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5장
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6장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중략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이밤에도 찾아오시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더욱더 진리에 매진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집니다.
항상 우리는 여기까지만 나가자라고 생각하며 살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딱 어디까지? 하나님이 허락하신부분까지입니다. 그 이상을 나가고 싶어서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신을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모든것을 다 줄것처럼 속이지만 그의 원하는것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빼앗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속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도 우리는 충분하고 그것을 앎으로 우리는 행복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으로 충분한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는 삶을 사는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예배의 삶이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기도하는 삶입니다. 눈감고 하루종일 기도하는것이 항상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그리고 그뜻대로 행하려고 애쓰는 삶이 바로 기도하는 삶입니다.
저는 오늘 이것을 말씀ㄷ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신앙나이는 몇살입니까? 아직도 젖을 빨아먹어야 하는 나이입니까? 아니면 단단한 밥을 먹는 나이가 되어 있습니까? 더 나아가 밥을 만들어 먹을수 있는 나이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행하려고 애쓰는 삶이 밥을 만들어 먹는 사람입니다. 그 뜻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며 그것을 행하려고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성한 성인이라도 할수 없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우리는 영원한 간난아이입니다. 내가 내 아들을 볼때 내 아들이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내 아들이 나 다컸어라고 말할때 저는 흐믓해집니다. 어린아이처럼 살지 않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아들을 보면서 많은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아들에게 우리 예쁜 강아지...하면 우리 아들은 멍멍 하면서 강아지 흉내를 냅니다. 어찌나 이쁘고 귀여운지 한없이 뽀뽀를 날립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면 내가 여기 있습니다. 숨어있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는데로 응답하는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는 일일것입니다.
불러도 대답없고 일을 시켜도 딴짓하고 밥먹으라고 하면 돌아댕기고 공부할하라고 하면 놀고 책읽으라고 하면 장난감 가지고 놀고....아버지 말이라면 듣지도 낳고 딴짓하는 아들을 보면 열불이 터지는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시키는것이라도 잘하면 예쁘기라도 하지.....어린아이일수록 시키는것을 잘안하고 장성한 사람일수록 시키는것을 잘 행하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신앙의 성숙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성경말씀에 기록하고 있는것을 잘 숙지하고 그것을 잘 따라 행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떼쓰고 하지 않겠다고 하고 딴짓하고 내가 좋아하는것을 하고 내 맘대로 사는 것이야 말로 어린아이의 행동이며 철없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우리안이 이런 신앙의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밥을 치우면 배고픔에 엄마를 찾습니다. 밥달라고 떼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교육시키는 방법이 이런 것 아닐까요? 줘도 안먹을때는 일단 빼앗는 것으로 관심을 자기에게로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풍성한것을 허락하셨는데 그것을 우리는 잘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것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것이 사라질때 우리는 그것이 좋았다는 것을 깨닫고 찾습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은 이렇습니다. 줄때는 감사하지 않고 안줄때는 떼스고 그것을 당연한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정말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일수록 감사할수 있는 것이 늘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으로도 우리는 만족하고 감사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 있는 것으로도 우리는 행복할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인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안보실때 딴짓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내가스스로 찾아서 하는것이 아니라 부모의 시킴에 의해서 하게되면 부모님이 보지 않을때는 공부하지 않고 딴짓하는것을 즐겨하는 것이고 부모님이 볼때만 공부하는 내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나 지금 아이를 둔 아버지가 되어서 보니 그리고 지금은 내가 스스로 찾아서 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며 어린시절 공부하지 않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왜 그렇게 살았을까? 후회되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은 지금 공부하는것이 싫을지 몰라도 그것을 후회하는데는 오래걸리지 않는다는것에 제 생각입니다. 나이들면 공부하지 못함을 후회합니다.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그만큼 철이 안들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위엣 말씀을 한번 봅니다. 도의 초보를 버리자는것은 그것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것은 우리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자녀가 되었다는것은 죄에서 용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런것은 이미 지났다는 것입니다.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태어났는데 또 태어나야하느냐? 라고 묻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태어났습니다. 거듭났습니다. 그런데 또 거듭나야 하겠습니까? 구원은 한번에 이루어지는 것이니다. 두번 세번 네번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는 이제 그것을 쫓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후의 일을 생각해야합니다.
제가 생각할때 신앙의 단계는 하나님의 도의 초보를 깨닫는 것입니다.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단계를 넘어서야합니다. 구원의 확신단계는 아버지가 내 아버지임을 아는 것입니다. 확신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확신단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밥을 먹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과정입니다. 성경말씀에서 윤리적인 부분들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이것을 행하는 과정이 아니라 배우는 과정입니다. 십계명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이 왜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셨나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쳐가면 이것이 복이라는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학교에서 배운것을 사회에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행하는 과정이 어른이 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복임을 깨닫는 것이 이것을 행하는것이 나에게 유익하다는것을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게 하셨다는 것을 깨닫는것이 하나님의 뜻안에 온전히 들어가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라는것이 싫지만 이것이 먼 미래에 나를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는것이 바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릴때는 그렇게 공부하라는 말이 싫었습니다. 착하게 살라는 말이 싫었습니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른이 될때 더 큰 어른이 되면 이것이 무슨 말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임종때가 오면 후회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며 살지 못했구나 라고 생각하며 인생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후회하며 마지막을 보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에서 끊임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후회하지 않는 길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모든것을 다 줄수 있습니다. 목숨까지 줄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목숨을 바칠때 우리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치는 군인들은 사랑하는 가족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내 목숨을 바치는것을 후회하지 않고 적진을 향해서 용감하게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악한자의 길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용감하게 말씀을 들고 나가는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붙잡고 진리안에 거하려고 애쓰며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거짓과 싸우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싸울것은 혈과육이 아니라 악한영에 대한것입니다. 사람과 싸우면 안됩니다. 사람을 거짓된 길로 끌고가는 악한영과 싸워야 합니다. 내 가족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가족을 죽이고 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은 끊임없이 사랑하되 그가 섬기는 것이 거짓임을 우리의 사랑으로 무너뜨릴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의 말을 거역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수 있습니다. 나는 나야! 하고 부모보다도 내생각이 우선될수 있습니다. 내인생은 내가 책임진다고 하면서 부모의 말에 거역하는 것은 어찌보면 정말 미련한 짓입니다.
아무리 모자르고 바보같은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식이 바른길로 가기를 원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 할일을 하면서 사는 것을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악의 길로 가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우리의 선한 하나님이라면 우리에게 뭘 요구하시겠습니까! 이렇게 까지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더 잘알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마시고 진리에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는 곳에는 가지말고 하는 것은 해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맞구나라고 우리가 그 말씀에 동감할때 우리는 철없는 아이가 아니라 장성한 분량에 이르렀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선과 악을 분리하여 그것을 구분할수 있는 자는 정말로 하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선이 무조건 선일수 없고 악이 무조건 악일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이 누군가에게는 악이 될수 있고 우리의 악이 누군가에는 선이 될수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하는것이 장성한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저도 아직 이부분까지 가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선을 말하지만 악을 행하고 있을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면서 선을 행하고 있다고 스스로 변명하고 있을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자라는 자들입니다. 지금 연약하다고 지금 우리가 다 안다고 말할때 우리는 아마 이제 젖먹이를 벗어났을 뿐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더욱더 우리는 깊은곳으로 가야하고 더 많이 깨달아야 할것입니다.
장성한 분량에 이를때가되면 제 나이가 지금보다 20~30년은 늙어있을때가 되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전 20년후에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은퇴해서 새로운 길을 찾을 것입니다. 목회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했으니 60부터 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언제죽을지 모르는 인생이지만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열심히 공부중입니다. 앞으로 20년 인생공부와 성경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웃을 섬길수 있을 만큼 성숙될때 그 길을 가고 싶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하나님이 일을 허락하시고 건강을 허락하신다면 그 길을 가야한다면 가고싶습니다.
제가 꿈꾸는 교회는 십일조 없는 교회입니다. 헌금자체가 없는 교회 헌금은 없는데 성도들이 자기가 쓰지 않는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서로 나누고 성도들이 음식을 싸들고 와서 서로 나누어 먹는 교회 그런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돈이 아닌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할 의무가 없습니다. 율법을 지킬수도 없습니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십일조 내려면 다른 율법도 다 지켜야합니다. 번제도 소제도 화목제도 속죄제도 속건제도 드려야합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시켰고 율법을 예수님을 통해서 완전히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율법은 지킬필요가 없습니다. 십일조 내지 않아도 됩니다. 단지 율법은 지킬필요가 없지만 사랑은 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것을 쉬지 않으면 됩니다.
교회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교회로 만들고 싶습니다. 전도하는 교회가 아니라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사랑의 교회처럼 이름만 사랑이 아니라 진정 사랑이 있는 교회를 만들고 싶은것입니다.
제 어릴적 꿈이 목사였습니다. 저는 목자가 아니라 목동이 되고싶습니다. 목동은 양을 돌보는 자이고 목자에게 인도하는 자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목사는 개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개라는 것은 양이 다른 길로 가지 못하게 짖는자라는 말입니다. 양을 잘 지켜서 목자에게 인도하는것이 개의 임무인것처럼 목사도 바로 그런 개라고.....저는 그 말에 많이 동감합니다.
저는 그런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지금 그 훈련중입니다. 개처럼 짖는 훈련!!! 성도님들이여!!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이여!!! 다른길에 구원이 없습니다. 이길로 오십시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주신 그 사랑안에 거하는 길 말고 다른길에 우리의 행복은 없습니다.
당신의 신앙나이가 젖먹이든 장성한 분량에 이르렀건....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먼저 난자가 있고 나중 난자가 있을 뿐입니다. 젖먹이라고 모자르고 장성한 분량에 이르렀다고 사랑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젖먹이 어린아이가 사랑을 더 많이 받고 더 행복하고 걱정없이 살아갈수 있습니다. 장성한 분량에 이를수록 걱정이 많고 근심이 태산이 됩니다. 어떤 신앙의 나이에 위치해있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이 신분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삶은 장성한 분량에 있어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야 말로 참으로 장성한 자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그 길을 걸어가는 당신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은혜로운말씀 > 은혜 로운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아의 방주가 가능한 이유.. (0) | 2014.04.02 |
---|---|
성경꿰뚫어 읽기... (0) | 2014.02.04 |
아는것이 행하는것만큼 중요한 이유는.....성경은 몰라도 된다? (0) | 2014.01.13 |
언약의 사자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 (0) | 2014.01.07 |
성령충만이 무엇이며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0) | 2013.12.29 |