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12절~13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3장 5절~8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디도서 3장 5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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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이라는 말은 곧 거듭남이라는 말과 동일한것입니다. 거듭난다는것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첫번째 생명이 아닌 영이 새롭게 태어나는것을 의미합니다.
중생을 얻는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음입니다. 그것은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중생이라는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땅에 태어날때 곧 중생하기 이전에 부모님으로부터 육신의 생명을 얻게될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땅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선택할수도 없었고 나라도 선택할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생명에 관한한 권한이 하나도 없다는것입니다. 우리의 심장을 우리 맘대로 멈출수 없고 심장이 뛸때까지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중생이라는것도 동일한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할수도 없고 그렇다고해서 그것을 거부할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태어난다는 의미는 바로 나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우리는 할수 없으나 하나님은 할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믿음을 말하고 믿음의 열매를 말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믿음의 열매가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그 말에 대해서 저는 이의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어차피 인간들은 다 죽은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산믿음을 가진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중생한 자들입니다. 그럼 중생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 이름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럼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택함받은 자들이고 성령님께서 생명을 준 자들입니다.
곧 산믿음을 가진 자들은 성령님께서 주신 생명을 가진 자들이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죽은믿음을 가진 자들은? 그 안에 생명되시는 성령님이 없다는것입니다. 중생하지 않아도 지식적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양심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습니다. 믿는자들의 열매와 믿지 않는 자들의 열매 곧 산믿음을 가진 자들과 죽은 믿음을 가진 자들의 차이점을 우리는 이땅에서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공자의 말씀들을 읽어보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과 거의 흡사하고 동일한 말을 하고 있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논어나 중용이나 장자의 책이나 모든 훌륭한 선생들의 책들은 성경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동일한 가르침을 하고 있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공자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의 차이점은 바로 중생입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는가? 안입었는가의 차이점인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되고 믿게되었는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고 단지 양심에 따라서 살고 있는가?의 문제인것입니다.
누가 중생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때 우리는 그것을 알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문제라고 해도 자신은 스스로 그것을 알수 있습니다. 내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스스로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판단은 예수님을 우리가 구주로 영접했느냐? 안했는냐의 문제입니다. 또하나 우리가 영접한 예수님이 성령하나님이 온전히 가르쳐준 예수님이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면 예수지? 다른 예수가 있느냐? 라고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라고 질문하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당신은 어떤 예수님을 믿고 계십니까? 라고 질문을 던지면 대답하기 귀찮아서 대답하지 않을 성도님들이 많이 있을것입니다. 물론 목회자님들은 지식적으로라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실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성령하나님이 바르게 가르쳐준 예수님이냐? 아니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온전한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그 행위도 온전할것이고 살아있는 믿음을 가질것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예수님을 믿고있지 않다면 그 행위도 온전하지 못할것이고 죽은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깨닫지 못할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은자이고 긍휼을 얻지 못한자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살아있는 자라면? 하나님의 긍휼을 깨달을것이고 산믿음을 소유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령님의 생명을 주시는 역사로 이미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망했다고 말하는데 정말 망했는지? 안망했는지는 우리가 판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누가 중생했는지? 중생하지 않았는지? 죽은믿음을 가진자인지 산믿음을 가진자인지도 남이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땅투기 하면 죽은 믿음을 가진자다?라고 말할수 없고 예수님 믿으면서 주식투자하고 다단계 사업한다고 해서 죽은믿음을 가진자다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예수님 믿으면서 돈을 사랑하는것에 대해서 죽은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행위가 없으면 죽은 믿음이다?라고 판단하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행위를 수반하지 않고 오직 은혜로 말미암음이기 때문입니다.
목사들은 성도님들이 선한 행위를 하지 않아 죽은 믿음을 가져 심판을 받을수 있다고 설교하기 이전에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설명하고 가르쳐야 할것입니다. 곧 성령하나님이 가르치는 예수님 중생케 하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모르면서 선한행위를 강조하는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언약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유대땅 베들레헴에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구별할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9장 15절 말씀대로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믿는자들 곧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는 예수님인지 아닌지를 구별할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천주교는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천주교는 사탄의 종교로서 그들이 지니고 다니는 십자가지팡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은 것에 대한 승리의 표시인것이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십자가지팡이를 들고다니는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은 예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지만 그들은 정작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믿는 예수님은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아닌 태양의 아들 곧 바알이고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마리아 곧 마돈나를 의미하는 태양신의 아내를 숭배하는 자들이라는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이 과연 천주교에 역사하실까요? 저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천주교는 우리가 가진 성경책에 더해서 77권의 성경책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여호와증인은 성경책을 변조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것을 감추고 있고 수없이 많은 이단들은 성경을 변조하여 예수님을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양태론은 어떻습니까? 양태론에서 예수님을 바르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성령님을 바르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런데 수없이 많은 목사님들은 예수님을 양태론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배운 성도님들이 과연 성령님의 바른 역사속에서 중생할수 있을까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산 믿음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까요? 물론 성령님의 역사로 가능합니다. 그것은 창세전에 택한자들은 구원하실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교회의 개혁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개혁해야 할것은 행위 곧 순종이나 믿음의 열매가 아닙니다. 이것은 순서가 틀린것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믿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중생의 의미조차 알지 못하고 바르게 가르치려고 하면? 듣지 않는 교만한 자들이 교회에 얼마나 가득한지 모릅니다. 알려고 하지 않고 알려주어도 듣지 않습니다. 자기들의 믿음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죽은믿음을 가지면 심판을 받으니 산믿음을 갖기 위해서 행위가 필연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하는것은 우물에가서 숭늉찾는것과 다를것이 없는 것입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문제가 바로 이런 문제였습니다. 교회안에서 신앙문제로 서로 교제하고 나누고 대화하는것은 금기시 된다는 것입니다. 목사의 설교가 전부일뿐? 성도님들끼리 모여서 신앙의 문제 믿음의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나누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해보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교회안에서 왕따였던 것입니다. 세상돌아가는 얘기들은 서로 잘하면서 왜 성경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입을 봉하고 막아버리는 것입니까? 서로 대화를 하고 성경을 더 깊이 알수 있도록 서로의 생각들을 나눠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하는것이 고리타분한것인냥? 서로 대화하지 않고 혼자 스스로 알아가야하는 문제는 정말 심각한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제대로 가르치는것도 아니고 성도님들끼리 서로 교제하며 바른것을 알수 있도록 나가는것이 아니라 시정잡담으로 교제의 시간을 웃음으로 넘기고 신앙얘기를 하려면 왕따시켜버리는 이런 교회의 현실속에서 저는 과연 성령님이 이 교회에 역사하고 있는지? 항상 의문을 갖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교회의 개혁은 바른 예수님을 바르게 가르치고 성도님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수 있도록 서로의 가진것을 내놓고 대화하고 틀린부분은 수정하고 좀더 차원높은 신앙으로 자랄수 있도록 돕고 애써야 한다는것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교회 개혁은 아무리 말해도 아무리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도 해결될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믿음은 행위가 아닌 은혜이고 이 은혜를 깨닫는것는것이야 말로 진정한 은혜인것입니다. 곧 나는 아무것도 할수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히 감사하게 받아들이는것이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의 순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받아들일수 밖에없음을 인정하는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구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서 이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된다면 그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되는 기쁨을 누리게 될것입니다. 이것은 행위가 아닌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으로 된것이니 이 은혜를 입은 자들은 더이상 죄아래 거하지 않을것이고 죄를 미워할것이고 죄를 싫어할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안에 거하려고 애쓸것이고 하나님이 명령한 선한 행위를 하기위해서 힘쓸것입니다.
이는 당연한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한것을 안한다고 교회 개혁을 부르짖는다고 개혁되는것이 아닙니다. 이 당연한것을 알수 있도록 가르쳐야 함에도 가르치지 못하니? 교회들이 이지경 이꼴이 되는것입니다.
천주교는 오히려 잘못가르치면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선한 양을 쓰고 있으나 결국 그 속은 노략질하는 늑대이니 선행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죄를 신부에게 고백함으로서 죄사함을 얻는다고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으니 어찌 천주교에 구원이 있겠습니까!!
비록 겉은 선해보일지라도 천주교는 그 속은 악으로 가득차 있고 교회들은 비록 악해보일지라도 바른 예수님을 가르치고 있으니 선으로 가득차있는곳이 교회들입니다. 교회들이 열매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죽은 교회라고 말할수 없는것입니다.
열매가 있다고 해서 산교회가 될수 없듯이 열매가 없다고 해서 죽은교회가 아닌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의 열매는 겉으로 드러나는 고차원적이고 거대하고 위대한것이 아닙니다. 전재산을 바쳐서 순종하고 내가 가진것을 다 내놓고 선행을 하는 그런것이 아닌것입니다.
우리의 열매는 오래참는것이고 충성하는것이며 절제하는것이고 온유한것이고 .....등등 그리고 작은 소자에게 물한잔 밥한그릇 대접하는것이고 오리를 가자고 하는 자에게 십리를 동행해주는것이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선행을 해도 드러나지 않는것이 바로 우리가 맺고 있는 열매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알게 모르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다 열매를 맺고 살고 있습니다. 이웃의 불의를 보고 오래참고 분을 내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중생한 자인것입니다. 전재산을 바치지 않았다고 가난하고 불쌍한자들을 돌보지 않았다고 교회들이 죽은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수 없는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가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히 행한자들이라야 천국에 들어갈수 있다면 그것은 작은 소자에게 한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한것이니 우리는 선행을 안하는것처럼 느껴질수 있지만 결국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미워하고 있고 그 미움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고 참고 견디고 인내하고 있으니 이들은 모두 산믿음을 가진 자들인것입니다.
중생한자들은 거대한 일을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긍휼함을 입은 자들이고 그 긍휼함대로 세상을 긍휼히 여기는 자들인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것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음이니 하나님이 세상을 용서하기 위해서 그 아들을 죽이신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용서하고 우리를 죽이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중생한 자들의 삶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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