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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연구/로 만 카 톨 릭

어머니, 알라와 예수 보듬어 평화를 주소서

어머니, 알라와 예수 보듬어 평화를 주소서
현경교수의 이슬람순례 (26) 레바논 종교갈등 해법 찾는 ‘다르브 마리암’ 여성들
한겨레
» 레바논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여성들이 모두 평화롭게 쉴 수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도 자신들의 자녀들이 전쟁에 나가 죽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요.”-테레사 파라(다르브 마리암 창시자)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까지는 차로 두 시간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였다. 국경을 넘자마자, 지난여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폭격으로 무너진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중동의 스위스로 알려진 레바논, 그리고 지중해의 파리라 불리던 아름다운 베이루트…. 군데군데 남아 있는 폭격과 총상의 흔적 속에서 도시가 겪은 정치적, 역사적 고통이 전해져 왔다.

레바논 비자를 받으려고 뉴욕 5번가에 있는 레바논 영사관에 갔을 때 나이 지긋하신 영사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진짜 레바논은 이렇게 강대국한테 계속 전쟁터로 이용되는 레바논이 아니라, 칼릴 지브란이 그의 시에서 노래하는 깊은 영혼의 레바논입니다. 그 레바논을 꼭 만나시길 바랍니다.” 지브란이 그의 책에서 그림처럼 표현하던 사이프러스 나무, 백향목들이 향기를 뿜어내며 푸른 산을 뒤덮고 있다. 그 산을 넘으니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지중해와 베이루트 시가지가 펼쳐진다. 지브란의 시 ‘예언자’의 구절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사랑이 다가오면 온몸으로 포옹하라 /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비수가 그대를 피 흘리게 할지라도… 사랑하는 이들이여 / 그대들의 사랑에 항상 바람이 불 수 있는 거리를 두라 / 성전의 기둥들이 거리가 있듯이… /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에 거리가 있듯이… ” 중고등학교 시절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를 많이 읽어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그가 표현하는 “꿈에서도 방문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 아이들에게 속한 그 세계에 언젠가는 꼭 들어가 보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러나 지브란이 떠난 레바논은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많이 슬퍼 보였다.

베이루트 시내로 들어오니 유럽의 어떤 도시의 광장보다도 더 아름다운 광장들이 보이고, 그 사이사이로 아직 보수되지 않아 총상으로 가득한 아픈 건물들이 숨어 있다. 시내 중심에는 헤즈볼라와 기독교계 지도자 아운 장군을 중심으로 하는 반정부연합이 천막을 여러 개 치고 친미, 친서방 정부 내각 전원 사퇴를 요구하며 몇 달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 주변에는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아운 장군, 그리고 체 게바라의 사진들이 커다랗게 걸려 있다.




» 사원 앞 광장의 반정부 시위 천막(위)과 ‘다르브 마리암’을 이끄는 제나·테레사
지중해의 파리라 불렸던 아름다운 베이루트는 폭격과 총상, 반정부시위 천막들로 아파하고 있었다. 종교 문제로 몸살을 앓는 이곳에서 테레사 파라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모두 존경하는 ‘마리아’를 공부하고 공동의 순례지를 여행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공존과 평화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 어떤 사진보다도 더 큰 사진은 레바논 정부가 높은 고층건물 전체를 덮어가며 현수막처럼 내려 건, 2005년 밸런타인데이에 암살당한 전 총리 하리리의 사진이다. 하리리의 차 옆을 지나가던 다이너마이트로 가득 찬 차가 폭발하면서, 그와 보좌관 22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 후로도 여러 정치가와 언론인들이 차례로 살해되었으나 범인이 누구인지는 지금까지도 모른다고 한다. 시리아, 미국 중앙정보국, 이스라엘, 아니면 레바논 내 그의 정적 등 여러 음모설이 돌고 있으나,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의견만 분분하다.

동북쪽으로 시리아, 남쪽으로는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레바논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또 내부적으로는 종파 문제로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렸다. 의회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나, 근대 국가 건설 때부터 자리 잡은 종파별 안배주의(confessionalism) 때문에 종교와 정치 사이의 이룰 수 없는 균형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정치가 행해진다. 예를 들면 레바논은 법률상 대통령은 꼭 가톨릭인이어야 하고, 총리는 수니 무슬림, 부총리는 정교회인,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이어야 한다. 종교적으로 다양한 공동체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잡으려고 건국 때 만든 규정인데, 의도와 달리 지금에 와선 문제가 많은 시스템으로 여겨지고 있다.

숙소인 중동신학교에 여장을 풀고 이 학교 여성 총장님이 소개해 주신 종교간 평화를 만드는 여성들을 기다렸다. 이 여성들은 다르브 마리암(Darb Mariam, ‘마리아의 길’이라는 뜻)이라는 여성 모임을 만들어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여성 사이의 이해와 평화를 도모하는 일을 한다고 들었다. 약속 시간이 되니 이 모임의 창시자인 테레사 파라가 동료 무슬림 여성인 제나와 함께 나타났다. 이들은 2002년 함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성지순례를 하며 서로의 전통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어 배우고 나누려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 운동의 기원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테레사의 영적 체험에 근거한다. 테레사는 1997년에 터키의 에페소에 있는, 성모 마리아가 최후의 날들을 지냈다는 작은 사원과 그 사원 밑에 있는 샘물로 성지순례를 갔다가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사랑과 평화를 경험한다. 그리고 같은 해 레바논을 방문한 교황에게서 전쟁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서로를 만나고 이해하라는 메시지를 듣게 된다. 여러 경험 끝에 그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다 존경하는 ‘마리암’(마리아를 부르는 그들의 공통 발음)과 관련된, 다른 종교 배경의 여성들일지라도 공동으로 갈 수 있는 순례지를 찾아 여행을 시작했다. 이것이 다르브 마리암의 시작이다. 그들은 모여서 서로의 성스러운 책들을 같이 공부하고, 함께 기도하고 명상하며, 순례한다. 공존과 평화의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전쟁이 계속되는 레바논에서 이 모임은 평화, 기쁨, 희망의 근거가 되어 준다고 그들은 고백한다.

» 현경교수의 이슬람순례
서로의 다름과 고통, 가장 귀한 유산을 이해하는 것, 말뿐 아니라 같이 느끼며 친구가 되어 평화의 씨앗을 전쟁으로 갈라진 레바논 문화 속에 심는 것, 우정 속에서 자라는 평화를 주변 모두에게 퍼뜨리는 것, 그것이 ‘마리아의 길’이다. 그들이 가르쳐 준 말, “coviviality”(함께 기운을 주며 잘 사는 것). 레바논의 평화 여성들이 내게 준 큰 선물이다.

글·사진 현경 교수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원 cafe.daum.net/chunghyunky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