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어 구원을 얻었는가? 예수님을 믿었는가? 성경을 잘 보면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어 구원을 얻었는가....
아브라함은 믿어서 구원얻은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구원을 얻은것이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믿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게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구원을 얻은것은 약속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한 약속을 아브라함은 믿었다. 그 약속을 믿는 믿음이 아브라함을 의롭게 한것이고 그것이 아브라함을 구원한것이다.
그러나 그 약속을 아브라함이 스스로 깨달아 믿었던가? 천만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그리고 아브라함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끊임없이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셨고 아브라함이 믿게 하셨다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이 중심이 되어 나오지만 실제적으로 그시대에는 아브라함 말고도 하나님을 섬긴자들은 무수히 많다. 욥도 아브라함 시대의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왜 아브라함이 중요한가? 그것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약속을 맺고 그 약속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자를 이땅에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아브라함을 택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해서 선택하신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 이전에 조상들을 돌아보면 아브라함의 선조들을 따라가면 노아가 나오고 셋이 나온다. 그리고 아담이다. 가인의 후손이 아니라 셋의 후손이며 노아의 후손이고 샘의 후손이며 벨렉의 후손이다. 족보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대대로 하나님을 섬겼던 조상들이었다는 것이다. 비록 아브라함의 아버지가 우상을 파는 사람이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시간은 수천년이 흘렀다.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었던가! 하나님은 이 땅을 소돔과 고모라처럼 그냥 흔적도 안남기고 없앨수 있는 분이시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심을 이 세상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다. 역사속에서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고 계시는 것이다.
성경은 바로 이 역사를 보여주는 책인 것이다.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땅에 어떻게 역사하는지 보여주고 그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인류를 어떻게 구원하고 계시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약속이 등장한다. 왜 약속이 등장할까? 약속은 파기될수 없는 것임으로 약속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했다. 아담이 범죄했을때 그를 죽이고 새로운 아담을 창조할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아담은 범죄하여 죽었지만 그가 자녀를 낳아 땅에 충만하게 했기 때문이다.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없이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지만 하나님은 셋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받는 세상을 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한것을 후회하시고 노아만을 남기시고 싹 쓸어버리셨다. 그러나 그당시 의롭다는 노아도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고 누워 잠을 잘정도로 노아가 아주 경건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다.
그가 자녀들을 낳았지만 그 자녀들 조차도 죄가 주인이 된 세상에서 온전히 의롭게 살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인류는 또다시 하나님없는 세상을 원하고 하나님을 이기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았지만 하나님은 인류를 흩어버리시고 인간들이 합심해서 하나님을 대적하지 못하게 언어를 나누어 버리셨다.
이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역사라고 볼수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숫자는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숫자보다 월등히 더 많았다. 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와 간섭을 싫어하는 본질적 악함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의지해야지만 자기가 살아갈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의지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독립적인 가치관이 늘 혼재해 있는 것이 인간이다. 부모님 밑에 있을때는 안전을 느끼지만 언제나 부모님을 떠나 독립하고 싶어하는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편안한것을 인간은 알지만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맘대로 살아가고 싶은것 한 인간의 본성 아니던가! 이런 본성을 하나님이 모르실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를 자기와 동등한 입장에 두시고 인간을 대하셨다. 아담을 종처럼 부린것이 아니라 아담에게 자유를 주셨고 선택을 하게 하셨다. 이것이 선악과의 언약이다.
아브라함에게는 그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는 길과 그 길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면 축복을 거역하면 벌을 받게되는 삶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가르치셨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언약이다. 율법은 하나님께 어떻게 순종하며 살것인가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법인것이다.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사랑이 바로 율법의 핵심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위해서 살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이땅을 살아가는 규범이기도 한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그렇게 살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그런데 인간이라는 족속은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이웃을 죽이는데 사용한것이 인간들이다.
율법을 가진자들은 택함받은자요 선택받은 족속이요 축복받은 자들이라고 칭하고 율법이 없는 자들은 짐승이요 개라고 칭한것이다. 언제 하나님이 율법을 가지고 인간을 사람과 짐승으로 나누라고 했던가! 율법을 가진자들은 그것을 가지고 권력을 삼고 율법이 없는 자들은 율법을 가진자들아래서 순종하고 살아야 하는 피지배계층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을 폐기시키지 않으면 안될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저주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율법을 폐지시키기 위해서 이땅에 오지 않을수 없게 된것이다.
율법을 폐기시킨 이유는 그것이 불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것을 불의하게 사용했기 때문인것이다. 지금도 배우고 아는것이 많은 자들은 권력을 갖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판사 변호사 검사 이들은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법을 가지고 사람들을 탄압하고 핍박하는데 그 법을 이용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율법을 가진 레위지파중 제사장들은 서기관들은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가지고 자기들의 권력을 삼았다. 율법의 진정한 의미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명제를 버리고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하고 그것을 통해서 자기들의 이익을 극대화하여 부자로 떵떵거리고 권력을 가지고 군림하는 권력의 도구로 율법을 사용하게 된것이다.
하나님이 이런것을 그냥 두고 보고 계셔야 했을까? 율법의 저주로 말미암아 신음하는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은 이땅에 육체로 오셨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본체시고 육체를 가지고 계신 분이시지만 마리아의 몸을 빌어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율법아래 갇히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것이다. 그래서 율법이 있는 자들 율법을 가진 백성들의 후손으로 오실수 밖에 없으셨다. 율법을 가진 자들은 이땅에 유대인들(이스라엘백성)이 유일했고 그당시 가나안에 살고 있던 백성은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 레위지파 정도 밖에 없었기 때문에 유다인의 후손으로 이땅에 오시게 된것이다.
율법을 폐기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은 율법의 저주를 몸소 받아야 했다. 그래서 나은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다. 할례를 받는것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생긴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죄가 없는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저주아래 갇힐수 없는 분이셨다. 예수님 자체가 바로 율법의 주인이셨기 때문이다.
율법은 성경에서 옛언약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새언약이신 분이시다. 옛언약을 폐하고 새언약을 이땅에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옛언약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폐기되어야 했다.
율법의 최고 저주는 죽음이다. 왜?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이기기 위해서는 바로 이 죽음에서 이기는 길이 유일했다. 인간은 죽고 다시 부활할수 없기 때문에 이 율법의 저주아래서 구원받은 인간은 단 한사람도 없다. 인류 역사상.....
그러나 유일하게 예수그리스도만이 율법의 저주인 사망의 권세에서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다시사신것이다. 율법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서 제물이 되시고 죽으셨지만 예수님은 다시 사신것이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은 수없이 많은 짐승들은 다시 살지 못하여 새로운 짐승을 죽여 우리의 생명을 대신하게 해야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자기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 생명이 부활을 통해서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임을 가르쳐 주심으로 우리가 영원히 그 생명안에 거하게 하신것이다.
이것이 새언약이다. 죽음의 옛언약에서 부활의 새언약을 예수님은 인류에게 선물하신것이다. 이 선물은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된 자들이 받을수 있는 선물이다. 이것을 우리는 결혼의 비밀이라고 부른다. 예수님과 하나되는것이 바로 우리가 결혼하는 것처럼 남녀가 결혼을 통해서 하나된것처럼 예수님과 우리가 결혼하여 예수님과 하나됨을 선포하는것이 바로 구원인것이다.
예수님과 하나된다는 의미는 새언약을 받는다는 것에 있다. 우리가 결혼을 하면 서약을 하듯이 예수님과 우리는 서약을 맺는 것이다. 새로운 약속을 맺는 것이다. 곧 예수님과 하나되어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언약을 맺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안에 있을때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얻게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으로 우리가 결혼을 통하여 양가 부모님들의 자녀가 되는 것처럼 예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게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과 하나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 하나됨은 결국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친아들임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적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자녀로 입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게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과정인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구원의 계획대로 인류를 이끌어가고 계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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