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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구약의파노라마

72. 예레미야의 사역

72. 예레미야의 사역

 

 

 

 

노우호: 유다나라가 BC586에 포로되어 바벨론에 잡혀간 뒤 남은 백성은 에굽으로 가서 모두 죽어 버리고 예레미야는 황폐화 된 예루살렘을 거닐면서 슬픈 노래인 예레미야 애가를 기록하게 됩니다 예레미야서 17장 1절에 보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죄가 금강석에 철필로 기록되어서 지울 수도 없고 그들의 죄악이 단(하나님의 제단)에 새겨져서 돌이 킬 수가 없다 네가 만약 예루살렘 성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공과 의를 행하는 사람을 단 한사람만 찾으면 이 예루살렘 성을 면하여 주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정말 타락을 해도 철저히 타락을 한 것입니다

 

 

가끔 우리는 정치인들이 부패한 것에 대하여 분개하곤 하는데 정치인이나 지도자가 썩은 것은 차후 문제입니다 정직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그 사람은 선거로 갈아 치우면 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왕들이 부패 한 것보다 서민의 대중들이 부패했을 경우는 희망이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부패한 것은 어느 시대나 있어 왔습니다 정치인이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반적으로 썩어서 농촌, 시골, 어린아이, 소년, 소녀, 가정의 주부들까지 타락을 했다면 정말 희망이 없지요 그래서 예루살렘 거리에 공과 의를 행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단 한사람만 찾으면 내가 이성을 사하겠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상했으면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이렇게 철저히 타락한 이스라엘에게 1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예레미야가 하는 말
바벨론이 침략해 오면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사는 길이다 그것이 생명의 길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나 방백,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말을  어떻게 쉽게 믿겠습니까!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까 담대히 나가 싸우라고 한다면 믿기 쉬운데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 살 길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믿어야 됩니다 내 생각과 상식과 경험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를 때 내 생각을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고 이런 경우에 우리에게 참 믿음이 필요한 것이죠

 

 

김성윤: 그게 바로 신앙이고 순종이겠죠?

 

노우호: 그리고 믿음의 결정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내 생각을 포기하는 겸허함이 필요한 것인데 이해하기 참 어려운 일인 경우에도 단순한  어린아이 같은 믿음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바벨론으로 데리고 가서 70년 동안 교육을 합니다   교육기간을 앞으로 살펴 볼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로생활 70년은 허송세월이 아니고

 

아주 유익한 기간 이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소망도 있고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지만 포로로 잡혀가지 못하고 예루살렘에서 죽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얼마나 많았던지 눈을 뜨고 볼 수 없소 악취로 인하여 코를 막지 않을 수가 없을 만큼 그 처참한 장면을 글로서 표현 할 수 없어 시로 표현한 것이 예레미야 애가입니다 예레미야 애가에는 어찌하여! 라는 말이 몇 번 나옵니다

 

 

어찌하여! 라는 말이 히브리어로는 ‘에카’라는 말인데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는가! 성경에는 예레미야애가 외에도 여러 애가가 있지만
이보다 더 처절한 애가는 없습니다 왕자가 아버지인 시드기아왕의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왕은 두 눈알이 뽑힌 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귀족들과 대인들 방백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잡혀 갔고 청년 남녀들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에스겔 같은 희망이 있는 젊은 사람이나 똑똑해 보이는 귀족이나 청년들은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거룩한 성전은 모두 파괴되어 무너져버렸습니다 그 안에 금과 은으로 만든 기구와 기명들이 모두 약탈되었습니다. 거민이 많아서 더운 김이 훈훈하던 그 성읍이 처량하게 되어서
명절이 되어도 오고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호라! 열국 중에 공주 같은 성읍이 이제는 조공을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시온의 도로가 처량하고 절기가 되어도 오고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모두 대적에게 사로잡혀 갔습니다 골목길에서 장난하던 어린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대대로 간직해온 보물들은 모두 약탈을 당하였습니다 소년 소녀들이 피어보지도 못한 채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시온이 손을 펴도 위로 할 자가 없고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식물을 구걸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여 죽었습니다

 


밖에는 살육자의 칼이 아직도 난무하고 있고 집에는 치우지 못한 시체들의 썩는 냄새로 인하여 눈과 코를 들 수가 없습니다 눈이 눈물에 상하여 짓무르도록 울어도 아무도 위로할 자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길머리에서 양식을 구하다가 지쳐서 쓰러집니다 어린아이들이 어머니 품에 안겨서 배가 고파 혼미한 가운데 영혼이 막 떠나는 순간!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하는 말

 

엄마! 곡식과 빵이 어디 있는데? 하면서 숨이 끊어 집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우는 것이 아니고 피시식 웃습니다 아이가 죽었는데도 웃습니다 그리고 그 죽은 아이를 부엌으로 가져가 삶아서 식물을 삼습니다 여인이 어찌 자기 몸에서 난, 자기 손에 받은 자식을 먹으며 제사장들이 어떻게 그 성소에서 살육을 당하겠습니까! 예루살렘의 부녀들이 배가 고파서 자녀를 삶아서 식물로 삼았습니다

 

들개는 오히려 젖을 내어서 새끼를 먹이는데
예루살렘의 자비로운 부녀들이 무정하고 잔인하기가 광야의 타조 같이 되었습니다 발바닥으로 아직 흙도 한번 밟아보지 못한 부녀들이
욕보임을 당하였고 자녀들을 삶아 먹는 비참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말라 붙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빵을 구하나 떼어 줄 자가 없습니다 진수를 먹던 자가 길머리에서 쓰러지며 붉은 옷 색동옷을 입은 자가 이제는 거름더미에 엎드려져 있습니다

 


전에는 존귀한 자의 몸이 눈보다 깨끗하고 우유보다 희며 산호보다 붉고 그 윤택함이 마치 마광된 청옥 같은 청청한 피부와 얼굴이 이제는 숯보다 검고 그 가죽이 뼈에 붙어서 막대기처럼 되어 거리에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거리에서 호미하게 말라가던 여인들의 한숨소리는 어찌하여 칼에 죽지 못 하였던고 하다가 숨이 끊어집니다

 

 

대적이 유다의 각 성에서 부녀와 처녀들을 욕보이고 지나갔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적거렸지만 먹을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주림의 열기로 인하여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어졌습니다 장로의 얼굴이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노래소리가 영영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기쁨이라는 말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마음을 다시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이키겠나이다!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예레미야의 슬픈 노래는 이렇게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 ~ 이런 노래를 부르다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했는지 기록이 남아 않아 아무도 모릅니다

 


예레미야는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 애가서를 쓰고 학자들 간에는 열왕기상하서도 예레미야가 기록했다고 합니다 역사를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이스라엘백성의 죄를 알고 그들의 미래까지도 내다볼 수 있는 맑은 영혼을 가진 예레미야가 일평생 하나님의 심정을 외쳤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자도 믿는 자도 없어서 결국은 나라는 망하게 되었죠 그 때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죄가 작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방송을 통해서 혹은 전도자를 통해 길에 다니면서 애타는 심정으로 예수천당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고 축호전도를 하기도 하고 온갖 방법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고 있고 방송을 통해서도 전하려고 전파선교사들이 애를 쓰면서 전하는 것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서 입니다 앞으로 나라가 환란을 격을 것이고 미래에 큰 대 환란이 있을 것이고 마침내는 심판이 있을 것을 내다보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방송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참으시고 기다려주시고 우리에게 기회를 더 주셨는데 이 좋은 기회를 허랑방탕하게 환락으로 탕진하고 낭비하고 나면 우리도 하나님 앞에 서기가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예레미야서와 예레미야애가서를 읽고 오늘날 우리의 삶과 비교한다면 그때 그 옛날 사람들보다 우리가 더 많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을 돌이키려고 눈물이 많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레미야만 운 것이 아니고 예레미야 안에서 우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처녀 딸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인하여 내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리라! 예레미야 안에서 하나님도 예레미야와 함께 울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셨을 때에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그 날개아래 새끼를 모으려 한 것 같이 내가 너희를 모으려 한 적이 몇 번이나 되느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하면서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건강이 있고 젊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바쳐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는 일에 동참하고 쓰임 받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김성윤: 성경파노라마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