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 자유를 말하는 사람은 신앙을 잘못 오해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신앙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에 거부할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말하고 지옥가는것도 자유고 천국가는것도 자유라고 할수 없는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만약 신앙에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존재할수 없는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토기장이이시겠습니까!
하나님이 토기장이요 우리가 토기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쓰던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것입니다. 가끔씩 우리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산다고 말을 하는데? 이런말은 쉽게 쓸수 없는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에 대해서 저도 자주 글을 씁니다. 그러나 제가 쓰는 글에서의 순종은 결코 거대하지 않습니다. 고작 작은 소자에게 물한잔 주자는 말밖에 안합니다.
헌금을 얼마하고 시간을 얼마 투자하고 기도를 얼마하고 예배를 천번 드리고 주일을 성수하고 어떤 틀에매인 그런것에 대해서 저는 말하지 않습니다. 고작 하는 말은 남편사랑하기를 예수님을 사랑하듯이 아내사랑하기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것처럼 하라는 말정도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것도 못하면서? 더 큰것을 요구합니다. 내가 천번 제사를 드렸으니 솔로몬과 같은 부를 주시옵소서. 아니 지혜와 부를 다 같이 주시옵소서? 혹시 이런것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니계시겠지요.
우리가 신앙에는 자유가 있다! 그러니까 천주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상관하지말자! 라고 말하지만 이말은 사단이 하는 말임을 잘 알아들으셔야합니다. 신앙에 자유가 있다 그러니가 우리를 건들지마라! 이말은 복음으로 우리를 괴롭히지 말라는 사단의 음성이라는것입니다. 참된 복음을 전파하면 어떻게 됩니까? 마귀가 쫓겨나게 됩니다. 마귀가 싫어하게 됩니다. 마귀가 싫어하는 그 음성이 바로 복음인것입니다.
마귀가 듣기 싫어하는 복음을 듣지 않으려면 바로 서로의 신앙을 간섭하지 말자는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불교는 불교대로 천주교는 천주교대로 기독교를 간섭하고 기독교를 못살게 굽니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릅니다. 기독교인들도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기독교를 간섭하고 있지 않는것처럼 보이지만? 진짜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신복음주의자들을 이용한 기독교 파괴운동/이슬람을 이용한 예루살렘 파괴운동/안식교와 몰몬교 여호와 증인등 기독교 이단들을 이용한 기독교인들을 유혹하여 기독교의 전파를 막는 사단운동/ 수없이 많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우리 기독교인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신앙에 자유가 있으니 간섭하지말자!!
물론 법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서로의 신앙을 간섭해서는 안되는것이 성문법입니다. 그러나 영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공중권세 잡은 자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과의 전쟁인것입니다. 영적전쟁아래 있는 우리 인간은 신앙의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선택의 권한이 없습니다. 선택의 권한은 창조주 하나님께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든지? 아니면 버림을 받아 마귀의 자녀가 되든지?입니다. 그런데 택함을 받은자들은 버림받은자들을 생각하며? 왜 하나님께서 저들을 버리셨을까?라고 말하고 버림받은 자들은? 택함받은 자들을 향해서 왜? 하나님은 나를 버리고 저들을 택했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들이 아닐수 없습니다.
왜? 깨닫지 못할까요? 성령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은자들은 모릅니다. 하나님이 왜 인간들을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는지 택함받지 않은 자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복음을 들었지만 그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썩어질것을 찾고 결국은 구원받지 못하고 영적인 죽음에서 영원한 죽음으로 향해가고 있는것입니다.
택함을 받은 자들은 교만해서는 안되는것입니다. 버림받지 않은것에 대해서 우리는 정말 감사할것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도 똑같이 유기된자들처럼 버림이 될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내가 세상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믿기로 했으니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것이라고 할수 있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렇게 말하는것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없이는 구원이 없기에 하나님을 택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구원이 없기에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것으로 감사하여 영광을 돌려야 마땅한것입니다.
미국에 가고 싶다고 다 갈수 있는것이 아니요 비자를 받아야 미국에 가는것처럼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고 해서 다가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자들만 갈수 있는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자들만 하나님의 허락을 받을수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하시고 사랑이 많으시니 하나님께 구하여 천국을 달라고하면 하나님이 천국을 주신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람의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것을 주는 것처럼 하늘의 아버지께서 그 자녀가 달라고 하는데 안주실 분이 아닌것입니다.
그러나 주신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준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간청하고 해서 주신것이다? 라고 생각해도 되지만 그 간청을 통해서 받았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공로가 있는것은 아닙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만이 주시는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내가 택할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교만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자들입니다. 죽은자들은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오직 산자들만이 택할수 있는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택한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의 영을 살려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영이 깨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간청할수 있게 된것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고 거듭남입니다. 믿는자들은 이것을 잘 모르고 그냥 신앙생활합니다. 그렇게 해도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아나 모르나 구원에는 큰 지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를 시험하고 늘 우리를 괴롭힙니다. 거듭난것에 대해서 확인하려고 들게 합니다. 중생한것에 대해서 의심하게 합니다. 사단은 우리를 꼬일때 가장 잘써먹는것이 너? 성경에 대해서 잘아냐? 입니다. 이단들이 믿는자들을 회유할때? 성경공부하자고 하면서 회유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택함받은 자녀들은 너무나 잘알기에 이단들을 멀리하게 됩니다.
제가 초딩때 여호와증인과 맞짱뜨고 천주교인과 맞짱뜨고 통일교인과 맞짱뜰수 있었던것은 바로 성령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초딩때 우리 문의 문패를 보고 얼마나 많은 이단들이 우리집에 찾아와 괴롭혔는지? 그때마다 그들을 불러서 음료수를 주면서 대화를 나눠봤지만 절대로 그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와 다른 성경책을 쓰는자들과 무슨 대화가 되겠습니까!
사단은 성경을 이용해서 기독교인들을 회유합니다. 신천지도 정명석도 이단들은 성경책의 권위에 버금가는 다른 책들을 놓고 그것을 성경책의 권위위에 두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성경책 외에 다른것에 대해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아니라고 하면 아닌것이고 맞다고 하면 맞는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태도인것입니다. 인간 부모의 말도 순종하는 마당에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자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단의 꾐에 자꾸 넘어가는 이유는 우리의 육체가 아직도 죄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쫓지만 육신은 연약하여 죄아래 있구나! 왜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할수 밖에 없었을까요? 우리의 육체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의 죄악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요즘 신종이단이 기독교안에 있습니다. 그 신종이단은 선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선한 삶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사람은 죄를 한끗도 지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죄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은 그 자녀를 버린다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는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하나님이 그 자녀를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주고 산 영혼을 버리시다니요? 천부당 만부당 한 말이고 로마서 8장 31절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를 입고 어찌 온전한 선을 행할수 있다는 말입니까? 마지막 우리가 변화하여 새사람을 입을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죄없는 몸을 입게 될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고 나를 구원하는것이 아닙니다. 내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고 나를 향해 의롭다고 말하는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바로 이런것입니다.
신앙에 자유가 있다고요? 당신이 하나님을 택했습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택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모른다고 할수 있습니다. 성경에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병을 고치고 방언을 하고 기적과 이적을 베풀어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녀가 아니될수 있는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른다고 할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택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세운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지 않은 자들은? 사단의 아래 있습니다. 사단의 아래 있는 자들은 복음을 듣기 원합니다. 복음이 있어야 성령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않으면 성령님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타협하지 않으려니? 세상은 우리의 말에 귀를 막아버립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아무리 복음을 전파해도 귀를 막아버리고 듣지 않습니다. 세상사람들만? 그런가요? 기독교인들도 더합니다. 교회안에서 성경말씀을 나누는거 제대로 보셨습니까? 서로 서로 성경에 대해서 나누는건 교회안에서 금지사항 아닌가요? 말하고 나누자고 하면 왕따됩니다. 혹은 신천지라고 오해당하기도 합니다.
성경공부 시간에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은 어떻습니까? 은혜가 있습니까?
기독교인은 신앙에 자유가 있다는 말을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사단이 좋아하는 언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붙잡힌 자들이고 하나님이 붙들고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말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나고 싶다고 해서 떠날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고생길이 훤합니다. 결국은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겁니다. 그곳이 따뜻하고 평안하기 때문입니다.
믿는자들은 하나님의 이 품을 느낀 자들입니다. 가끔씩은 반항하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돌아가는 곳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품을 떠난것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하나님의 그 충만하심은 우리가 갈곳이 없다는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붙들린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품에서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것인지? 아니면 고생하다가 하나님의 품이 따듯하고 행복하고 평안한곳이구나?라고 깨닫고 돌아가게 될지....그것이 우리가 택할수 있는 유일한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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