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어떤 부모가 자녀가 죽어서 영안실에 있었는데 그 아버지가 자녀가 죽은걸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이 그 아이를 감싸고 있던 침대와 침대보를 흠뻑적셨더라?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애통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든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흠잡곱싶어서 이 글을 쓰는것이 아니라 참 애통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차를 타고오면서 한번더 생각할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것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잘난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더 깨달은것이 듣는것의 소중함을 알게됬습니다. 듣는것의 소중함도 알게됬지만 말하는 자들의 중요함도 깨달았습니다.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다면? 누가 듣겠습니까? 들을사람이 없다면? 누가 구원을 얻겠습니까? 이 모든것이 만족해야 한영혼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것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니 내가 복음을 전할수 있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걸 들을수 있는 사람을 허락했으니 가능했던것이고 그가 들을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것도 또한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을 영혼이었기 때문에 그 상황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 모든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하나님의 역사라는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섬기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는것만큼 큰 축복이 없습니다. 자라면서 비록 많은 회의와 갈등을 겪게 되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안에서 자란 자녀는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키신다는것을 느끼게되는데.....옥한음목사님의 아들이 하늘의 언어에 대해서 반박하는 책을 낸것을 보면서 역시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자녀를 지키신다는 느낌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애통이라는 의미는 슬픔이라는 뜻일것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애통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것이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이 여김을 받을것이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 긍휼히 여기는 자? 그들이 누구일까요? 바로 애통함을 받은자이며 긍휼히 여김을 받은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긍휼히 여김으로서 구원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되었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이요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며 그것을 먼저 하나님의 자녀된 분들을 통해서 그 긍휼함을 느끼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때!!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야만 하는 저주의 상황에 처해있었을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분이 계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이 슬픈세상에 오셨습니다. 애통을 기쁨으로 바꿔주시기 위해서 그는 우리를 주안에 거하게 하셧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우리를 사랑하는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신 예수님은 세상을 향해 긍휼함을 베푸시고 세상을 향해 애통하셨습니다.
그것은 목자없이 유리하는 양같은 우리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 자녀가 죽는것 내 가족이 죽는것은 당연한 슬픔입니다. 내 이웃이 내 형제와 이별하는것 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것은 당연한 슬픔입니다. 당연한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당연한것으로 인해서 위로를 받는다는것은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물론 그런 슬픔속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긍휼함이 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는것은 아닙니다. 좀더 깊은 의미의 애통함과 긍휼함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는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우리의 애통함은 세상의 쾌락을 즐기는 자들을 향한 애통함이 있어야합니다. 참 기쁨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의 삶에 대해서 참된 애통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의 긍휼함은 우리를 향해 죄를 짓는 자들을 향한 긍휼함이 있어야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대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뺨을 때린 자를 향해 내 분노를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그를 긍휼히 여기며 반대쪽 뺨까지 댈만큼 우리의 마음은 세상을 향해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하게됩니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것!! 성경에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해라!!! 과연 가능할까요? 이것은 불가능하지만 주안에서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원래 원수된 자였고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였으며 하나님과 분리된 자였고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자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어찌해야 됩니까? 라고 고백하는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긍휼함을 베푸셨으니 세례를 받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함을 받으라고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셨으니 하나님의 그 사랑을 어찌 말로 다 형언할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이 애통하시고 긍휼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닮아야할 하나님의 모습 예수님의 모습은 바로 이런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슬픔으로 슬퍼하는것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슬퍼하고 애통할수 있는 모습 말입니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것을 강요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손양원 목사가 아니고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그런 마음을 갖기 힘들지라도 우리가 하루 하루 그런 마음을 품게되면 세상을 향해 애통하는 마음과 긍휼한 마음을 갖게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해야합니다. 우리를 원수처럼 여기는 안티기독교인들 인터넷으로 많이 만나는 안티들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기보다 긍휼함으로 애통함으로 그들을 바라볼수 있어야합니다. 그들을 향해 우리는 하나님의 그 슬픈 마음을 전할수 있어야합니다.
사람은 사랑받는것에 약합니다. 내가 사랑을 받는구나 나로 인해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슬퍼하고 애통해 하는구나? 누군가 나를 위로하고 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나를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구나? 이런걸 깨닫게되면 그 사람이 변화되어 하나님앞으로 나아가게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았을때 얼마나 많이 울고 슬퍼했나요? 내 자신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는걸 알면서 그걸 받게되니 그걸 깨닫게되니 얼마나 슬펐는지...그 슬픔후에 우리가 얼마나 기쁨으로 삶을 사는지 아시는분들은 다 아실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세상을 애통해함으로서 긍휼함으로서 기쁨이 생기게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사랑을 베푸는것 그들의 분노를 위로하고 긍휼히 여기며 슬퍼하는것 하나님을 알지 못해 죽음으로 향하는 가련하고 불쌍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슬퍼하는것.....주님은 우리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고 순종할때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를 긍휼히 여길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심판하려고 한다면? 믿지 않는자들을 공격하고 심한말로 그들을 상처주고 그들이 기독교인들을 공격하고 싸울때 맞서 싸우게되면? 하나님은 믿지 않는자들로 슬퍼하는것이 아니라 우리를 인해 슬퍼하실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잘 알았습니다. 이 세상이 심판받을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알기 때문에 지옥갈걸 알기 때문에 목자없이 유리하는 양들이 될걸 알기 때문에 예수님은 앎으로 애통해하셨고 슬퍼하셨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우리도 그 앎에 동참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세상이 심판받을걸 알게된 우리들입니다. 사람들이 지옥가게된것을 알게된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세상을 향해 애통해하고 긍휼이 여길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 죄를 지은사람 악을 행한 사람들을 향해 분노와 저주를 쏟아내기 전에 그들이 그럴수 밖에 없다는것을 깨닫고 그들을 오히려 애통해하며 위로하며 용서하며 긍휼이 여기는 마음 곧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도록 사모합시다.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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