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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말씀/은혜 로운 말씀

목사는 목자가 아니라 목동이고 목자는 예수그리스도이다.

대한민국 천만 기독교인이 있다고 한다.   오백만 천주교인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천만 불교인이 있고  거의 이천만에 가까운 유교신자들이 있다.  무신론자들이라고 말하는 자들 그들은 조선시대부터 흘러내려온 유교사상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은 거의 모두 종교인이며 철학자들이다.  그래서 하나하나 뜯어보면 무식한 사람이 없는 지경이다.   다 똑똑하고  다 지혜가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수준이 낮은것일까?  아니면? 착한 사람들인것일까?  내가 볼때 대부분의 국민들은 수준이 높다.  그리고  착한 사람들이다. 

 

문제는 기독교인들이다.  이들이 아주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기독교인들을  쥐고 흔드는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이  아주 아주 수준이 낮다는것이 문제이다. 

 

교회안에 있는  목사들을  목자라고 부른다.  이것부터 수준낮은 말이다.  목사는 목자가 아니다!  이것이 성경의 말이다.   목사는 목자가 아니고  목동이다.  목동이 무엇이냐면  주인이 맡긴 양을 잘 다스리고 치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곧  양의 주인인 양을 맞긴 목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목사들은 주인행세를 하고 목자행세를 한다.  성경에서 목자는 예수그리스도를 칭하는 말이다.  목사들은 목자가 될수 없다.

 

예수그리스도는 베드로에게 내양을 치고  먹이고 치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의 핵심은  베드로가 치고 먹여야 하는 양이  베드로의 것이 아니라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것이라는 말이다.

 

양을 잘 먹이고 잘 치는것을 베드로에게 맡긴것이다.  언제까지?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찾으러 올때까지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양을 찾으러 오실때 목동들은 예수그리스도에게 맡긴양을 내어 드려야 한다.   그리고  일한 댓가로 삯을 받는것이다.

 

일을 제대로 못했다면?  삯이 아니라  아마 죄를 받아야 할것이다. 

 

이 땅 대한민국의 목동들은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명령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고 자기들이 예수그리스도 곧 목자가 되어서  양들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수준낮은 대한민국 기독교를 만들고 있는 핵심이다.

 

목사들이  예수그리스도께서 맡긴양의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니 그 방법이  양을 지혜롭게 하지 못하고  바보로 만들어야 하는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제대로 먹이고 가르치면  양들이 지혜로와지고  똑똑해질것이다.

 

똑똑해지고 지혜로와지면  목자행세 하는 자들이  목동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양의 주인인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제대로 일해야 하기 때문에 그짓 하기 싫어서 양들을 지혜롭고 똑똑하게 하는데에 열과 성실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 목사들이  신사참배한 자들로부터 배운 자들이기 때문이라는것이다.   곧 목사들이 목사가 되기 위해서  그 위의 목사들에게 배운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면 갈수록 기독교는 수준이 떨어지게 될것이다.   기독교가 수준이 떨어지면 그곳에서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자들이 교회를 떠날것이다.  목동이 제대로 먹이를 주지 않으니 양은 마르고  독초를 먹이니 양이 죽어가고.......

 

결국 교회도 망하고  대한민국 기독교도  그 우리에 양들이 점점 사라지게 될것이다.  

 

나도  교회라는 우리를 벗어난지 오래되었다.   교회를 벗어나면?  하나님을 버린것인가?   이것이 우리 대한민국 교회의 수준이다.  한심한 수준인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니 교회에 갈 필요가 없어진것이다.  

 

나는 삶이 예배가 되었고  내 가정이 교회가 되었다.  이곳이 교회이고  이곳이 하나님의 우리이고  이곳이  하나님이 먹이시는 초원이 된것이다. 

 

수준이 높은 신앙이라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젖먹이의 신앙이 있다면  부모님이 해주는 밥을 먹고 사는 때가 있고  이제 스스로 밥을 찾아먹고  다른이들을 먹일수 있는 자리로 올라서는것.....

 

곧 이제 내가 스스로 밥을 먹고  밥을  만들수도 있고  또 다른이들을 먹일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서는것이 바로 수준 높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때  하나님에게 온전히 순종하는 신앙을 말하지만  그 온전히 순종하는 신앙이라는것이  내 의지가 없이 하는것이 아니라  내 의지를 가지고 하는것을 의미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곧 젖먹이와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것같지만 그것은  아이들의 의지가 아니라  그럴수 밖에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부모를 의지할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수 없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순종하는 것이고  이를 순종이라고 보기보다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다고 봐야 하는것이 옳다.

 

곧 온전한 순종이라고 하는것은 내 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것으로  하나님없이도 살수 있다고 판단할수 있는 판단이 있지만  하나님없이는 살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내 의지로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비유하면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을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가정을 지키신것은 하나님의 보호아래서 지킴을 받은것이라면  그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러 갈때는 아브라함의 의지가 작동하여 하나님에게 온전히 순종하고  하나님이 하실일을 알기 때문에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해서 나아가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볼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신앙이 자란것이고  온전히 성장한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도한다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준낮은 기도와 수준높은 기도라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인가   수준낮은 기도는  어린아이와 같은 기도 곧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들이다.  이 구하는 것이  한심한것을 구하는것을 의미한다.

 

수준높은 기도라는것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것을 믿고 기도하는것을 의미한다.   곧  수준 낮은 기도는 하나님이 주실것인지? 안주실것인지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때쓰기 기도를 의미하고   수준 높은 기도는  하나님이 주실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구할줄 아는 기도라는 말이다.

 

신앙은  생활이다.  우리가 늘  삶은  예배라고 말하는데   삶이 예배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곧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고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살아가는 삶임으로  하나님과 떨어질수 없는 삶이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함께 있음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는것이다. 

 

가정으로 비유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부모님이시고  나라로 비유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인것이다.   하나님의 지키시는 자녀이며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는 백성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어린아이같은 신앙이 결코 나쁘다고 말하는것이 아니다.  신앙에  젖먹이 시절이 있고 어린아이 시절이 있다면 이제  어른이 되는 시기도 있다는 말이다.

 

신앙생활을  수십년 해왔는데  아직도 젖먹이라면?   아직도 어린아이 수준이라면?  아직도  청소년기의 방황하는 수준이라면?  하나님이 과연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원하시는건  잘 자라주는것이다.   젖먹을때는 젖먹고 어린아이때는 어린아이처럼  그리고 장성하면  장성한 분량에 알맞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다.   하나님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주는것이 신앙이 아니고  그것이 믿음이 아니다.  

 

종종 신앙인들이 하나님이 첨부터 끝까지 다해주기를 바라는 분들이 있다. 죄를 범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까지  하나님이 다 해주실것처럼 생각한다.

 

내가 할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다 맡겨버리는 신앙   다시 말해서  감나무아래서 감이 떨어지면  먹겠다고  그 감이 하나님이 주시는것이니 그것을 받는것이 신앙의 성숙인냥 착각하는 신앙말이다.

 

내가 이땅에서 잘되고 부자되고 잘 먹고 잘사는것이  하나님을 잘 믿어서? 그런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고 오산이라는 말이다.  물론  잘되고 부자되고 잘먹고 잘살아야한다.   열심히 일하고 지혜롭게 살면  잘될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믿음의 열매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것이다.

 

잘될수도 있고 망할수도 있고 잘되어도 교만하지 않고  망해도 절망하지 않는 삶이 바로  신앙의 수준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지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다면  이땅에서 우리가 꿈꿔야할 것이 무엇인가?  이땅에서 잘되고 부자되는것인가? 아니면  이땅에서의 삶을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예비하는 삶으로 훈련장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것이 옳은 것인가?

 

삶의 훈련장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이다. 

 

무엇을 훈련해야하는가!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것이다.   사랑하는 것을 훈련하고   죄를 미워하고 의를 실천하는 삶이 바로 이땅에서 우리가 배우고 익히고 또 실천하며 몸에 베도록 하는 삶! 

 

바로 천국의 삶이 이런것임을 알고 그것을 행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땅을 살게하는 목적이 아닌가!!!

 

이땅에서 잘먹고 잘살아봤자  백년도 못살고   어차피 우리는 이땅에서 영원히 살수 없는 자들이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나라가 있다.  그 나라의 삶을  이땅에서 미리 훈련하고 배우고 익히는것이  우리가 이땅에서 살아가야하는 이유인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나타내게 하는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할 신앙의 모습이고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인것이다.

 

거짓을 물리치고  이 사회가 정의롭게 되도록 애쓰는 삶!   가난한 과부와  고아들이  걱정없이 살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삶!   그것이 기독교인들이 이땅의 사람들에게 행해야할 가장 큰  덕목이 되어야한다.

 

공의롭지 못하고  법을 어겨가며  사람들을 탄압하고  권력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고 나라를 어지럽히고  사람들의 삶을 고난으로 빠뜨리는것이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이 아니라는것이다.

 

믿는자라고 해서  불의와  잘못을 눈감아줘야 하는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것이니  불의와 잘못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그저 그냥 그들이 시키는데로 살아가면된다?   이것이야말로 한심한 생각이 아닌가?

 

나는 하나님의 의와  공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백성인데  어찌 붕의를 보고 침묵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불의한자들을 지적하면?  내가 정죄하는 죄를 범하는것으로 생각해야할까?          

 

아니다!  불의한 자의 불의를 끄집어내고  불의하지 못하도록  정직하게 살도록 이끌어야 하는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그것이 수준높은 신앙인이 해야할 도리라는것이다.

 

선대 목사들이  신사참배를 했다면  민족과 하나님앞에서 참회를 해야하고!   국가의 법을 어겨가며  기득권을 누리면서도 기독교인 행세를 한다면?  그런자들에게 국가의 법을 지키도록  엄하게 타이르고  만약에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가의 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해야하는것이 마땅한것이다.

 

기독교인이라서? 죄를 범해도 용서해야하고?  기독교인이 아니면? 죄를 범하면 무조건  감옥에 넣어야한다?  이런 법은 하나님의 나라에도 없는 법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이렇게 혼란에 빠진것은  법을 어긴자들을 기독교인이라는 이름때문에  정치권에 두어도 아무말하지 않는  기독교인들 때문이다.  특히 그들을 향해서 목동의 위치에서  꼴을 먹여야 하는자들이  그들에게 꼴을 먹이기는 커녕 그들을 두둔하고  독초를 먹든지 어디를 가든지  무슨짓을 하든지 눈을 감고 있는  양을 지키기는 커녕  양이 맘대로 행하도록 놔두는 행태를 보이는것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것이다.

 

권력을 가진자들이라고 해서  그 앞에서 굽신거리는 목사들은  자기들의 직분인 목동의 직을 버려야할것이다.   그래야 이 나라가 바로서고  기독교가 살고  기독교인들이 조금이나마 자부심을 갖고 살수 있게 될것이다.

 

쪽팔린 기독교인으로 살고 싶지 않은것이  지금 내가 바라는 삶이다.  정말 쪽팔려서 어디서 기독교인이라고 말도 못하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