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는것보다 믿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에 대한 뎃글이었습니다. 물론 그분이 아는것을 부정하는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는것으로 그치는 것은 누구나 할수 있지만 믿는것은 아무나 할수 없다는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놓친것은 믿음이라는것이 그 근거가 나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함을 놓쳤습니다.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그것을 아는것이 진정 참으로 아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항상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믿음의 근거가 나에게 있다면 하나님의 존재도 나의 판단에 의해서 결론지어집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나와 상관없습니다. 나의 앎과 상관있는것이 아니지요. 내가 믿거나 안믿거나 하나님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아래 목사님 글도 읽었고 님의 글도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난제들이 조금 실타래가 풀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직도 많이 엉켜져 있지만......
님의 글에서 안다와 믿는다의 차이점을 열심히 설명했는데 알고 있어도 믿고 있어도 그것이 나에게서 온것인가? 하는 문제의 근본원인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으십니다.
오직 믿음이라고 했을때 그 믿음이 누구로부터 온것인가?를 생각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나에게서 부터 믿음이 생겨난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음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왜 은혜를 베풀어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삼아주셨을까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저는 중생이라는 단어를 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글에서 중생에 대해서 설명을 안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따로 언급하고 싶어지네요^^
중생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에서 태어났지만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합니다. 영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고 단절되어 있는것을 죽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은 다시 하나님과 연결되어야합니다. 이 거듭남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내가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거듭남의 근거아래서 행하여지는 믿음이라면 걱정할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듭남없이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지요.
거듭난다는 의미는 아래 목사님의 설명가운데 다 들어 있습니다. 육은 더러운것이요 하나님이 요구하는 삶은 사랑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우리의 욕심대로 살아온 삶과 결별하고 이웃을 위해서 사랑하는 삶을 살게되는 방향전환이 바로 거듭나는 삶입니다.
이것이 없이 거듭났다는 것을 증거할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는 하나님의 지체라면 그리스도의 지시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은 지체가 아니지요. 내몸은 내 머리가 지시하는데로 무조건 순종합니다.
무엇을 순종해야 할까요? 그리스도께서 지시하는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났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고 마땅히 행하게 되는 삶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와 충성과 오래참음.......이런 삶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삶입니다.
그리고 안다는 의미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님은 안다는 것을 우습게 여기는데.......
믿음은 어디서 옵니까? 들음에서 옵니다. 들음은 말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곧 앎이 없이 믿음이 어떻게 존재합니까?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알고 창조를 알고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앎으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된것입니다.
그리고 비유로 적으신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자기가 마련하여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버지를 못 믿는것이 아니라 아들의 마음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것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녀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모습이지만 또한 다른 모습이라고해서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자다! 라고 딱지 지울수는 없는 것이지요.
사람에게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내가 의롭다고 말해도 의롭지 않을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다고 하는 자들은 거짓된 자들이라고. 세상에 죄없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죄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정죄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정죄할수는 없습니다. 법정에서야 어쩔수 없이 범죄자를 처벌해야 하니 할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 감옥에 가 있는 자들 성추행범들 도적질 하는 자들 우리는 욕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나 나나 똑같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정죄를 한다는 의미는 자기에게 죄가 없다고 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아주 악한 생각이지요. 이런 자들이 교회안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남들을 고소하고 정죄하고 자기는 교회다니고 예수님 믿으니 죄가 없다고 얼마나 많은 세상사람들을 상처주고 고통을 줍니까?
지금 교회들마다 욕을 먹는 이유가 그런것입니다.
믿음 좋지요. 그 믿음은 나에게서 온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버지를 믿는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나를 낳으셨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의 자녀로서 아버지를 믿을수 밖에 없는것이고 그것은 엄밀히 따지면 믿음이라고 하는것은 좀 그렇습니다.
육신의 아버지에게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것을 믿어요! 라고 말하면 아버지의 입장에서 어떻겠습니까? 언제? 내 아들이 아니었었니? 결국 그렇게 말하는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은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권세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믿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부르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알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우리 아들이 나에게 아빠라고 부릅니다. 전 제 아들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너무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태어나서 앞으로 살아가야할 길이 험하기 때문에 그 길을 살아가야 할 아들을 보면 마음이 찡해집니다.
그러나 태어났으면 살아가야하고 그 삶이 바로 하나님이 나에게 준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 삶을 어떻게 살아갸아 하는가가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아들에게 원하는 삶은 항상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며 정직하고 진실하고 신실하게 살아가기를 저는 바라고 있습니다.
이웃과 다투지 않고 친하게 지내고 별 탈없이 살아가면서 화평하고 오래참으면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 아들에게 원하는 삶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삶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원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로서 공부하는것이 지금의 위치라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것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공부한다고해서 다른것은 안해도 되느냐? 그런것은 아니겠지요? 공부하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친구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친구들과 소통하며 더욱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기를 원하는것이 아버지의 뜻이고 자녀로서 마땅히 행할 바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믿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제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주신것입니다. 저는 제가 스스로 낳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저를 지으셨고 나으셨기 때문에 저는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불가항력적으로 어쩔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완벽하신 분이십니다.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육신의 아버지와 다릅니다. 빛이시고 선하십니다. 사랑이십니다. 근본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더이상 말로 표현할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분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원하시는 삶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저는 제 삶에서 그것을 실천하여 살아가는것이 참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 불의한 자들(돈 떼먹는 자들.....열심히 일해주는데도 그것을 가찮게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분노합니다.)과의 거래는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이 좀 무겁고 아픕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저도 인간인지라......
하지만 성실히 일하는 분들은 저렇게 불의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돈계산을 잘 안해줍니다. 그럴때마다 세상에 교인들을 욕하는 이유를 깨닫습니다. 혹시나 저도 그런 욕을 먹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그런 소리 안들을려고 물건값을 바로 바로 결재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이세상에 살아가도록 태어났는데 그냥 헛되이 살다가 갈수는 없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그릇이 목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일을 억지로 하려고 가지 않고 지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어진 일이 바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일을 다시 주신다면 그 때가면 또 그 일을 맡아 열심히 일할것입니다. 저는 전도를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교회 다니는것을 하나님을 믿는다는것을 제 주변에서 모르는 분들은 없습니다.
술도 먹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고 여자도 밝히지 않고 그렇다고 티를 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어울리고 삽니다. 술먹는 분들에게는 담배피는 분들에게 건강을 생각해서 줄이라고 하지 그것이 죄악이니 끊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것은 그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땅에서 우리가 얻는 재물은 다 불의한 재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의것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땅에서 부자가된자들은 정말 조심해야합니다.
불의한 재물을 충성을 다해서 모아 부자가 됬으니 잘된것 아니냐?라고 말하기보다 그 재물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창고에 쌓아놓고 있는 돈은 그저 휴지조각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풀어 이웃과 함께 나누지 않는다면 그것은 돈이 아닙니다. 쓰레기지.......
이 세상이 살기 힘들어지는 이유는 바로 돈을 쓰레기로 만드는 부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하면서 가슴에 분노가 치밀고 정말 슬퍼지고 일하기 싫어지고 답답해질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땅의 불쌍한 이들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길거리에서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을 주워먹는 분들을 보면 정말 슬퍼집니다.
제가 그분에게 5천원을 주며 밥을 사먹으라고 했더니 자기는 거지가 아니라고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저는 머리에 망치로 얻어맞은것처럼 내가 사람을 거지취급했구나! 라고 반성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런 분들조차도 자존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존중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없는 도움은 결코 도움이 아닙니다. 그건 내 의를 드러내는 행위라는 것이라고 자책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돕고자 하면 티내면 안되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헐벗은 이라고 해도 그분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로 행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병성님도 저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믿음안에 사는 사람들은 다 비숫하고 똑같기 때문입니다. 님의 글은 단지 아는것보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 보다 믿음이 어디로 부터 왔는가? 그리고 믿음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그 본질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지음을 받은 우리는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근거요 본질입니다.
아버지의 자녀로서 아버지를 욕먹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그 마음가짐만으로도 아버지는 기뻐하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버지를 참되게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믿음의 근거가 아는것에서 왔음으로 아는것이야 말로 정말 중요한것이고 앎이 없는 믿음은 존재할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님의 글에서 안다와 믿는다의 차이점을 열심히 설명했는데 알고 있어도 믿고 있어도 그것이 나에게서 온것인가? 하는 문제의 근본원인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으십니다.
오직 믿음이라고 했을때 그 믿음이 누구로부터 온것인가?를 생각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나에게서 부터 믿음이 생겨난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음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이 왜 은혜를 베풀어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삼아주셨을까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저는 중생이라는 단어를 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글에서 중생에 대해서 설명을 안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따로 언급하고 싶어지네요^^
중생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에서 태어났지만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합니다. 영은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고 단절되어 있는것을 죽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은 다시 하나님과 연결되어야합니다. 이 거듭남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내가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거듭남의 근거아래서 행하여지는 믿음이라면 걱정할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듭남없이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지요.
거듭난다는 의미는 아래 목사님의 설명가운데 다 들어 있습니다. 육은 더러운것이요 하나님이 요구하는 삶은 사랑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우리의 욕심대로 살아온 삶과 결별하고 이웃을 위해서 사랑하는 삶을 살게되는 방향전환이 바로 거듭나는 삶입니다.
이것이 없이 거듭났다는 것을 증거할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는 하나님의 지체라면 그리스도의 지시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것은 지체가 아니지요. 내몸은 내 머리가 지시하는데로 무조건 순종합니다.
무엇을 순종해야 할까요? 그리스도께서 지시하는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의 열매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났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고 마땅히 행하게 되는 삶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와 충성과 오래참음.......이런 삶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삶입니다.
그리고 안다는 의미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님은 안다는 것을 우습게 여기는데.......
믿음은 어디서 옵니까? 들음에서 옵니다. 들음은 말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곧 앎이 없이 믿음이 어떻게 존재합니까?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알고 창조를 알고 알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앎으로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된것입니다.
그리고 비유로 적으신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에서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자기가 마련하여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버지를 못 믿는것이 아니라 아들의 마음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것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녀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모습이지만 또한 다른 모습이라고해서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자다! 라고 딱지 지울수는 없는 것이지요.
사람에게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내가 의롭다고 말해도 의롭지 않을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죄가 없다고 하는 자들은 거짓된 자들이라고. 세상에 죄없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죄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정죄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정죄할수는 없습니다. 법정에서야 어쩔수 없이 범죄자를 처벌해야 하니 할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 감옥에 가 있는 자들 성추행범들 도적질 하는 자들 우리는 욕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나 나나 똑같은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정죄를 한다는 의미는 자기에게 죄가 없다고 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아주 악한 생각이지요. 이런 자들이 교회안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남들을 고소하고 정죄하고 자기는 교회다니고 예수님 믿으니 죄가 없다고 얼마나 많은 세상사람들을 상처주고 고통을 줍니까?
지금 교회들마다 욕을 먹는 이유가 그런것입니다.
믿음 좋지요. 그 믿음은 나에게서 온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버지를 믿는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나를 낳으셨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의 자녀로서 아버지를 믿을수 밖에 없는것이고 그것은 엄밀히 따지면 믿음이라고 하는것은 좀 그렇습니다.
육신의 아버지에게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것을 믿어요! 라고 말하면 아버지의 입장에서 어떻겠습니까? 언제? 내 아들이 아니었었니? 결국 그렇게 말하는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은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권세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믿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부르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알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우리 아들이 나에게 아빠라고 부릅니다. 전 제 아들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너무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 태어나서 앞으로 살아가야할 길이 험하기 때문에 그 길을 살아가야 할 아들을 보면 마음이 찡해집니다.
그러나 태어났으면 살아가야하고 그 삶이 바로 하나님이 나에게 준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 삶을 어떻게 살아갸아 하는가가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가 아들에게 원하는 삶은 항상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며 정직하고 진실하고 신실하게 살아가기를 저는 바라고 있습니다.
이웃과 다투지 않고 친하게 지내고 별 탈없이 살아가면서 화평하고 오래참으면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제 아들에게 원하는 삶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삶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원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로서 공부하는것이 지금의 위치라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것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공부한다고해서 다른것은 안해도 되느냐? 그런것은 아니겠지요? 공부하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친구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친구들과 소통하며 더욱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기를 원하는것이 아버지의 뜻이고 자녀로서 마땅히 행할 바입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믿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제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주신것입니다. 저는 제가 스스로 낳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저를 지으셨고 나으셨기 때문에 저는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불가항력적으로 어쩔수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완벽하신 분이십니다.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육신의 아버지와 다릅니다. 빛이시고 선하십니다. 사랑이십니다. 근본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더이상 말로 표현할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분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원하시는 삶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저는 제 삶에서 그것을 실천하여 살아가는것이 참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 불의한 자들(돈 떼먹는 자들.....열심히 일해주는데도 그것을 가찮게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분노합니다.)과의 거래는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이 좀 무겁고 아픕니다.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저도 인간인지라......
하지만 성실히 일하는 분들은 저렇게 불의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돈계산을 잘 안해줍니다. 그럴때마다 세상에 교인들을 욕하는 이유를 깨닫습니다. 혹시나 저도 그런 욕을 먹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그런 소리 안들을려고 물건값을 바로 바로 결재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이세상에 살아가도록 태어났는데 그냥 헛되이 살다가 갈수는 없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신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그릇이 목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일을 억지로 하려고 가지 않고 지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 주어진 일이 바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일을 다시 주신다면 그 때가면 또 그 일을 맡아 열심히 일할것입니다. 저는 전도를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교회 다니는것을 하나님을 믿는다는것을 제 주변에서 모르는 분들은 없습니다.
술도 먹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고 여자도 밝히지 않고 그렇다고 티를 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어울리고 삽니다. 술먹는 분들에게는 담배피는 분들에게 건강을 생각해서 줄이라고 하지 그것이 죄악이니 끊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것은 그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땅에서 우리가 얻는 재물은 다 불의한 재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의것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땅에서 부자가된자들은 정말 조심해야합니다.
불의한 재물을 충성을 다해서 모아 부자가 됬으니 잘된것 아니냐?라고 말하기보다 그 재물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창고에 쌓아놓고 있는 돈은 그저 휴지조각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풀어 이웃과 함께 나누지 않는다면 그것은 돈이 아닙니다. 쓰레기지.......
이 세상이 살기 힘들어지는 이유는 바로 돈을 쓰레기로 만드는 부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하면서 가슴에 분노가 치밀고 정말 슬퍼지고 일하기 싫어지고 답답해질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땅의 불쌍한 이들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길거리에서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을 주워먹는 분들을 보면 정말 슬퍼집니다.
제가 그분에게 5천원을 주며 밥을 사먹으라고 했더니 자기는 거지가 아니라고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저는 머리에 망치로 얻어맞은것처럼 내가 사람을 거지취급했구나! 라고 반성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런 분들조차도 자존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존중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없는 도움은 결코 도움이 아닙니다. 그건 내 의를 드러내는 행위라는 것이라고 자책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돕고자 하면 티내면 안되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헐벗은 이라고 해도 그분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로 행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병성님도 저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믿음안에 사는 사람들은 다 비숫하고 똑같기 때문입니다. 님의 글은 단지 아는것보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 보다 믿음이 어디로 부터 왔는가? 그리고 믿음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그 본질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지음을 받은 우리는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근거요 본질입니다.
아버지의 자녀로서 아버지를 욕먹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그 마음가짐만으로도 아버지는 기뻐하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버지를 참되게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믿음의 근거가 아는것에서 왔음으로 아는것이야 말로 정말 중요한것이고 앎이 없는 믿음은 존재할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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