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5C 초기 한 수도사 '펠라기우스'는 잘못된 사상을 불러 일으켰다.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이다.
펠라기우스가 이러한 주장을 한 것은 크리스챤이라는 사람들 가운데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크리스챤의 경건을 고무시킬 목적으로 구원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노력해서 얻을 수가 있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본질적으로 선하게 타고 난다고 했다. 사람이 노력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어야 거룩함을 위해 노력할 것 아닌가? 하는 논리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것은 심히 십자가의 대속의 복음을 심히 왜곡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한 어거스틴은 아담의 죄로 인해서 모든 인류가 타락했고, 이 타락이 근본적이어서 자연상태의 어떤 인간도 예수님을 믿을 능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이러한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판정이 났다.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사람의 죄와 구원을 근원적, 본질적 부분이 아닌 사람중심적, 종교도덕적 입장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와 유사한 주장이 오늘날에도 많이 재현되고 있다.
펠라기우스가 문제삼은 그 당시 상황처럼 오늘날도 교회와 크리스챤들의 덕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다보니 거기에 나름대로 도전을 주기 위한 심정은 이해가 되나,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서 행위구원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의 펠라기우스가 성경에서 벗어나서 정죄받은 기독교 역사에서 증명되듯이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왜 그렇습니까? 에베소서 2장에서 말하듯이 인간은 구원받기 전에 영적으로 죽어있어서 스스로 죄를 해결하기란 구제불능이기
때문입니다. 그 죽은 인간을 살릴 주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 이러한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원어적으로 한번 자녀가 되면 영원까지 된다는 의미가 요한복음 1:12절의 의미입니다. 성경의 많은 구절들은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은혜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엡 2:8-9, 빌1:6, 히10:10-17, 히13:5, 요10:28-29, 롬 8:16, 롬 8:28-39,요일5:11-13, 고후1:22, 고후5:5)
위의 부류의 사람들의 주장들에 속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것이 마치 신앙의 경건함과 고상함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이나, 오히려 신앙인들을 율법주의로 얽어매어 하나님의 은혜를 방해하여 진정한 영적 성장까지도 방해하며, 사람의 모습에 따라 하나님의 구원이 왔다갔다 하는 주객이 전도된 사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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