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말라기서의 비밀
노우호: 구약의 39권중에 제일 끝에 있는 말라기를 보겠습니다 말라기서는 신․구약 성경 중에서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책 중에 한 권 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말라기는 3장 11절에 있는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 복 받는다' 이것이 말라기 성경의 큰 주제인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말라기는 십일조 이야기 보다 정작 하시고자 하는 중요한 말씀이 많이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구약성경 전체를 살펴오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살필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따먹으면서 인간 세상에 불행이 오게 되는데 불이란? 삶이 고생이 되어서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깨어지게 되고 하나님과의 신뢰가 깨지게 되고 신뢰가 깨지니까 오해가 쌓이고 그래서 인간들이 하나님과의 간격이 생기고 거리가 생기고 장벽이 생겨서 하나님과 원만한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 계속 오해만 쌓이게 되어 결국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되는 불행한 역사가
구약전체에 흐르는 내용입니다
이런 세상을 바로 잡아 보려고 하지만 전능한 하나님이지만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하나님, 당신의 형상대로 지었고 인격으로, 자유의지, 선택의 자유를 주신 완전한 인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힘이나 능력으로 억지로 변화시켜 하나님을 믿게 만들거나 사랑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끝까지 하나님께서 인내 하시면서 대화를 통해서 인간들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까지 가야겠는데 도무지 인간들과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거나 듣지 않거나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성경을 기록해서 줬는데 또, 그 성경을 읽지 않고 읽더라도 깨닫지 못하니까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하고 오해가 쌓인 채 많은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셔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온 세계 사람들을 모두 상대하기는 벅차니까 1차적으로 소그룹인 한 민족을 택한 것입니다 처음에 아브라함을 택하고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이삭의 자손의 자손을 택하고 이삭의 자손 중에서 야곱의 자손 야곱의 자손 중에서 12지파를 모두 상대 하지만 그 중에서 특별히 레위지파와 유다지파를 중심으로 정치적으로는 유다지파 종교적으로는 레위지파가 중심이 되어 하나님과 사귐(교제)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조그만 유대나라가 마음대로 안 됩니다 1차적으로 1개 민족이나 1개 지파라도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만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선전하고 선교 할 수 있을 텐데 유다지파 하나도 제대로 안 되고 레위지파도 제대로 안 됩니다
그래서 언약을 맺어서 만약 언약을 지켜 행하면 온갖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관계가 시작되었는데 그 언약이 유명한 레위기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언약을 계속 지키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언약대로 살기로 하고 7년에 한번씩 율법을 낭독하고 가르치고 배워서 하나님 섬기는 것을 잊지 못하도록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념하게 하면서 그렇게 애를 태우시며 때로는 잊어버릴까 싶어서 하나님께서 이 큰 은혜의 역사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게 했어요 이야기는 오래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노래는 오래 기억하니까 노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못하도록 애를 쓰시는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까지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이방나라 우상을 섬기고 이방나라 종교를 본 받아 섬기고 이렇게 되니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고 부지런히 보냈습니다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를 보내고 성경에는 이름도 없이 그냥 '하나님의 사람이라' '여호와의 사자'라고 소개된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이름을 남기고 드러난 선지자 외에도 많은 선지자를 부지런히 보냈지만 그 때마다 선지자를 때리고 죽이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힘이 드셨든지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의 작은 이스라엘을 전능하신 하나님일지라도 마음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힘이나 능력으로 하면 간단하겠지만 사람은 인격이기에! 속을 썩이고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고 애를 태우시는 그런 장면이 구약성경에 비춰진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타락해 버린 인간들을 한번은 홍수로 심판하고 또, 온 세상에 흩어버리고 바벨론이나 앗수르를 이용하여 진멸해 버리고 그 중에서 쓸만한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잡혀가게 해서 70년 동안 여러 이적과 표적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고 다른 모든 신들은 가짜인 것을 몸소 체험하고 교육받고 돌아와서는 에스라 느헤미야를 통하여 성경을 읽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회개하는 것이 이제 잘 할 것으로 기대 하였는데 그런데 이런 마음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울면서 전했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했고 다니엘을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정말 참 신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체험 하였고 또 고레스 칙령에 의해 돌아온 사람들이 에스라, 느헤미야시대에 성경을 통독하면서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하나님의 율법이 이렇게 선한 것인 줄도 알고 그렇게 많이 경험하고 알았지만 그러고도 안 되는 것입니다
왜, 안 되느냐 하면 에스라, 느헤미야 같은 분이 세상을 떠나고 그리고 지도자들이 흐지부지 하니까 남은 백성들은 다시 율법에 대하여 무관심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조상들이 율법을 안 지켰다고 원망을 했지만 우리도 율법대로 해보니까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제사지내고 율법대로 산다는 것이 번폐스럽고 귀찮다고 하면서 형식적으로 하고 억지로 하다가 그나마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하나님께서도 이제 지쳐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부족한 것이 아니고
사랑 받을 대상이 자세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사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받는 것도 쉽지 않지만 사랑하는 것도
대상이 사랑스럽게 해야 사랑하기 쉬울텐데 이스라엘이 너무 심하니까 사랑이 충만하신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와 함께 하나님의 질투의 이야기와 하나님의 진노의 이야기가 가득히 차 있습니다 이제 돌아보면
아브라함을 불러서 시작된 선민교육이 1500년 지나갔습니다 모세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거의 1000년이 지나 갔습니다 이렇게 긴 세월동안 은혜와 사랑을 베풀고 가르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상태는 좋아지지 않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으므로 그런대로 신앙생활을 해 왔는데 학개, 스가랴, 에스라, 느헤미야, 여호수아, 스룹바벨 이 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까 그들은 종교적인 형식만 남고 진정한 신앙은 없어지고 십입조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의(義)와 인(仁)과 신(信)은 버린 것입니다 의로운 생활도 없고 인자한 긍휼의 사랑도 없고 믿음도 없이 형식과 억지로 마지못해 드리는 것이 되니까 하나님께 가증스럽고 오히려 제물이 곤비하고 부담스러운 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나타난 사람이 말라기입니다 '말라기'라는 의미는 '나의 사자' 천사나 여호와의 사자를 '말라크'라고 합니다 '말라키'라고 하면 '나의 사자'란 뜻인데 하나님의 사자가 하나님 대신으로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야기를 시작 합니다 그래서 말라기를 읽을 경우에는 말라기 3장 10절은 너무 잘 아는 내용이니까 제쳐두고 말라기 1장 1절부터 차근차근 잘 살펴보고 그 시기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영적이고 감정적인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알고서 그리고 구약성경의 역사를 다시 한번 상기 하고 아브라함부터 하면 1500년이고 모세로부터 하면 1000년이 되는데 그 긴 기간동안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가르치고 사랑한 결과가 말라기처럼 되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이야기 입니다
말라기 1장부터 4장까지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분위기를 잘 파악하고 그리고 어떤 감정으로 기록 되었는가!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감정적인 측면! 우리는 하나님의 감정적인 측면을 너무 무관심하게 지나왔는데 신약보다도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감정적인 측면을 무시해 버리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말라기 본문을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픈 사랑을 가지고 아파하고 계셨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데 까지 성숙해 질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김성윤: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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