술에 취하면 술의 지배를 받게됩니다. 스스로 자기 몸을 제어할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술취한 사람처럼 성령님의 이끄심대로 살거라고 생각하는것으로 오해할수 있습니다. 이건 정말 오해입니다.
왜? 성령충만해지면 성령에 취해서 성령님의 이끄심대로 살거라고 하는데 성령이 충만해지면 술취한 사람처럼 술의 지배를 받아 내 정신이 아닌것처럼 사는것처럼 성령충만해지면 내 의지가 아닌 성령의 의지대로 이끌려 살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령충만해지고 싶은데 성령충만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성령충만해지는것이 무엇인지 성경을 찾아보고 그렇게 노력을 해봅니다. 그리고 성령충만한 삶에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의 설교를 들어봅니다. 그러나 특별히 맘에 와닫는 설교나 깨달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데체 성령충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제가 생각하는것을 제견해를 밝히고자 합니다. 저도 정확한것은 아니지만 공감할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성령충만이라는것이 무엇이냐! 저는 한마디로 말해서 살아있는 자의 삶이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있는 자의 삶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금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온몸의 장기가 자기의 맡은 일들을 감당하고 있고 그렇게 몸이 살아서 숨쉬며 움직이고 자기 일을 감당합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충만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죽은자를 살리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듭난 자들입니다. 곧 거듭난자들은 이미 성령으로 충만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거듭난 자들이 살아있기때문에 살아있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산자들에게 하나님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때문일까요? 바로 본성때문입니다. 본성이라고 함은 죄입니다. 죄의삯은 사망입니다. 사망의 행하는 일이 있고 생명이 행하는 일이 있습니다.
술취해서 하는 행위는 분별할수 없는 행위입니다. 곧 죄를 지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고 성령님을 근심케하는 것입니다. 곧 죄를 멀리하는 삶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입니다. 이 죄는 우리의 본성임으로 우리가 성령으로 이끌림을 받지 않게 되면 이 죄가 우리 몸을 통해서 표출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어둠의 일을 사랑하는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악을 행하고 탐심을 부리며 이웃을 훼방하는 것들 내 이익을 위해서 삶을 살아가는것이 바로 죄의 본성들입니다. 이 죄의 본성들은 통제하지 않으면 발현되는 것들입니다. 이 죄를 통제하는 방법이 바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것입니다. 성령에 충만해지면 이 죄가 통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근심케 하는 죄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언제나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야합니다. 곧 죄를 이겨내는 삶이 성령충만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죄의 본성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내 힘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분명 우리에게 죄를 이길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내 힘으로 죄를 이겨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힘으로 죄를 이겨낼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죽은자는 판단할수 없지만 살아있는 자는 분별하여 판단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많은 오해들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것들이 하나님이 볼때 죄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죄가 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볼때 죄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분별할수 있는 눈을 가져야합니다.
이 분별의 능력이 바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이라고 함은 내 판단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판단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판단은 옳지 않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려면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합니다.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뜻은 통일입니다. 통일이라고 함은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내가 하나되고 나와 이웃이 하나되고 또 이웃과 이웃이 하나되며 하나님의 백성들과 이방인이 하나되고 세상의 모든것이 다 주안에서 하나되는것 그리스도안에서 한몸되는 것이 바로 통일입니다. 이는 믿음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라는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곧 성경말씀에 보면 선지자의 강령이 대접받고 싶으면 남을 대접하라인데 모든 성경말씀을 하나로 통일해서 말하면 네 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으로 통일될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이 성경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이라고 할때 그 이웃은 바로 내 자녀 내 아내 그리고 남편 부모님 친인척들을 비롯한 교회 교우들 그리고 믿지 않는 자들까지 모두 다 내 이웃입니다. 이웃은 내 자식은 아니고 내 아내도 아니고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만이 내 이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멀리 있는 사람들이 내 이웃이라고 해서도 안됩니다. 내 이웃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다 내 이웃인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에 성령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시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바로 관계입니다. 첫번째 나오는 관계가 바로 부부의 관계입니다. 이것이 첫번째로 나온 이유는 바로 부부는 한몸이기 때문입니다. 한몸으로서의 관계임으로 가장 중요한 관계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부모가 나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자녀의 관계가 나옵니다. 그리고 다섯번째로 종과 상전의 관계가 나옵니다. 우리가 삶에서 맺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나오는 것입니다. 이 관계맺는 삶에서 우리가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성령충만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성령충만한 삶은 모든 유혹에서 자기자신을 지켜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는 많은 유혹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믿음안에서 하나님을 근심케 하는 것들을 이겨내는 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을 받는 삶입니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진리안에서 거하며 사단마귀와 대적해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자식이 말을 안듣는다고 자제력을 잃고 자녀를 폭력으로 대하거나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부모가 있다면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한것 입니다. 가정을 소홀히 하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이 관계속에서 중요한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이 강자임으로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듯이 사랑해야한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속에서는 부모가 강자이니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종과 상전의 관계속에서는 종들을 대함을 하늘에 있는 하나님을 대하듯이 공갈치지말고 정직하게 대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론 성경은 아내에게 자녀에게 종에게 먼저 명령을 내리지만 그 명령보다 강자에게 준 하나님의 명령이 더 준엄함을 깨달아야 할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사람의 삶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일러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며 술취하여 절제하지 못하는 삶을 살지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절제하면서 정신 차리고 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는자가 모르는 자들 위에 서지말고 알면 아는데로 더욱 순종하여 모르는 자들을 돌보고 모르는 자는 자기가 무시당한다고 생각하지말고 아는 자들에게 복종하여 더욱 깊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도록 애쓰는 것이야 말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사람의 삶입니다.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자기 맡은바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야 말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삶입니다. 게으르지 않으며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고 남편과 부모에게 순종하고 직장에서는 최선을 다하여 자기 일을 감당하고 열심히 일한 부하들에게 적정한 뎃가를 지불하는 것이야 말로 성령의 충만한 자들의 삶입니다.
이렇게 될때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 주변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와지고 행복해지겠습니까?
지금 이 세상이 불편부당하고 공의롭지 못하고 정의가 사라지는 이유는 바로 성령충만한 삶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혼하고 자녀를 학대하며 부모를 공경치 못하고 월급많이 받는다고 직원을 자르고 월급적다고 대충 일하고.....이렇게 세상이 부조리한 이유는 이 세상이 죄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보면서 근심하는 이유는 바로 이 세상이 죄아래 있기 때문에 근심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라도 우리의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자들임으로 솔선수범해야합니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서로 사랑하면서 돈을 사랑하기보다 이웃을 사랑하고 내 이익을 취하기 보다 이웃이 우리로 말미암아 이익을 누리게 해주는 것이야 말로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이런 삶을 우리가 살아갈때 하나님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며 하나님의 존재와 공의로움이 세상에 드러나게 될것입니다.
천만의 성도들이 교회안에서는 거룩한척하고 교회 밖으로만 나가면 세상사람들보다 더 이익을 탐하고 이웃의 것을 더 빼앗고 자기만 알고 이웃을 무시하고 살아간다면? 이웃이 우리를 보고 무엇을 배울수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넉넉하지 못해서 남을 대접할수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큰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시고 목마른자에게 물한잔이라도 대접하라고 했으니 목마른자들에게 못본체 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의 필요가 필요한것이 어디있는지 돌아보면서 살아가는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요 성령충만한 삶인것입니다.
믿음으로 산자들은 이미 살아있음으로 판단할수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것을 판단하시길 원하십니다.
만나를 내려주시고 하루에 딱 먹을만큼만 거두고 안식일 전에는 이틀치를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일을 걱정한 몇몇 사람들은 만나에서 벌래가 나고 냄새가 나는것을 경험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요는 하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여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술의 지배를 받아 내 의지가 없이 술의 의지대로 판단하는 것이 악한것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달아서 그것을 행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있는 삶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들 생명을 얻은 자들 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들 죽은 자들로서 죽은 행실을 행하는 자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들로서 살아있는 행위를 할수 있는 사람들로서 스스로 판단할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이 부여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나를 죽이라고 해서 나를 진짜로 죽이라는 것이아니라 육신의 판단을 죽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것을 이해하여 그것으로 행함의 근본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 행함이 나의 의지로 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로버트로 종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스스로 판단하여 스스로 선택할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는것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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