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이 죄때문에 우리의 죄때문에 십자가를 지셨다고 생각하실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포괄적인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어떤 죄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율법이라는 법때문에 십자가를 지신것입니다. 그럼 율법이 악해서 십자가를 진것일까요? 아니면 선한 율법때문에 십자가를 지신것일까요?
율법에 의해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말이 율법이 악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다고 착각할수가 있습니다. 율법 그 자체는 선한법이며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줄때는 그들이 악해서 준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을 받고 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이제 거룩한 백성이니 거룩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라! 라고 준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율법 때문에 십자가를 지셔야 했을까요? 이 선한법을 선한 백성들에게 지키라고 주었더니 선한백성이 이 법을 지키지 못해서 악해진 까닭입니다. 선한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악해졌고 죄를 지었음으로 하나님과 단절되게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에게 거룩하게되는 속죄법 곧 제사법을 주었습니다. 제사를 통해서 이들은 거룩해질수 있었고 하나님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사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게 문제입니다. 죄를 질때마다 제사를 지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음을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요! 죄를 지었고 죄용서를 받기 위해서 제사를 지내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속에서 신음했을지를 여러분들에게 지금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제사를 지내라고 해보십시요. 누가 제대로 제사를 지낼수 있겠습니까? 한달 모아서 하루에 죄값을 치루는 방법은 어떨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죄를 용서받아야 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겠습니까? 그래서 이들은 율법을 더이상 지킬수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니게된것입니다.
율법을 범하고 또 회개의 제사를 지내는것이 수천년동안 계속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요! 이 문제는 결코 쉬운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의 신음소리를 듣고 하나님이 너희를 이 고통에서 건져주실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고 언약을 하게되신것입니다. 이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할 메시아를 구원자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할례를 받은 자들에게는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생긴것이고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던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법임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법이고 이것을 지키면 구원을 받을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저주의 법이었습니다. 왜? 이것을 행하여 지킬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드리는 이 제사는 결코 쉬운 제사가 아니었던것입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려면 양을 잡아야하고 소를 잡아야하고 비둘기를 잡아야 했습니다. 매일 짐승을 잡아 죽이는것이 이들에게는 또하나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짐승들에게도 고난이었던것입니다.
그리고 흠없는 양 흠없는 소를 바치는것은 또 쉬운일이겠습니까? 도무지 율법을 지켜 죄를 용서받기란 정말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던것이고 그리고 정말 이것을 할수 없을만큼 그런 법이 된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할때 이것을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못지키면 저주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에 의해서 이들이 저주를 받게된것입니다.
이 저주에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했고 이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 약속이 바로 아브라함의 씨에서 날자! 곧 예수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실것을 이미 율법이 있기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씨를 주시겠다는 것을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영원한 기업의 언약을 맺은 첫번째 조상이 된것이고 이러므로 믿는자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은 영원한 기업의 언약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든 이유입니다.
율법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 언약을 맺었을까요? 그들이 할례를 받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할례를 받은 자들은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율법을 범하여 무할례자들이 된 것입니다. 무할례자들이 되었다는 것은 언약에서 쫓겨났다는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영원한 기업의 언약 곧 약속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게된다는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다시 약속의 나라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제사를 드려야했습니다. 속죄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하지 않은 제사입니다. 그래서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게된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저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율법에 관해서 많이 성경에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유가 율법의 저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까닭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여 이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드린 제사를 믿음으로 더이상의 속죄제사가 필요없어진 까닭입니다.
우리가 원죄를 말할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죄의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고 그 아들 이삭이 언약 백성의 자녀로 출생하게 됩니다. 곧 할례를 시행한후에 이삭이 출생하게 되는것입니다. 이삭은 죄의 자녀가 아닌 자유자의 자녀로 태어나게된것입니다. 그 후에 야곱이 택함을 받게되는데 야곱은 출생이전에 이미 하나님이 택하여 거룩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자손들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거룩하게 부름을 받은 자들인것입니다.
이 개념을 우리가 먼저 탑재해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과 다릅니다. 이방인은 저주받은 자로 태어났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택함받은 자들로 태어나게된것입니다. 이방인은 율법이 없어도 이미 망한 자들입니다. 성경에 율법이 죄를 정한다고 하지만 그런점도 있지만 이방인에게는 본래 율법 자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이라고 칭했습니다. 왜? 이방인들은 원죄의 적용을 받기 때문입니다. 본래부터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방인은 율법이 없어서 망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이 있어서 망했다고 했습니다. 왜? 율법이 있어서 망했습니까? 그들은 죄가 없이 태어났지만 할례를 받음으로 율법을 지켜야할 의무가 생겼고 율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그들이 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속죄제로 죄를 용서받을수 있었지만 매일 드리는 제사를 다 드리지 못함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길이 없게된것입니다. 이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을수 있다는 그 생각이 도무지 불가능하게된것입니다.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지 못하게되었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영원한 기업의 언약을 얻지 못하게되었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성경에서는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에 들어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율법을 지켜서 구원얻을수있다.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수 있다는 그 망상을 하나님이 깨닫게 하신것입니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수 없다는것을 알게하시고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서 믿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얻을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신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입니다. 곧 옛언약의 저주때문에 십자가를 지신것입니다.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킬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이유가 없었던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이방인은 본래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저주를 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의 언약에서 쫓겨난 자들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것입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냐! 곧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할 분이다! 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이단들이 있습니다. 이 이단들의 특징이 자기가 예수님이다. 자기가 하나님이다. 자기가 성령님이다. 자기가 선지자다 자기가 예언자다! 라고 말하는 자들이 대부분 이단입니다. 예수가 여기있다 저기있다 하는 자들이 이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이단들의 말에 우리는 속지 말아야합니다. 속지 않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율법의 저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저주의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입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단번에 하나님께 드림으로서 그들이 속죄를 받을수 없는 상황에서 이제 예수그리스도만을 믿으면 더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셨고 알게하셨고 그리고 율법의 저주에서 그들을 건저주신것입니다.
예수님이 폐하신 율법은 율법의 저주 곧 사망의 저주를 폐하셨지만 그것이 바로 제사를 폐했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제사를 폐했다는 의미는 더이상 속죄받지 못할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법은 폐했지만 폐하지 않은 법이 있으니 바로 행위법입니다. 율법을 완성시켰다는 의미는 바로 이 행위법에 대해서 예수님이 완성시키신것입니다. 행위법의 근본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법이 행위법의 근본입니다. 곧 사랑의 법을 완성시키신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야할 율법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새언약의 새로운 율법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라는 법입니다. 사랑의 법이 새로운 새언약입니다. 새로운 율법입니다. 이 율법이 구약의 율법과 다른점이 있습니까? 율법의 조항들을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면 율법을 지킨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면 율법을 지킨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지켰다는 것은 율법의 조항들을 다 지켰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사랑의 법 사랑의 법을 온전히 지켰다는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의 조항들을 지켜야 율법을 지킨것이라면 예수님도 율법을 범한 자가 됩니다. 그 시대에서 보면 예수님은 율법을 범한자요! 이단자요! 거짓선지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으로 볼때 예수님은 사랑함으로서 율법을 완성시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는 그 사랑의 법을 완성시키셨습니다. 무엇으로 십자가로 완성시키신것입니다.
제가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나누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에 있습니다. 이방인은 율법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인 사랑의 법은 지켜야할 자들입니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것이 바로 사랑이기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법을 지켜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받은 자들이고 이것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는 할례자들입니다. 이들이 율법을 범해 무할례자들이 되었고 이들이 다시 언약을 얻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세례를주었습니다. 세례는 죄를 사하는 것입니다. 무할례자들을 세례를 통해서 할례자들이 되게한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할례를 말하는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는 시각을 좀더 깊게 가져야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왜 십자가를 지셔야했는지 율법과 무슨관계가 있는지 알게됩니다. 아직 이것이 끝은 아닙니다. 조금더 설명해야하는데.....이따가 밤늦게 좀더 부연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저와 함께 성경의 깊은 곳까지 함께 들어가봅시다.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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