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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나의 신앙 간증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우리는 병을 낫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그 병을 통해서 우리가 변화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돈을 벌고 싶어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가난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부하심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둠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밝은 빛이되어서 우리가 어둠속에 거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죽고싶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죽음으로서 새생명을 얻을수 있음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사랑받고 싶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 있을까요?  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숙제일것입니다.

그 숙제를 우리는 풀다가 다 못풀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로 부름을 받아 가게될것입니다. 그 문제의 해답을 우리가 몰라서 못풀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는것일까요? 

 

전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들도 세상사람들도  정답을 다 알고 있습니다.  나이가 조금 먹고 세상에 조금 더 눈뜬 사람들은  정답을 모르지 않습니다.  정답은 모두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자기들만 정답을 알고 있는냥?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너가 틀렸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은 곳이 바로 교회일것입니다.

 

아뇨?  너가 틀렸어! 가 아니라  내가 틀렸습니다.가 정답입니다.  이 정답은 또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정답?을 몰라서 우리가 헤맬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헤맬까요?  알면서도 헤매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우리가 그 정답을  알지만  그것을 풀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학문제를 대하면  공식은 몰라도  0,1만 적으면  최소 50점은 맞을수 있습니다.  정답이 0아니면 1이 절반은 되니까요. 찍어서 맞추는것이죠.  이미 정답은 대강 알고 있지만  그걸 풀어 낼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다 알지만 그문제를 풀어낼만한 능력을 가진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만약 존재했다면? 예수님은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숙제를 풀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가졌고  그 생명을 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생명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하고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행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구원받기위해서 할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고 방법입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예수님을 영접하는걸 거부할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포기해야하는 문제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영접할수 없습니다.  믿는자들은 이미 주안에서 십자가에  자기 자신을 못박아 죽은 자들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대해서 부활하여 자유로운 자들이 된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한 자들에게 바로 이런 열매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기를 말입니다.  주님과 함께 죄에대해서 죽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의에 대해서 부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할수 없기에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주셨고 성령님을 통해서 그것을 가능케 하셨습니다.  거듭나게 하심으로 옛성품은 죽고  이제 새로운 영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숙제를 풀수 없는 인간들에게 숙제를 풀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것을 듣고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도 어쩔수 없는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존심이 있어서 자기가  숙제를 풀려고 애씁니다.   가르치는 선생님이 없이는 절대로 스스로 문제를 풀수 없으면서  어려운 수학문제를 앞에놓고  그것을 자기 스스로 풀겠다고  머리를 싸매고 애씁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병을 낫게 해주시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병이 나은 이후의 삶을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삶으로 바꿔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허락하셨다면?  그 물질이 이웃을 위해  잘 쓰여질수 있도록 절제하고  나누어야합니다.  우리의 천성은 어둠을 좋아하지만  이제 하나님으로 인해  빛이 되었다면  어둠에 거할수 없이 이젠  세상속에 자신이 드러나야하니 숨어서는 안되며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서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이제 사랑하라고 부름을 입었고  그 사랑을 하게 하기위해  우리를 사랑해서 먼저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이 계시니 우리는 그분의 실천과 사랑을 본받아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할것입니다.

 

우리는 이 정답을 너무나 잘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것도 너무나 잘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행하지 못하는것은  바로  내가 스스로 할수 있다는 옹고집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것들을 행할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이것을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참된 포기와 내려놓음 죽음을 통해서  성령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야 할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수학공식을 풀어내고 만들어내신 예수님 그 예수님이 푼 방식과 그 길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답을 얻어낼수 있는 길을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되었습니다. 

 

그 공식을 세상에 알려야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 공식은  자연법칙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규칙과 법도 아래서에서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초월적이라고할지라도  하나님은 인간에게 초월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초월을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지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 자연속에  한 부분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부름을 입어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 자연계의 법칙을 벗어날수 없습니다.  숨을 쉬어야 하고  아프면 병원가야하고  큰병에 걸리면 죽을수도 있고  지진이나 홍수로 인해서 죽을수도 있고  교통사고로 죽을수도 있고.....

 

가끔 기독교인들을 보면 초월을 추구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면...OOO이 이루어져!!!  내가 기도하면 어떤 병도 치유할수 있어  내가 기도하면........

 

기도는 맡기는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면.....이 되어야하는것이 기도입니다.   요즘 기독교내에 불고있는 성령운동/은사운동/신복음주의 운동/신사도운동....이런 운동들을 보면  신유 은사를 강요하고  은사들을 강요하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대표적 프로그램이 바로 빈야드운동인데  이것이 알파코스로 포장되어서 현 기독교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들은  내가 기도하면.....이라고 속이고  당신도 사도가 될수 있다고  뻥을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를 기도로 고친다고  하다가 환자를 죽이는 뉴스들을 종종 경험하기도합니다.   병원에 대리고가 의사를 보여서 치유하면 나을수 있는 환자를 병을 고친다고 기도하다가 시간을 지체해서 죽여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국갔다고 행복해야 할까요?

 

병원에서 고칠수 있으면 병원가는것이 자연의 순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도하면 다 낫는다고 생각할수 있는데....기도시간에 차라리 빨리 병원에 모시고 가고  수술이 필요하면 수술실에서  약이 필요하면 약국에서  치료받아 건강해지는것은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것도 아닙니다.  가짜 신앙도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자기를 맡기는 것입니다.  나를 내세우고  능력을 내세우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하나님을 협박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  우리가 할수 없는  정답을  만들어 낼수 있는 공식을 따라갈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것이 쉬운것은  바로 주님이 먼저  그 길을 만드셨으며  우리를 홀로가게 놔두지 않으시고 성령님으로 동행하게 하셨음으로  우리가 그 길을 갈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