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혜로운말씀/은혜 로운 말씀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우리의 구원의 법칙이 된 이유

팟빵에서  전기철 목사님이 방송하는  성경 꿰뚫어 읽기 방송을 듣고 있습니다.  요즘은 히브리서에 대해서 방송하고 있는데....여러분들도 찾아서 들으시면 유익할거라고 생각합니다.

 

히브리서에 대해서 요즘 방송하고 있는데  그 방송을 듣다가 글을 써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10월 1일) 믿음에 대한 방송을 들으면서 또 많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믿음은 앎이다. 라고 저는 짧게 정의를 내렸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알고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진짜 사실임을 알고 예수님의 피흘리심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이 나를 구원하는 방편이 됨을 우리는 압니다. 알기때문에 믿지 않을수 없는 것이지요.

 

전방송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제사가 죄사함의 원칙이 된이유에 대해서  하나님이 정한 법칙이다. 라고 말씀하신것에 이의를 달수는 없지만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것같아서 제가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아담인 하나님이 선악과로 언약을 맺은 아담의 범죄함으로 온세상이 죄에 물들게 되었고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둘째 아담의 피가 필요함을 성경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우리의 구원에 꼭 필요한것이 되었느냐하는 문제에 대해서  갈라디아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고 성경은  죄에대해서 죽고 의에대해서 살았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어야 하는 이유 피를 흘려야 했던 이유는 바로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사망은 죄를 지은 모든 인간이 치뤄야할 죄의 값입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을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아담이 맺은 언약입니다.  선악을 아는 과일을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영원히 살수 있었지만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그 후손들은 죄의 값으로  죽을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것입니다.  이것은 육체의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된 영적인 죽음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바로 이 점을 알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사이를 단절시키고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인간을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한것입니다.

 

사단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정죄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앞에 인간을 늘 고소하는 놈이라는 것이지요!  저인간은 죄인입니다. 죽어야 마땅한 자입니다. 라고 고발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죄인이라고 정죄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으로서 인간을 위해서 세상을 지으셨는데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서 하나님은 세상을 지은것을 후회하셨지만 그 사랑하는 인간을  그냥 없이할수도 없었고 그냥 죽여버릴수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한 원리를 스스로 파괴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하나님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목적은 하나님을 하나님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수작을 부려 하나님의 본성을 거스려  하나님을 악한신으로 만들려고 하는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단의 궤계에 속아넘어가실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사단의 고소를 이겨낼 방법을 연구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의 삯인  죄값을 치뤄 더이상 죄값을 치루지 않게 하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죄값을 치뤄버리면 더이상 죄값을 치룰것이 없는 인간을 사단은 고발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할 방법으로서  죄값을 치룰 메시아 곧 둘째아담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보낼것을 계획하시고 그 계획을 실행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입니다. 그 메시아는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고 인류를 구원할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죽음은 죽음으로 갚아야하는 법칙을 아담에게 알려주십니다.  곧  양을 잡아 죽이고 그 가죽을 벗겨 아담에게 입히심으로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죄없는 짐승이 죽어야 함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간은 이 사건을 통해서 나를 대신해서 짐승을 죽여야지만 죄가 사해진다는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義(옳을 의)라는 한자를 통해서 인류가 그것을 깨달았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자기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으셨지만  피가 없는 제사를 드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이 주어지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이 인간에게 죄의 값으로 죽음으로 그것을 갚아야 한다는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죄를 완전히 사할수 없다는 사실을 인간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스스로 이룰수 없는 인간은 하나님을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음으로서 그 은혜를 구해야지만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없이 사는 길을 선택해 세상으로 나갔지만  아담과 하와의 셋째아들 셋은  하나님을 부르짖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계보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짖은 백성들의 숫자는 비록 적었지만 하나님은 그 적은 숫자를 계속해서 유지하심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지금까지 실행하고 계시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에 나오는 계보입니다.

 

아담에서 셋으로 셋에서 노아로 노아에서 샘으로 샘에서 에벨로 에벨에서 벨렉으로 벨렉에서 아브라함으로 아브라함에서 다윗으로 다윗에서 예수그리스도이어지는 계보는 믿음의 계보입니다. 

 

이 계보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만들어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실행하십니다.  이스라엘과 맺은 옛언약은  새언약 되실 메시아를  미리 보여주는 모형으로서 온 인류에게 메시아가 오실것을 전파하는 역활을 이스라엘에게 맡겼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지 않고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삶으로서  인류는 오히려 더 망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고  하나님은 더이상 이대로 두면 안되겠다고 하여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복음을 온땅에 전파하는 것을 스스로 실행하게 되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온 인류의 죄의 값을 치루는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둘째 아담이 되셔서  첫째 아담이 범하여 받은 죄의 값인 죽음에 대해서  둘째아담이신 예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죽으신것입니다.

 

이 죽으심은 바로 인류를 사단의 고소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법정에서  범죄자는  판사로부터 판결을 받게되는데  이 판결은 범죄자가 살아있을때에만 허용되는 것입니다.  만약  범죄자가 죽어버렸을 경우  판사는 더이상 판결을 내리지 않고  범죄자가 지은 범죄에 대해서 더이상 판결을 하지 않게 되는것이 상식입니다.

 

범죄자가 죽은이상 더이상 범죄자에게 죄를 물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야 했던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이유는 사단이 더이상 우리를 고소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이 복음의 핵심이 된 이유입니다.  죄에대해서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죄에대해서 죄값을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값을 예수님이 이미 치뤄버리신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에대해서 죽어버렸기 때문에  사단은 더이상 우리를 고소할수 없게 된것입니다.

 

사단이  법정에서  ***은 죄인입니다. 저를 처벌하여  징역 1000000년에 처해야 합니다.  라고 고소를 했을때  하나님이 나를 보고  넌 죄인이니 1000000년을 지옥에서 살아야 한다!! 라고 판결하는것이 아니라  나를 볼때 나는 보이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내 위에 계심으로 그리스도를 보고  ***은 죽었으니 판결하지 않겠다. 라고  선고유예를 해버리는 것입니다.  사단은 더이상 고소할수 없게 된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인이 죽어버렸으니 선고를 할수 없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그냥 죽음으로 끝나버리면  삶이 없기 때문에  삶이없다는것은 죄값을 치뤘다는 것이 됩니다.  죄값을 치뤘긴 하지만  더이상의 삶이 없음으로  그는 죄인의 자리에서 벗어날수 없는것입니다. 

 

죄인의 자리에서  더이상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  살아야 합니다.  다시 살아야지만  정말로 죄값을 치룬것이 되는 것입니다.  살지 못하면 죄값을 받은것이 됩니다.  죄값을 치루게되는것은  다시 살아났다는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값을 치루고 물건을 샀는데  그 물건이 나에게 있어야지만 값을 치룬것이 됩니다.  값을 치뤘는데도 물건을 사지 못했다는것은  그건 값을 치룬것이 아닙니다.  물건값을 갚은것밖에 되지 못합니다. 빚진것을 갚은것밖에 되지 못합니다.

 

생명이라는 물건이 있습니다.  사망이라는 죄값을 치루면  받을수 있는것이 생명이라는 물건입니다.  이 생명이라는 물건을 받지 못하면 사망이라는 죄값을 갚은것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죄인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생명이라는 물건을 받아야합니다.  이는 죽음이라는 물건값을 치루고 받은것이기 때문에  더이상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   곧 예수님이 부활한것은 생명이라는 물건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이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바로 생명을 얻는것에 있습니다.  왜?  짐승제사는 영원한 속죄의 제사가 될수 없었냐면  그것은 죄값을 치루는것에 멈췄기 때문입니다.  죄값을 치뤘으면 생명을 얻어야하는데  죄를 대신해서 죽은 짐승은 다시 살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죽음으로 죄를 대신할뿐 더이상 우리에게 생명이라는 것을 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짐승제사는 영원히 죄를 사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죄값을 완전히 치룰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죄값을 온전히 치루고 완전히 치룬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죄값을 치루고 생명을 얻게하시는 것으로서  짐승이 할수 없었던것을 한것입니다.  그리고 사단에게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으니  둘째아담인  예수그리스도 한분으로도  온 인류의 죄를 사할수 있음을 논리적으로 반박함으로서 사단이 여기에 대해서 더이상 항변할수 없게 만든것입니다.

 

사단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칭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받게하고 싶어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우리에게 주었고  아들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어 우리가 아들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짐승의 제사를 대신하여  완전하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신 메시아  새언약으로서의 메시아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히브리서는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왜 짐승제사를 대신하였는지를 설명하고 있으며  예수그리스도께서  성경에서 예언한 둘째아담이며 여자의 후손이고  언약의 사자이며  새언약으로서  구약의 모형의 실제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법칙을 만드신 이유는  사단의 궤계를 깨기 위함입니다. 인류를 위해서 고소자인 사단의 그 고소를 깨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지혜로우심 그리고 하나님이 하나님되심을 보여주시는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게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통해서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계획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그들을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경륜을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