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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구약의파노라마

45. 룩기의 파노라마

45. 룩기의 파노라마


노우호: 사사들이 치리하던 기간에 아름다운 이야기 한 토막이 있습니다 룻기라는 책인데 별권으로 묶어져 있습니다 성경에 여인의 이름이 책이름이 된 것이 2권 있는데 하나가 에스더서이고 룻기 입니다

 


룻기는 그 자체로도 너무 아름다운 문학적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때는 바로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학자들이 이 시대를 종교암흑시대라고 하는데 그런 혼란스러운 틈바구니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아주 놀랍죠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느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 입니다 시대는 점점 더 어둡고 혼란스러워 가는데 그런 시기에 유대 팔레스타인 땅에 흉년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필경 하나님의 징계였다고 할 수 있죠 사람이 살아가는데 흉년이 들었다는 것은 큰 문제죠 지금도 흉년이 들면 어렵지만 고대사회에서는 정말 어려움이 극심하게 되죠 우리나라도 30~40년 전만해도 흉년이 들면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가기가 막연했습니다. 봄이 되면 춘궁기나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던 시대에는 봄이 되면 산으로 들로 풀뿌리를 캐서 먹고 나무껍질을 캐서 먹기도 했습니다

 


저도 소나무 껍질을 벗겨서 그것으로 밥을 지어 먹어 봤습니다 소나무의 겉껍질을 벗겨내면 안에 속살이 하얀 껍질이 있는데 그것을 송구라고 합니다 그 송구를 벗겨서 말린 후 약간 볶아서 디딜방아를 이용해 찧게 됩니다

 


이것을 보리쌀과 혼합하여 밥을 하게 되면(양을 늘리는 거죠) 이것이 껄끄러워서 목에 잘 안 넘어 갑니다 참 먹기가 힘들어서 즙만 먹고는 어머니 몰래 옆으로 내버리곤 했습니다 그 땅 베들레헴에서 흉년이 들었는데 그곳에 살고 있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는 나오미였고 그들은 그 당시 제법 잘 사는 사람이었는데 재산을 몽땅 팔아서 모압땅으로 이사를 갑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살펴봐야 할 부분인데 언제나 징계는 저주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 했을 때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징계는 교육을 하려는 목적이 있거든요 그 때 징계를 달게 받지 않고 피하거나 도망가게 되면 징계가 저주가 될 수가 있습니다 엘리멜렉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다’라는 뜻입니다

 


엘리는 하나님이란 뜻이고 멜렉은 왕이라는 뜻이므로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 그의 아버지는 신앙이 좋았던가 봅니다 사사시대에 인간이 왕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의 왕 엘리멜렉의 아버지는 믿음이 좋아서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는데 엘리멜렉은 그의 이름대로 살지 못하고 모압땅으로 갔습니다

 


모압 땅으로 간다는 것은 오늘날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간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지만 고대 근동지방에서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은 그 나라 신에게로 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나라로 온다는 것은 유대인의 하나님께로 온다는 것이고 모압으로 간다는 것은 모압신에게로 간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다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 할 때 흉년을 가지고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등지고 모압의 신 그모스에게고 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모스의 백성에게로 갔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죠 불신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을 영어로 'convert'라고 하죠 반대는 배신자는 'pervert'라고 하는데 우리 하나님을 믿다가 다른 신으로 돌아서는 것을 배신자라고 하죠 이 엘리멜렉이 'convert'가 아니고'pervert'라 말이죠

 


이렇게 되면 반드시 거기에 저주가 오게 됩니다 징계가 아니고 저주가 되는데 모압 땅에 거한지 얼마 못되어 엘리멜렉이 죽게 됩니다 이쯤 되었으면 나오미라도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 와야 될 텐데 나오미가 미련스럽게 아들 기론과 말론을 그 땅 그모스의 백성인 모압 처녀를 구해서 며느리를 삼았습니다

 


얼마 후 아들인 기론과 말론 두 아들도 죽게 되죠 그렇게 되고 나니까 남은 것은 가난한 것과 3고부만 남게 된 것입니다 나오미도 홀로 되었고 며느리 둘도 홀로 과부가 되었습니다 처량하게 3여인이 남아 있는데 고향을 떠나서 살다보면 잘 살아도 고향이 그리울 텐데 10년이 넘게 있으면서 남자들은 모두 죽고 여자 셋만 남아 있으니까 얼마나 처량하겠습니까?

 


과부가 된 세 여인이 사는 집에 가면 아마 한숨 소리만 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생각다 못해 자신은 자신의 민족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오미가 돌아 올려는 목적은 돌아올 면목이 있어서가 아니라 홀로된 며느리 둘을 개가시키기 위해서 혼자 돌아오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오미가 길을 떠나면서 나는 나의 신에게로 돌아 갈테니까 너희도 너희 신에게로 돌아가라고 하니까 그래도 정이 들어가지 헤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오미가 역정을 내면서 내가 지금 남자를 맞이하여 아들을 낳아서 너희들의 신랑감으로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겠느냐!

 


나는 아무 소망이 없지만 너희들은 아직 젊으니까 좋은 남편을 만나서 아름다운 가정을 새로 이루기를 바란다고 기어이 때 놓으려고 하니까 큰 며느리는 오르바는 시 어머니 볼에 입 맞추고 자기 친정으로 돌아가고 나오미가 작은며느리 룻에도 권하여 돌아가게 하지만 내가 풍족하게 나와서 이렇게 완전히 망하여 전능자가 심히 괴롭게 하셨는데 내가 너희를 볼 때 마다 내 가슴이 더 괴로워 견딜 수 가 없다고 하면서 기어이 돌아가게 하는데 둘째 며느리 룻은 아예 마음 변하기 전에 맹세를 합니다

 


사실 룻이 아니라 할지라도 룻의 입장이 되면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어쩌다가 흉년을 만나서 모압 땅에 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죽고 또 아들마저도 모두 죽었지요 그리고 동서인 오르바는 돌아간 상황에서 나오미 앞에는 자신 혼자밖에 남은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돌아가겠어요

 


룻 자신마저도 돌아 가버리면 혼자 어떻게 쓸쓸히 본국으로 돌아가겠는가! 룻은 거기까지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변하기 전에 맹세를 해버립니다 내가 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나이다 죽는 일 외에 내가 어머니를 떠난다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위에 벌을 내릴 것을 원합니다’ 이렇게 맹세를 합니다

 


어머니 가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 머무는 곳에 머물고 어머니가 죽으시는 곳에 나도 거기 죽어서 장사 될 것이고 죽는 일 외에는 자신이 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니까 구약시대 사람들은 맹세를 하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어쩔 수 없이 룻을 데리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 왔는데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죠

 


옛날에 혼자 잘 살아 보겠다고 가난한 사람 돌아보는 것도 뒤로하고 모압으로 가더니만 남자들은 다 어떻게 되고 여인 둘만 돌아왔나? 동네 사람들이 흉을 보면서 수군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에 와서 보니까 사람이 먹어야 살지 않습니까?

 

 

김성윤: 예,

 

노우호: 그러니까 룻이 이삭을 줍기 위해 밭에 나갔습니다 이삭을 줍는 일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남자들이 일하는 밭에서 홀로된 젊은 여인이 이삭을 줍다보면 많은 남자들 중에는 희롱을 할 것을 예상 할 수 있지만 그런 부끄러운 것을 무릅쓰고 룻이 이삭을 줍는데 마침 이삭을 밭의 주인이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사람이고 엘리멜렉과는 가까운 친족이 되고 이런 후덕한 사람 집에서 이삭을 줍게 된 것이죠 룻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나라에 법이 있는데 어떤 가정이 어려움을 당하여 몰락하게 되었을 경우 가까운 친척이 그 기업을 다시 잇게 하고 가정을 다시 세우는 법이 있었는데 그것은 구약성경 레위기 25장에 그런 법(긍휼의 법)이 있습니다 젊은 룻이라는 여인이 자기 시어머니를 �아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고 시어머니를 생각하고 보아서의 밭에서 이삭 줍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현숙하게 일을 했는데 나중에는 긍휼의 법에 따라 룻이 보아서의 안방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아서와 룻 사이에서 ‘오벳’이라는 사람이 태어나게 되죠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새가 다윗왕을 낳았기 때문에 결국은 룻이 다윗왕의 할머니가 된 것이죠 이렇게 룻이 모압의 이방 여인 이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오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품어 주신 것이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복된 여인이 된 것입니다

 


김성윤: 성경의 파노라마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