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말의 의미가 얼마나 클까요? 아버지가 되어보시면 그것도 참된 아버지 자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아버지가 된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할것입니다.
목사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선생님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목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선생님이 아니라 주인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성도들을 전도로 내모는것이야 말로 목사들이 주인노릇하는것이요! 헌금을 강요하는것도 주인노릇하는것이요. 성도들의 시간을 빼앗는것도 주인노릇하는것입니다.
목사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르치도록 하나님아버지의 고용을 받은 고용인입니다. 곧 일하는 종이라는 것입니다. 일하는 종이 주인노릇하려고하니 이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것입니다.
상식이 사라진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아주 상식적인 이땅의 삶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인간의 육체와 다른 육체를 가지고 계신분이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창세전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가 우리 인간을 흙으로 빚어서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함께 에덴동산을 거니셨고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으며 롯을 만나셨고 야곱과 씨름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우리도 죽음후에 다시 부활할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죄를 알지만 죄와 상관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은 아주 상식적인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거짓이 없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상식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리라는것이 무엇입니까?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라는것이 진리가 될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떠든다고 기독교인은 말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기독교인의 상식은 무엇입니까? 인류는 죄를 범하여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것이 상식입니다. 인간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되었고 하나님나라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의 위치에서 죄로 말미암아 심판에 이르게 되는 저주받은 자로 위치가 바뀌게 된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심판에 이르게된 자녀를 그냥 가만히 둘수 없음에 하나님의 자녀의 위치를 회복할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신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가는 방법은 바로 죄를 용서받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하나님의 자녀로 가는 길은 죄를 용서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이 죄의 권세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의 위치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예수님이오심으로서 이루어진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전부터 예언되어 있는것입니다. 곧 구약의 백성들도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실것이라는 그 약속을 믿음으로서 죄를 사함받을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용서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가없이 태어나게됨으로서 본래 하나님의 자녀로서 출생하게 된 민족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태어나기전 죄를 짓기전에 태중에서 선택을 받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죄를 짓기전에 이미 복중에서 선택받았고 그 후손들은 할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이미 약속안에서 보증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였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범함으로서 그들도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무할례자들이 되었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아야하는 존재로 추락하고 만것입니다. 그들에게 율법을 준 이유는 죄를 죄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곧 법이 없이는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류는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오시기전에 복음을 듣지 못했다면? 구원이 없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지금 현세에 살고 있기 때문에 과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아는것보다 과거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하나님을 잘 알고 있을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는 다 노아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노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인류는 제사라는 방식을 통해서 주권자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 방식들이 변형되어 왔지만.......
기독교의 상식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죄를 범하면 용서를 받아야 하는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로부터 용서를 받아야합니까? 바로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토기장이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자기가 만든 토기를 자기가 필요할때 필요한곳에 쓸 수 있는 분이십니다. 누구는 주전자로 누구는 밥그릇으로 누구는 국그릇으로 누구는 반찬그릇으로 누구는 대접으로 누구는 찌게그릇으로 누구는 항아리로....................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은 인격자이십니다. 그래서 자기 맘대로 쓰지 않으십니다. 그런 권리를 가진 분이라는것이지 그렇게 하신다는것이 아닙니다.
인격자이신 하나님은 자기 맘대로 행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으로 행하십니다. 한번 자녀로 선택받은자는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십니다. 아들이 죄를 범한다고 해서 그 아들을 버리는 부모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실것입니다.
물론 그 안에 모든 백성이 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큰 테두리안에서는 그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것은 변함이 없는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들에게 상식적인 삶을 요구합니다.
양심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한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며 돌보고 이웃을 사랑하고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재화를 활용하고......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목사들은 고용주이신 하나님의 고용을 받은 종업원들입니다. 종업원들이 왜? 주인의 아들들에게 주인행세를 하면서 종님이라고 우러름을 받습니까?
선생님은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선생님은 부모대신이라고 하지만....부모는 아닙니다. 선생님이 부모가 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교회에서는 목회자들이 선생님의 역활보다 부모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악날한 부모가 되어가고 있는것입니다.
착하고 선한 부모가 아니라 악날한 부모입니다. 선생님의 역활이라도 잘 감당하면 문제가 없는데 선생님 역활을 뛰어넘어 부모역활을 해도 뭐라고 하기도 뭐한데....이건 부모가 아니라 악날한 부모가 되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것입니다.
성도들 곧 하나님의 자녀들을 앵벌이로 만들어 지하철에서 구걸하게 만드는 부모가 되어가고 있다는것이 바로 지금 목사들의 모습입니다.
고용주로부터 임금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자들이 고용주의 임금보다 하나님의 자녀를 앵벌이로 만들어서 버는돈이 더 짭짤하니 고용주의 임금을 때려치우고 앵벌이로 지하철로 내보내고 있는것이 지금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영성 운운하는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에게 상식적으로 살게하면 영성이 필요없습니다. 왜 영성이 필요합니까? 영성이라는것이 도데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하나되는것이 영성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것이 영성입니까
동행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해야한다면서 우리에게 요구하는것이 무엇입니까? 세벽부터 밤이 새도록 기도하는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까? 기도원에 쳐박혀서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에 전념하는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까?
도데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무엇입니까? 상식적으로 봅시다. 부모님이 지금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고해서 부모가 내곁에 없는것입니까?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부모가 내 부모가 아닙니까? 나를 낳으신 부모는 돌아가셔도 늘 나와 함께 있는 분으로 느끼는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옆에 있어야하만 하나님과 동행하는것입니까? 내 자녀가 멀리 있어도 내 마음이 항상 내 아들과 함께 하는것이 우리의 삶이듯이 하나님과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마음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시니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전지전능하시니 하나님께서 늘 우리옆에 계시는데 왜 우리가 하나님의 옆에 있으려고 애씁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옆에 있다고 하는 분들이 왜? 도적질하고 간음하고 훼방놀면서 화평하지 못하고 불화를 자초하고 계십니까?
교회들마다 분란이 끊임없고 시끄럽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만 고용받은 목사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고용받은 사람들은 임금만 받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만 끊어지는것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것입니까? 그러면 천국은 고용인에게는 보장되어 있지 않는것입니까? 목사들은 천국가기 싫습니까? 그러면 고용인이 되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있어야 하는것 아닙니까?
그런데 고용인들을 보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고용주 더 나아가서 악질적인 보모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보모가 밥을 먹여주니 지하철에서 앵벌이를 해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것이 현실입니다.
아버지는 지금 그 자녀를 찾으려고 애쓰는데 고용인은 하나님의 자녀를 꼭꼭 숨겨두고 앵벌이 시키고 있습니다. 자꾸 그러면 심판날 어떻게 그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성도님들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목사들은 종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고용을 받은 고용주이고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과외 선생님에 불과한것입니다. 말안들으면 바꿔야 하는데.....이 인간들이 자기를 쉽게 바꾸지 못하게 법을 만들어놨으니.........
기독교는 삶의 근본이요! 이땅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라고 하는것보다 하나님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녀로서의 마땅히 행할바를 행하는 삶의 기본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것입니다.
인생은 참 많이 복잡합니다. 이 복잡한 인생을 단순하게 살아가게 하는것이 하나님의 참 은혜가 아닐까요? 신앙생활 또한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아야 할것입니다. 믿음도 은혜도 하나님은 복잡하게 미로처럼 만들지 않았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이 만든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보겠다고 엉뚱한 짓들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숨을 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가기 위해서 죄사함을 받아야하고 죄사함을 받는 길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것입니다. 이 약속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것입니다. 약속을 믿는다는것은 곧 예수그리스도를 믿는것이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것은 그를 보내신 하나님아버지를 믿는다는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을 알게 하시는 분이 성령하나님이시고 거듭난 자들만이 곧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자들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깨닫고 그 약속안에 거하게 될것이라는것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것 그것은 이 약속있는 증거를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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