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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운동/알 파 코 스

오순절 성령사건은 반복되는 사건이 아닙니다.

오순절 성령사건은 반복되는 사건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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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글 | 2007/06/30 (토)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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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이나 오순절이전에도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성령강림사건은 구약과 달리 유대인만 아닌, 이방인도 하나님의 은혜를 공유하는 전 세계적인 교회가 세워지게 되는 것이 오순절의 가장 큰 의미입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이는 성령강림의 현상들이 나타난것은 성령강림의 공식행사의 특별한 사건입니다. 이런 눈에 보이는 성령임재의 사건이 성경전체의 관점으로 봤을때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으로 묘사되는 성령의 역사의 특징이 아닙니다.
 
오순절 사건은 예수님 승천이후 성령의 사역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기 위한 것이므로, 한번밖에 없는 특별한 사건입니다 .
즉 오순절 이전처럼 개별적인 성령의 역사하심이 아니라, 주님과 교회적 차원의 집합적 연합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세례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사도를 통해 교회가 시작되는 시점의 시대적이고 특수하며 단회적인 것이므로, 이러한 역사가 오늘날까지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대마다 계시하시고 역사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나무에서 뿌리의 터가 자리잡는 시기와 나무가 자라는 것은 다르듯이 말이죠..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실 때에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여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다음에는 만나 내리시기를 그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스타일이 달라졌다 해서 하나님께서 변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예수님을 믿으면 바로 그 성령께서는 우리안에 계십니다. 그것이 거듭남이요 지금의 성령세례(주님과 연합)입니다.
그런데 성령운동하시는 분들은 무슨 또 이미 함께하시는 성령님보고 또다시 오순절처럼 오시라 말라하는 겁니까?
 
물론 우리나라도 그렇도 다른 나라도 그렇고 복음의 문을 열고 교회를 처음세우기 위해서는 기사와 이적이 동반되는 특별한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것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곤란합니다. 우리에게는 완성되어 주어진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를 깨우칠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은 특별히 눈여겨 볼 부분인데요, 여기 사마리아인에게 있어 믿음과 성령을 받는 것이 서로 분리되어 나타나는 특별한 체험은, 유대인들이 이방인과의 혼혈이라고 개같이 취급하고 멸시하던 사마리아같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표시를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 사마리아에서의 얘기와는 달리 주로 성경 다른 곳에서는  믿을때 동시적으로 성령을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동시에 성령이 구원의 보증으로 내주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 성경의 관점입니다. (로마서 8:2,8:23,고후1:22, 고후5:5, 3:2, 에베소서1:3, 1:19, 살전1:5,디도서3:5 3:6 2:38, 8:9-11 등등)다시말해 거듭남과 별도로 성령체험이 또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령은 예수그리스도의 진리를 증거하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요 15:26, 16:13) 
2, 8, 10장고넬료사건, 19장의 특별한 성령의 역사는 인종, 계층에 상관없이 성령이 동일하게 임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며,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로부터 외인으로 취급받던 이방인들에게도 임한다는 의미입니다. .

 
성경의 특별한 부분을 오해해서, 믿음만으로는 안되고, 그 이후에 성령체험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며(2의 축복이론)그 체험의 증거로 방언등이 꼭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성경전체 흐름에서 건전치 못한 생각입니다.

또 안수를 통해서 성령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안수를 통해서 성령을 받는 묘사는 성경에서 사도행전 8장과 19장밖에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안수를 통해서 믿음을 가지며 성령받는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 안수를 통해 성령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도로써의 권위를 보여주기위한 특별한 사건입니다. 오늘날 이것을 자기체험에 근거해서 보편화시키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령님은 사람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쟎습니까? 성령께서는 주권을 가지고 자신의 뜻대로 역사하시고 인격을 가지신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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