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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구약의파노라마

99.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99.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

 

 

노우호: 지금까지 창세기에서부터 말라기 까지 살펴 왔는데 김성윤 아나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을 믿습니까?

 

김성윤: 아멘

 


노우호: 그렇다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김성윤: 창조목적은 우리와 교재하기 위해서죠

 

노우호: 예, 정말 중요한 대답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교리적으로 배운 것은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 창조했다고 배웠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영광 받으시기 위함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사람들로부터 영광 받은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별로 못 받으셨잖아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렸으면 좋겠고 그것이 우리의 이상이 되고 목표가 되는 것은 참 좋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창조 하셨습니다

 

 

김성윤: 짝사랑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죠?

 

 

노우호: 예,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이 필요합니다 사랑이 충만한데 사랑을 쏟을 곳이 없다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엄마의 젖이 불어 있는데 젖을 먹일 아이가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내게 사랑이 충만한데 내 사랑을 쏟을 곳이 없다면 그같이 슬픈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교재와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사가 되지 않고 사람이 된 것은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천사가 사람보다 더 영적이니까 사랑을 배우기가 더 쉽지 않겠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런데 천사는 연애편지나 아가서 같은 책을 읽으면 무슨 말인지 모를 거예요 천사에게는 다른 아름다움은 있지만 그런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우리는 천사의 형체를 잘 모릅니다 천사를 표현할 경우 날개 달린 어린아이를 그려 놓기도 하고 아주 예쁜 여자를 그려놓고 천사를 표현하는데 천사를 히브리어에서 '앙겔로스' 헬라어에서는 '말라크'라고 하는데 이들 용어에는 여성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천사는 모두 남성명사입니다 우리는 천사를 막연하게 동경하기를 예쁜 여자나 날개 달린 아기를 천사로 표현하지만 이런 모습은 성경에서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희망사항 이지만 사실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하나님의 사신(使臣)들 혹은 대사(代謝)들 성경에서 '그룹'이라고 하는 천사의 모습은 얼굴이 독수리 같은 모양이 있고 소 같은 모양도 있고 사자 같은 모양도 있고 어떤 천사는 사람 같다고 성경에서는 천사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독수리나 소 혹은 사자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사람보다 아름답겠습니까? 에스겔서에서 보여주는 천사의 모습은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난 천사도 있었지만 대부분 동물들의 모습이고 성경에 천사들이 정말 아름답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는 기록은 없습니다

 


사람을 만드신 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천사가 얼마나 좋겠나 하는데 천사가 사람을 부러워 할 것입니다
천사도 흠모하겠네! 란 가사처럼 천사가 사람을 흠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구체적이고 체험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천사가 아니고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아름다운 마음을 우리가 체험하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천사는 결혼 해본 일이 없고 연애 해본 적이 없고
사랑하므로 상사병이 나는 경우도 없습니다 만약 천사세계에 드라마가 있다면 주제가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천사들 세계에서는 끝내 배울 수 없는 사랑을 인간이 됨으로서만 사랑을 배워서 하나님을 배우는 길 이것이 '신학은 사랑학이다.'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이세상에서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고 질투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여성이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 질투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어릴 때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게 되지요 실상은 하나님이고 형상은 육신의 아버지이므로 육신의 아버지는 형상이고 하나님은 우리아버지의 실상이거든요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이 실상을 배워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장성해서 연애하고 사랑하고 질투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남자와 한 여자사이에서 생명이 탄생되는데 이것은 매우 창조적이죠(물론 우리가 창조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창조적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 아이를 향하여 사랑을 쏟아 붓기 시작하는데 아무 조건도 없이 기대할 것도 없지만 주고 또 주어도 부족한 사랑을 쏟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조건 없이 주고 쏟아 붓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우리가 직접 체험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친구들과의 아름다운 사귀고 우정을 나누면서
하나님의 친구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웃의 어려움을 돕는 과정에서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을 체험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사랑전문 대학이나 신학대학에서 배우는 것도 아니고 신비스런 체험을 통해서 특별하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우리 가정에서 가장 깊이 체험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성 간에 연애를 하면서 (심지어 미워하고 질투하면서) 부모가 되어 아이를 낳아 길러 보면서 자녀가 되어 부모의 한없는 사랑을 받으면서 사랑을 배우는 것이 정말 신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신비스런 복이 있다면 사람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사람이야말로 가장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잘 배울 수 있거든요 그래서 평범한 가정이라 할지라도 거기서 생명이 탄생되어 성장하면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이성간의 뜨거운 사랑을 하고 때로는 질투에 눈이 멀기도 하면서 부모가 되어 자녀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을 하면서  마침내 하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가장 신령하고 귀하고 영적인 것입니다 가정을 등한히 여기는 신학은 신학이 아닙니다 사회주의는 사회가 더 중요하고 향락주의는 술과 오락이 더 중요하고 네셔날리즘은 국가가 더 중요 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가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로만카톨릭(천주교)은 가정보다 케톨릭체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가정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도 중요하지만 가정이 더 소중합니다 가정이 천국의 축소판이고 가정이 천국의 모형입니다 가정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으므로 가정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하면 아무리 다른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을 배우는 것이 하나님 배우는 것이므로 '신학이 곧, 사랑학'이라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있는 힘을 다해 서로 사랑하고 자녀를 낳아 부모가 되어 아이에게 사랑을 쏟으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 할 수 있는데 까지 나아가야 성숙한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을 배워가야 되는데 잘 안 되므로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게 됩니다 다음시간부터는 신약으로 넘어 갈 것이므로 예수님 오시기까지 돌아보려고 합니다 구약시대를 돌아보면 아담이 긍휼을 입어서 자녀를 낳았지만 아담의 자손들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시대까지 아담의 자손들은 타락의 길로 치닫습니다

 


노아의 가족을 살려서 그 자손들이 번성했지만 그들은 다시 타락해버렸고요 아브라함을 선택했지만 그 후손들은 애굽에 살면서 완전히 애굽사람처럼 타락해 버렸습니다 요셉을 통하여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그들은 쉽게 잊어버리고 타락합니다 모세를 세워 애굽을 탈출시켜 노예로부터 해방을 주셨지만 역시 타락하고 맙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게 했지만 그들은 또 타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사들을 세워 능력을 베풀어 보지만 그들은 또 타락합니다 사무엘을 세워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보람도 없이 타락합니다

 


사울왕도 처음에는 잘하다가 곧 타락하고 다윗도 처음에는 잘하다가 뒤에는 실수를 많이 합니다 솔로몬도 처음에는 잘하다가 나중에는 타락하게 됩니다 르호보암 왕은 타락해서 못 쓸 사람이 되었고 여호사밧 왕이 잘해보려고 했지만 여호람, 아하시아, 아달랴, 등이 완전히 타락의 길로 달려갑니다 요아스, 아마샤가 선을 행하려 했지만 하나님 말씀을 알지 못하여 타락하고 맙니다 웃시야도 처음에는 잘하다가 타락하게 되고요

 


요담왕도 선한 일을 하려고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히스기야도 처음에는 잘하다가 끝에 가서 타락하고 히스가야는 므낫세를 낳아서 나라를 더욱 망치게 됩니다 그 뒤를 이은 요시야가 일어나 혼신을 다하여 개혁을 하려고 했지만 뒤를 잇는 여호아하스가 다시 악을 행하면
여호와긴, 여호와김, 시드기야 때까지 완전히 악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도 안 되고 능력을 갑절이나 더하여 엘리사를 보내도 안 되고 아모스의 말도 듣지 않았고 호세아의 호소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이사야의 권유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미가의 질책도 듣지 않았고 스바냐의 경고도 무시하고 요엘 선지자의 권면도 무시하고 예레미야의 눈물도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시키지 못했습니다 다니엘과 사드락, 아벳느고의 모범도 이스라엘을 바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에스겔의 강력한 설교도 그들을 새롭게 하지 못했습니다 학개, 스가랴의 책망과 격려도 그 때 뿐 이었습니다 마라기 선지자의 책망에도 말대꾸까지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보내는 것도 중지한 채 400년 동안 지나가게 됩니다 뜻을 돌이켜 용서하시고 용서하시는데 염증이 나신 것입니다 지쳐버릴 정도로 이런 역사가 구약의 역사입니다 400년 동안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고난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400년이 넘어서 하나님께서 결국은 한 사람을 예비하셔야 되겠는데 보낼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떤 여인의 태를 닫아서
아기를 낳지 못하게 만들어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 가문에 메시야에 앞서가서 외쳐야 되는 선구자(세례요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구약의 역사를 보면 타락의 역사입니다 건져놓으면 또 타락하고 일으켜 세우면 넘어지고 이렇게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가 구약성경의 내용이고 이제 말라기서 맨 끝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의 마지막에 대체 무슨 말로 마무리를 하셨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날 끝장을 내려고 했는데 하지만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라서 그렇게 못하시고) 내가 때가 되면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겠다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이키고 자식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할 것인데 만약 돌이키지 아니하면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는 아픈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정을 잘 이해하므로 신약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을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깨닫고 더욱더 성숙해 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까지 구약을 모두 마치고 다음시간부터는 예수님께서 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성윤: 지금까지 노우호 목사님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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