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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개혁해야할신앙

[스크랩] 저는 큰믿음교회에 정말 안타까운건? 왜 구원문제에 매달려있느냐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를 잘 읽어보세요!!  그 앞뒤 문맥또한 정말 중요합니다.

 

사도행전 4장  36절 37절말씀입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 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그리고 5장에 가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당시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은 식민지국가입니다. 로마의 식민지였지만  이스라엘의 단독 정권을 가지고 있었던 시대였죠.  이 시대 상황을 잘 알고 있지 못하지만  식민지라고 함은 자유가 억압된 상태였을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식민지시대를 살아봤기 때문에 너무 잘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은 가난했고 힘들게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많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카타콤 같은 곳에서  숨어서 신앙생활하고 핍박과 박해를 견디어야 했습니다.  제자들도  전도를 했지만  많은 고난이 있었고  또 순교도 할정도로 힘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죠.....

 

교회들마다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당시 헌금의 방식은  잘알듯이  자기가 가진걸 다 내놓는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 내놓은것을  서로 공평하게 분배하여 나누어 갖는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이 그것을 다 챙겨가거나  교회가 그걸 선교로 다쓴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시대상황과 많이 다르다는걸 아셔야합니다.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이 내놓은 그 재물들로 인해서  굶주림에서 벗어날수 있었고  부자들은 자기가 가진것을 다 내놓아서 공동생활을 지탱하는데  그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인것입니다.  아무도 부자가 없고 아무도 가난하지 않는 그 생활이 바로 교회였던 것입니다.  지금처럼  교회가 부자에게 상석을 주고 가난한사람 냄새나는 사람은 구석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 4장 32절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바로 이런 모습을 보고  정말 너무 좋아서 반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동해서 자기의 재물을 내어놓으려고 결심하고  그것을 내어놓았던것입니다.  문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전부 다 내어놓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내가 가진것중에서  일부를 내어놓아야 겠다고 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것을 내어놓는것을 보니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한것입니다.   그러나  결심은 했지만  가진것을 내어놓는다는것이 지금이나 그때나 솔직히 쉽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그렇게 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다는 아니고 반만 내어놓은것입니다.  물론 거짓말을 했죠. 그것이 다라고....그래서 하나님을 속인죄로 죽게되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가지고 지옥에 갔다고 생각하는 부류가 있어서 문제입니다.   저는 그들이 지옥에 갔는지 안갔는지 모릅니다. 이문제는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성도들에게  교훈이 되게 하려고 하나님이 이렇게 했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 시대사람들을 위해서 쓴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을 위해서 쓴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돈을 사랑하는것에 대해서 말했는데  제가 말한것이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돈을 필요로하고  돈을 좋아합니다.  돈이 할수 있는 힘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돈이라는 자체를 좋아하는것이 아니라 그 힘을 사랑하고있습니다.  하나님과  돈을 같이 섬길수 없다고 말하는것은  하나님의 힘과  돈의 힘중에서 어느것을 믿느냐?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까?  아니면 돈의 힘을 믿습니까?  현실에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돈은 눈에 보이니 사람들이 돈을 쫓아가는것입니다.   돈의 힘 그 능력을 사랑해서 돈을 가지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제가 돈을 사랑한다고 말한 그 단어하나에  집착하지 마시고  그 내용을 보셔야합니다. 

 

제가 그렇게 쓴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큰믿음교회 성도님들이 가만히 보니  단어하나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라는 단어하나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옥/천국 이런것에 왜 이렇게 집착하고 사는지?  그래서 제가 일부로 그랬습니다.  돈을 사랑하는것이라는 그 단어에 집착하지말고  내용을 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것은 돈으로 살수 없는것입니다.  돈이 할수 있는 것이 있지만  할수 없는것이 더 많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강요하기 이전에 돈을 잘 써야한다는 것을 말하는것입니다.  교회가 성도님들에게 십일조를 강조하는것은  그 의도가 정말 옳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헌금방식은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실수해서 목숨을 잃었던 것처럼  전재산을 다 내어놓는것이 신약의 헌금방식입니다.  그런데  다 내어놓으면  사도들이 다 가져가는것이 아니란말입니다.  그것을 쪼개서  형제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현재 교회가 십일조를 내어놓으면? 교회가 다 그것을 챙겨가지? 가난한 성도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나눠줍니까?  가난한 성도는 교회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게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쓸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큰 건물을 짓고  교인들끼리 회식하는데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저는 교회안에서 회식하는 시간들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 회식비용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게 제 사고방식이죠!!  좀 남들에게 싫음을 당하지만  가난한사람들에게 돈주면 더 바란다고 말하는건 정말 흉악무도한 사람들이나 하는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할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를 묻지 않고 도와야 하는것이 옳바른 모습인데  돈을주면 더 손벌린다? 이런식의 사고방식은 하나님이 아닌 사단이 주는 생각입니다.

 

교회는 돈이 할수 없는 일을 해야합니다.  그것은 돈이가진 힘을 뛰어넘어야 하는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 시대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교회가 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누는 것입니다.  목사가  그 오병이어를 다 먹어버리면 끝나지만 그것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면  제자들이 또 떼어서 이웃에게 주면  이웃이 그것을 또 떼어서 나누어 먹으면 넘치는것이 바로 오병이어의 교훈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교회가 사업해야한다고 몽땅 먹어치우지않습니까?  교인들이 교회 헌금하면서  교회가  교인들의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헌금가지고 축복해서 100배넘는 더 많이 받으라고 축복기도해주지 않습니까?  100배 더 받으려고 헌금합니까?  저는 그렇게 헌금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헌금한것이 유익하게 쓰여질 뿐입니다. 

 

차라리 헌금하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서 쓴돈이 더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매년 200만원 가까이 간식을 사주고 그들에게 그돈을 썼는데  아이들이 저에게 갚을수 있는 능력이 없기때문에 바라지 않고 그들을 위해서 아끼지 않았습니다. 돈이 없을때도 있어서 못쓸때도 있었지만....십일조 하고 땡 헌금 안해도 되..가 아니라  더 많이 썼던것을 기억합니다.

 

큰믿음 교회 성도님들에게 정말 부탁드리는것은  다른것이 아닙니다.  단어 하나에  집중하지마세요!!  성경은 자꾸 단어하나에 집중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성경의 깊은 의미가 무너져버리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심판받은것에 대해서 너무 집착하지마시고!!  그 이전에 나온  기독교인들의 공동생활이 어떠했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맞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교회에 바칠돈을 감추어서 죽었다 그러니 너희도 교회에 낼 헌금을 감추지 마라!! 심판받는다 이런식의 가르침이 아니라   요셉이라는 사람  곧 바나바가  그 재산을 다 팔아서 제자들에게 가져왔다는것을 오히려 더 많이 가르쳐야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잘알면서  바나바는 잘 모르는게 현실아닙니까?   이게 교회들의 가르침의 현실입니다.  교회들은 바로 가르쳐야 해요!!  신약에서 십일조는 예수님이 말씀하신것 외에는 나오질 않아요!! 그런데  요즘 목사들은 십일조를 엄청 강조하고  말라기서의 말씀까지 끄집어 내어서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합니다.  전 하나님 시험할수 없어요. 제가 하나님을 너무 잘 속이고 있기 때문에  한달에 얼마를 버는지 정확히 알수 없는데 어떻게 정확히 십일조를 합니까?  그런데 십일조보다 더 많은 돈을  아이들과 교회를 위해서 써요!! 충분하지 않나요?

 

구원과 천국 회개에 대한 문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외쳤습니다. 그것은 세례요한이 처음 외친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세례요한이  메시아가 올것을 예비하여  미리 외쳤기 때문이고 예수님은 바로 자기가 그 메시아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하기 위해서  똑같이 외친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로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고  세례요한이 신들매도 풀수 없다고 말했던 그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임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것입니다.

 

이런 단어 하나를 끄집어내어서  회개하는것이 구원받는데 가장 필요하다고 말하면 정말 할말이 없어지는것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대속의 제물로 오셔서 우리의 죄로 인해 죽으셨다는것을 깨닫고 믿게 하는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하지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제일 잘 하는 말이  "누가 나대신 죽으라고 했데"라는 반문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웃고 맙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걸 믿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눈물흘리고 회개하고  예수님이 죄에 대해서 죽었으니 이제 의에 대해서 살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을 지키려고 애쓰는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이 세상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니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라고 하신것처럼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세상사람이 뿐입니다.  그래서 그는 가시떨기 밭을 가진 사람인것처럼 열매를 맺지못하고 심판을 받게되어 있는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해주셔서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주신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그것을 믿는 좋은 밭 곧 하나님의 나라의 밭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을수 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연히 자기의 과거의 죄와  우리의 원죄에 대해서  돌이키고  마귀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로서 세로운 삶을 얻게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마귀권세잡은 이땅에서 비록 살고 있으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처럼 하나님의 뜻과 그 의를 구하며 그의 나라를 위해 이땅에서 자연스럽게 의를 행하며 착하고 바르고  빛으로서  소금으로서 살아가는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살라고 하신것은  위에 성경말씀처럼 바나바처럼 살라고 하신것은  바로  사도행전 5장 14절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말씀처럼 우리가 그렇게 살때  주께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큰믿음교회처럼  완전한 의를 행하라?  온전한 십일조를 해라!!  습관적 죄를 짓지마라!!  잘못한 지체가 있으면 찍어서 버리라 이런식의 가르침이 아니라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라!!!  그냥 이렇게 한마디 하면 충분한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라  그런데 만약 그렇게 살지 못해도 하나님이 너희의 부족한것을 다 알고 이해하고 있으니  최선을 다해서 살아라   5달란트 받았으면  5달란트를 남기고 1달란트를 받았으면 1달란트를 남기는 그런 삶 곧 최선을 다해서 자기가 가진 재능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라!! 그러면  너희로 인해서 많은 죄악속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앞으로 나아올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교회로 부른것은 바로 우리 때문이 아니라  죽어가는 이웃때문인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를 모든 만국의 아버지로 세운이유는 아브라함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통해서  많은 이방사람들 이웃들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른것입니다.

 

우리를 부른이유도  우리를 구원하기위해서가 아니라  죽어가는 저 이웃사람들 불쌍하고 저주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를 먼저 부르신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구원문제에 매달려서?  온전한 의를 행하기 위해서 죄를 짓지 않기위해서 무슨 애를 써야하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불러서 자녀 삼아주심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초보입니다.  이 초보적 신앙에 언제까지 매달려서  어떻게하면 구원을 잃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더 하나님의 뜻을 행해서 이땅의 어둠에서 빛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불러올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는것 아닙니까?

 

지옥에가는 크리스찬들이라고  그들을 향해서  괜한 오해살만한 발언을 하지 말고   차라리  너희의 의를 통해서  이 불의하고 어두운 세상을 밝혀라!!! 이렇게 말하면 어떻겠습니까?  말이라는게 그렇습니다.   단어하나에 집착하면? 더 진보를 이룰수 없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라면 우리는  넓게 봐야합니다.  산위로 올라가면  온세상이 넓게 보이듯이  우리는 산아래서  좁은 길만 보고 가지말고  좀더 높은 곳에서  신앙의 경지에 올라서 세상을 보고 이 세상을 밝힐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합니다.

 

세상은 저주받았고  불의하고  타락하고  심판을 받을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저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이 먼저 부르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준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저 저주받은 세상 불의하고 타락한 세상을 우리가 밝히고  소금이 되어서 저들의 부패를 막고  세상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르치도록 우리를 먼저 부르신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부름을 알면  악을 행할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서  나도 저런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해야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바나바를 보고  전재산을 바칠결심을하고 사도앞에 나온것처럼 우리가 바나바가 된다면  많은 세상사람들이  예수님앞으로 나오게 될것입니다. 

 

성경을 볼때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지 말고  바나바를 볼수 있는 눈을 가져야합니다.  구원 회개에 집착하지말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의 자녀로서  착하고 의롭고 바르게 사는것에 조금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이 젖을 먹는 관심에서 벗어나  더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을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소망합니다.

 

큰믿음교회는  큰믿음이 전혀 없는  아주 외소한 믿음 어린아이 젖먹이같은 믿음으로  그것이 전부인냥 매몰되어서 성장하지 않고  자폐아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변목사가 옳바른 목회자가 아님을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그가 사이비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장난하는 목사임에는 분명합니다.   성경을 가지고 성도들을 혼란케하고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것은  목회자로서의 자격 미달입니다. 

 

큰믿음교회가  정말 큰믿음을 가지려면  성경을  폭넓게 보도록 하는 시야를 갖추어야 할것입니다. 그 교회 성도님들도  변목사의 그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더 큰 시야를 가지기를 소망합니다.  단어하나에 집착하거나  한 문장에 집착하지말고!! 성경 전체를 잘 꿰뚫고 사고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발견하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정말 소망합니다.

 

 

 

출처 : 큰믿음교회이단성연구
글쓴이 : 신재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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