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을 읽어보면서 마음이 답답함을 느끼고 어떻게해야?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 고민을 하게됩니다.
제 신앙의 철학을 먼저 말씀드리는것이 제 글을 읽는 분들과 함께 소통하는 첫번째 단계가 될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것은 선악과를 통해서 알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죄인되게 하고 심판받게 한 선악과가 어찌? 하나님의 사랑일까?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것입니다.
중요한것은 하나님은 선악과만을 주신것이 아니라 생명나무 열매도 주셨다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생명나무 열매가 아니라 선악과라는 사실을 아시는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물론 천국에는 선악과가 없을것입니다. 천국은 생명나무과실이 가득할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선악과가 하나님의 사랑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과 동급으로 두었다는것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을 하나님이 동급으로 여겨주시고 사랑했다는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계약관계로 생각했다는것은 인간을 피조물로만 보지 않고 인격체로 본것이며 그 인격을 존중해준것이고 인격대 인격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는것은 바로 인간을 하나님의 필요에 의한 창조물 곧 천사와 같은 수종을 드는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과 동등하게 대면할수 있는 위치로 창조하셨다는것으로 천사들이 인간을 부러워하는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은 죄인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인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렇게 또한번 인간과 같이 되셨다는것은 인간이란 존재를 그렇게 사랑하셨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신랑입니다. 성도는 신부라고 칭합니다. 이 말씀은 또한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다시한번 인간을 하나님과 동급으로 여기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혼이라는 관계는 계약관계입니다. 남편과 부인은 높고 낮음이 있는것이 아니라 동급이고 한몸이라는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는것또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한몸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그 위치가 결코 작지 않다는것을 아셔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한몸이 된 자들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있고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물론 고민이 많이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삶을 살아가는 의미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것처럼 우리도 사랑해야 한다는것을 말합니다.
그 사랑이 무엇입니까? 바로 존중입니다. 대접받고자 하면 대접해야합니다. 성경에서의 법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것입니다. 누구는 종이고 누구는 주인이고? 이런 관계를 성경은 설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모든 인간은 평등합니다. 그와 같이 인간들도 다른 인간들을 평등하게 대해야합니다. 곧 나와 같이 상대방도 존중하고 사랑해야하는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표현들은 다 다를수 있습니다. 사랑의 표현은 달라도 공통적인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을 나와 같이 동등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공평하게 대하는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인간의 삶은 공평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게으르고 폭력적일수 있습니다. 사람이 변질되는것은 바로 공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들은 선거때만 종처럼 행동하고 선거끝나면 주인처럼 행동합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목사들은 위임목사가 되기전에는 장로들과 평신도들 앞에서 굽신거리며 잘보이려고 애씁니다. 그러다가 위임목사가되면? 어떻게 행동합니까? 그때부터는 교회의 주인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은 자기들의 종이고 수하입니다. 부려먹는 자들이고 대접해야할 자들로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것을 상대방도 원하고 내가 하기 싫은것을 상대방도 하기 싫다는것을 인정하시면서 사는것이 우리 인간의 삶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죽음이 두려운것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죽는것이 아니라 자는것이기 때문입니다. 때가되면 깨어날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것입니다.
이땅에서 살기싫다고 하나님께로 가고 싶다고 스스로 죽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것이 하나님을 믿는 삶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삶이 하나님을 믿는 삶입니다.
도피하는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순교를 각오하고 살아야 하는것입니다. 순교라는것이 거창한것이 아닙니다. 이 삶을 살아가는 삶이 바로 순교의 삶입니다. 순교자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땅에서 제목숨이 다할때까지 살아가는 삶이 순교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삼아 예수그리스도와 한몸되게 하신것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땅을 살아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치유사역을 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인간이 치유를 받아야 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바로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치유의 근원은 바로 죄의 문제의 해결입니다. 죄의 문제 해결없이는 치유가 될수 없습니다.
죄의 문제 해결은 오직 한길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룩하신 예수그리스도안에 거하는 길 거룩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해지는 길 밖에 없는것입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것이 바로 죄의 문제 해결이고 치유입니다.
저는 치유사역하는 분들을 옳게 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그리스도를 올바로 전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하지 않고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수 없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치유 또한 없을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치유이고 죄사함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 새로운 피조물이 될때 비로서 치유가 일어날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내적 치유나 어떠한 치유사역도 사실은 반대합니다. 사람이 상처를 입은 이유는 바로 죄의 문제때문입니다. 치유사역에 매달리는 이유는 복음으로 사람을 변화시킬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새로운 생명을 주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지만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것이 문제입니다. 죄의 문제 해결은 바로 상처받은 영혼의 해결입니다. 그것은 복음은 과거의 나를 죽이고 이제 새로운 육신이 되게 하는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지금? 내가 아지 과거의 몸을 입고 있다는것이 문제일수 있습니다. 아직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지 않았다는것? 그것때문에 치유가 필요할수 있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는다면 이미 변화된 자기를 발견해야 할것입니다.
제가 왜 예수그리스도를 바로 믿어야 하는지? 복음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게되면 많은 문제들에서 우리는 헤어나올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는 바로 우리가 왜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하는지? 자기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면서 그 믿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입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것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특권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습니까? 그 특권이 이땅에서 잘먹고 잘살고 잘되는것이 아닙니다. 이땅의 삶에서 우리는 잘될수도 있고 잘 안될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울이 말하는 부할수도 있고 가난할수도 있고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잘 견딜수 있다는것을 말합니다.
잘 견디는것이 바로 이땅에서 우리가 받은 특권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믿는 성도들의 축복입니다. 이 축복이 꼭 잘되는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착각이라는 말입니다.
이땅은 우리가 살아야할 땅이 아닙니다. 이땅은 우리가 거쳐가는 나그네의 땅입니다. 이땅은 우리 여행자의 땅입니다. 여행자는 돌아갈 집이 따로 있습니다. 집이 따로 있는 우리가 이땅에서 영원히 살고자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땅은 잠시 거쳐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여행할때 여행지에서 영원히 살것으로 생각하고 가지 않듯이.......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의 신앙관은 그렇습니다. 이땅에서 주어진 삶은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하나입니다.
영원히 살수 있는 본향을 가지고 있다는것은 행복한것입니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것은 여행자의 복입니다. 이 복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여행자들에게 이 복을 나누어 주어야합니다. 그 방법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할때......하나님의 뜻을 실천할수 있습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것같이 사랑하는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나와 같이 사랑하는것입니다. 내 몸을 사랑하듯이 이웃도 내 몸처럼 사랑하는것....그것은 바로 나와 상대방을 동등하게 생각하는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법칙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이 법칙이 깨졌지만......우리는 죄에서 구원받아 생명을 얻은 자들로서 이 법칙을 다시 바로 세워야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이땅에서 우리가 살아가야할 이유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믿는 자들의 인생입니다.
저도 잘난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잘난척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상대방을 낮추려고 하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스스로 낮아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존감의 상실때문입니다. 복음안에 있는 자들은 자존감이 회복된 자들입니다.
다른 이들의 상실된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높여줘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그리스도안에서 통일되게 하는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이 되는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통일된다는것은 모든것이 그리스도안에서 회복된다는 의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훼손된 이 세상이 거룩한곳으로 하나님의 창조했던 에덴동산으로의 회복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강제로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제로 하지 않고 우리를 통해서 하시려는 이유는 바로 사랑때문입니다.
우리를 당신과 동일한 위치에 두시고 우리의 의견과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며 우리의 판단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생각과 뜻을 들어주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사랑때문에 우리를 강제로 이끌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무지와 죄악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수 없을것입니다. 노아의 시대와 마찬가지로.................이 무지의 세상에서 우리는 노아와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할것입니다.
노아훙수 이후 새로운 세상을 하나님이 꿈꿨던 것처럼 마지막 심판이후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 이루어질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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