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은혜로운말씀/나의 신앙 간증

촛불은 기독교인의 이땅의 삶이 되어야한다.

촛불은  시의 제목으로도  좋은 소재가되는 물건이다.   촛불은  불의 의미보다  빛의 의미가 더 강하다.   불은 태우거나 요리하거나 할때 쓰이는 것이지만  촛불은  태우거나 요리할때보다  방을 환하게 비출때 쓰인다.   무엇보다 촛불은  그냥 빛만 내는것이 아니라  그 몸이 줄어드는데서 귀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글의 소재가 되기에 참 좋다.

 

자기 몸을 태워서 빛을 내는 촛불은  그 자체로도  감동을 주는 것이다.   성경말씀에  빛이 되라는 말씀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이 있다.  빛과 소금이 바로 기독교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삶을 왜  빛과 소금에 빗대어서 말씀했을까?  요즘은 빛하면  그저 전기를 이용한 형광등을 생각하기때문에  빛의 의미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과거 예수님시대에는 이 빛은 정말 소중한것이었다.

 

빛을 내기 위해서  기름을 쓰는 등잔을 이용했는데  촛불도  기름으로 만들어지는것임을 알면  이 빛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인가 타야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기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귀한 물건으로  미련한 다섯처녀가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이유도 게으른것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수 있지만  기름을 준비하기 위해서 애쓰고 투자하고 돈을 쓰는것에 대해서  아까워 했을수도 있다.

 

기름이 타야지만  빛을 낼수 있다.  소금은 녹아야지만 맛을 낼수 있다.  이 의미는 바로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세세상을 위해 살아야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것이다.  우리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어떤 고민을 하고 살고 있는가?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향해서  녹아져야하고  그리고 몸을 태워서 죽여야하는 존재들임을  깨달아야한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길은 딱 한가지 길밖에 없다 그것은 세상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서 우리는 목소리를 키워서는 안된다.  세상사람들은 목소리 큰사람들을 별루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사람들이 가장 감동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기독교인들은 바로 이런 헌신의 모범이 되어야한다.  우리에게  이렇게 살도록  예수님께서  미리 모범이 되셨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진것이다.  세상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몸소 지시고  우리를 위해서  죽음을 감당하셨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다.  부활은 새생명을 얻는것이다. 새로운 몸을 입는것이다.  새로운 몸을 입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한다.  우리가 어떻게 죽느냐가 바로  신앙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주님과함께 죽을것인가? 아니면  나 잘난대로 살다가 죽을것인가?  어떻게 죽을것인가?  우리는 고민해야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권력을 차지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킬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할수 있지만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쉬울거라고 생각하지만  권력은 결코  세상을 변화시킬수 없다는걸 우리는 너무 잘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자들의 많은 시험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권력을 만들어주고 대통령을 만들어주고 국회의원을 만들어주고  시의원을 만들어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권력을 얻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력을 사용하지 않고  자기의 안위와  권세를 위해서 권력을 사유하는경우를 너무 많이 볼수 있다.  이렇게 권력을 사유한 자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오히려  망령되이 일컫게되고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게 만들어버리는 일을 자행하는 경우를 또한 쉽게 발견할수 있다.

 

이 땅의 대통령이  장로이다.  장로가  촛불의 위치가 되어서 세상을 밝히고 자기자신을 죽여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상이 촛불을 들고 스스로 죽어서 장로가 깨닫기를 요구하고 있으니?  이는 기독교인으로서 정말 큰 수치가 아닐수 없다.  촛불이 되어서 세상을 밝혀야 하고  그럴수 있는 위치까지 기독교인이 올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상을 어둡게 만들고  어두운 세상이 싫어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나오게 만든것은  기독교인이라면 수치를 느껴야 마땅하다!!!

 

그런데  오히려 어둠을 더 탐하고  그것을 옳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어서 정말 가슴이 아프고  쓰리다.  특히  대형교회 목사들이 더더욱 그렇게 가고 있고  세상사람들이  이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목사들이  그것이 옳다고 말하고 있고  세상사람들은 거짓되고 사탄이고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틀렸고  자기들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니  자기들은 무조건 옳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하나님을 잘못알고 있는 탓이라고 밖에 말할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다스리라고 한것은 권력을 가지고 세상의 주관자가 되라는것이 아니다.  진정 세상을 다스리는것은  세상의 모든것을 포용하고  사랑하는것이다.  기독교인의  중심은  사랑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한다.  성경에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것은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현재 대한민국의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고 있는가?  세상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느끼고 있게 하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권력의 위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사단이니 다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것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다는것을 알아야한다.  이것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믿게 해서 구원을 얻게 하면 그것이 우리가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수도 있다.  과연 그렇게 하는것이 성경적인가?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

 

하나님을 믿는것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지 인간의 힘에 달려있는것이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믿게 할수 있다는것은 정말 교만중에 교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한이고  토기장이의 권한이다.  그런데  피조물인  토기에 불과한 인간이  어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자기들이 하겠다고 나서는가?   권력을 차지해서 그 권력을 이용해서  복음을 전파하겠다는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중에 교만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세상을 향해서 죽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은 자기가 살아서 날뛰지 않는다. 땅에들어가서 자기자신이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것이다.  죽지않는 씨앗은  새에게 먹히는것이 운명이다.  열매를 맺지 않고 그냥 썩어져서 사라지는것이다.   자기가 죽어야  싹이 나고  그래야 열매를 맺는것이다. 

 

죽으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시는것이다.   하나님이 햇빛으로 자라게 하시고  비를 통해서 먹여주시고  그리고  때가되어서 꽃피고 열매맺게 하시는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것이다.  나는 죽어서 이제 땅과 하나가 되었으니  그 이후의 일은 모르는것이 올바른 신앙인이 되어야한다.  내가 죽었다고 말하고  내가 열매를 맺었다고 말하는것은 정말  논리적으로 말이되지않고 하나님의 뜻과도 어긋나는것이다.

 

참으로  세상을 위해서  죽어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수 없는것이 기독교인의 삶이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에 나타나는 우리 기독교는 권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복음을 위해서 세상을 협박하고 세상을 괴롭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말  우리가 잘 쓰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말은 더더욱  비 기독교인들에게 반감을 주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말을 더이상 복음을 전파하는데 써서도 안되고 그런 마음을 가져서도 안된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면서 예수님처럼 세상이 우리를 몰라주고  우리를 죽이도록 내어주어야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서 복음은 열매를 맺게된다.

 

우리가 자랑하는 선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이다.  우리의  자랑은 십자가의 자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죽음을 담보한 신앙의 역사이다.   예수님을 위해서  죽음을 불사한 신앙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바꿀수 있는 가장 큰 무기인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믿음이 있다.  곧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두신 하나님의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 나라가 있으니 우리는 죽음을 기쁨으로 여겨야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서  우리를 비웃는 그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로인해 열매맺는 사람들이 생기도록  하나님의 역사  성령님의 감동의 역사가 있도록 해야한다.  우리가 죽은후에 하나님이 일하실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를 맡길수 있는 겸손이 필요한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를 원하신다.  참 겸손은 바로 이런것을 말한다.   대한민국 기독교는 대형교회를 통해서  권력을 지향한다.  큰 교회에서 큰 목회를 하는 목회를 통해서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고 있고  권력을 만들어내고  그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고 통제하려고 한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독교의 정신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권력지향적 신앙을  하루 빨리 버려야한다.  기독교인에게 필요한것은 촛불이다.  등잔불이다.  자기 자신을 태워 세상을 비추는  그런 용기가 필요한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것은  소금이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녹아져야한다.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삶이 되어야한다.  세상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발견할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라져야하고 예수님이 나타나야 한다.

 

예수님이 나타나는것은 바로 내가 죽을때 가능해지는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세상을 향해서 순교할것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세상을  힘으로 권력으로  누르는것이 아니라  순교함으로서 세상이 우리를 감당하지 못하도록 하기를 요구하신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살아야할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십자가를 진다고 하면서  권력을 추구하는것은  기독교의 정신과 위배된다.

 

기독교인들은   광화문에  모여든 촛불을 향해  사단이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광화문에 모인사람들은 어두워지는 세상을  밝히기 위해서 촛불을 든것이다.  이 촛불앞에서 우리는 더욱더 겸손해져야한다.  그리고  부끄러워해야한다.  우리가 들지 못하는 촛불을  저 세상의 사람들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더이상 대형교회도 권력도 추구하지 않고  진정 세상을 향해서 겸손히 낮아지는  교회를 소망해본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